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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끝자락부터 오르기 시작하던 물가가 드디어 날개를 달았다. 날개를 활짝 펼친 채 고공 행진하는 물가를 잡아 보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얼마 전 이명박 포수가 물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 보았지만 물가는 포수의 얼굴에 오줌발만 '찔끔' 남기고 비행을 계속한다. <기자 주>

 

날개 달고 나는 물가, 설설기는 저 포수들

 

이번엔 어느 포수가 나서려나. 물가 오름세를 잡아 보기 위해 유류세를 인하했다지만 효과는 없다. 그 결과 정유업계만 돈 벌어주는 꼴이 되었고, 정부는 거두어 들일 수 세금만 날렸다. 국제 곡물 가격이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고, 두바이유와 브렌트유를 비롯한 원유와 서부 텍사스 중질유 등도 상종가를 치고 있다.

 

바야흐로 에너지 전쟁의 시대이다. 석유 파동에다 식량 전쟁이 가세하면서 쌍끌이 위기를 부르고 있다. 예상 못했던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파장이 큰 것은 서민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물가가 덩달아 오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밝히는 평균 물가 오름세는 4%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서민이 느끼는 물가는 그 이상이다.

 

실제로 밀가루 값은 100% 가까이 인상되었고, 일부 식재료는 지난가을 이후 200% 이상 올라 더 이상 인상률을 따질 수 없을 정도이다. 슈퍼에 가보지만 오르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는 이미 인상된 가격에서 또 인상될 것이라는 예고가 줄줄이 나온다는 점이다.

 

시중에 나가면 사람들의 입에서 '비싸다'라는 말이 연방 나온다. 장 보러 나온 주부들의 입엔 '비싸요!'라는 말이 자동장치처럼 달렸다. 이쯤되면 주머니 얇은 서민으로서는 견딜 재주가 없지 않던가. 치솟는 물가를 피하면서 용케 이 어둔 시대를 탈출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이제부터 그 고민을 해보자.

 

냉장고를 털자, 의외로 먹을 것이 많다

 

감당하기 어려운 물가, 연봉 180만원에 불과한 내 수입은 15년 넘게 동결이다. 오르기는커녕 어느 해는 형편없이 떨어진다. 20년 전에 원고지 1매당 4천원 정도 하던 원고료가 요즘엔 더 내렸거나 아예 사라져버렸다. 그렇다고 굶을 수는 없으니 이참에 냉장고 정리도 할 겸 냉장고를 털기로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을 것이 제법 많다.

 

오래된 것들이라도 손질만 잘하면 훌륭한 먹을거리가 된다. 냉동실엔 3년 전에 산 먹다 남긴 생선도 있고, 언제부터 있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오래된 삼겹살도 얼려진 채 들어 있다. 누군가 사다 놓았던지 연어알도 있다. 비빔밥을 해 먹기엔 안성맞춤인 것들이다. 

 

냉장고를 살피면서 뭔가 큰 게 있다 싶어 확인했더니 작년에 낚시꾼에게 얻은 송어도 한 마리 있다. 횡재한 기분이다. 송어를 준 낚시꾼은 선수였다. 그는 파리채 같은 견지낚시로만 큰 송어를 척척 낚아 올렸다. 처음 팔뚝만 한 송어를 한 마리 낚아 올리더니 빙긋 웃으며 그냥 놓아 주었다.

 

낚시를 간 우리 일행은 겨우 피래미 몇 마리만 낚은 처지라 손 맛만 즐기는 그 사내의 여유가 부러웠다. 잠시 후 사내는 또 한 마리를 낚았다. 그는 이번에 우리 일행을 보더니 "필요하세요?" 하고 물었다. 일행이 냉큼 송어를 받아왔고, 다음 날 먹자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는데 아직까지 있는 것이다.

 

냉장고만 잘 활용해도 몇 달은 버틸 수 있다. 그렇다고 냉동실에 생선과 냉동 고기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가래떡도 들어 있고, 백설기도 있다. 냉장고엔 김장 김치 또한 많이 남아있다. 라면이나 국수를 끓이지 않으면 먹지 않았던 김치가 이럴 땐 최고의 찌개용이 된다. 밀가루가 비싼 탓에 김치전을 못해 먹지만 김치 볶음이나 김치된장국은 입맛까지 살려낸다.

 

그것뿐이랴, 냉동실엔 지난해 수확한 냉동옥수수도 한 접은 된다. 이것만 있어도 두어 달은 한끼 식사 대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 냉동 옥수수만 있나. 말린 옥수수도 있다. 하루 두 끼 먹는 식사 중 한 끼는 밥이고 한 끼는 옥수수로 해결하면 된다. 처절하지만 하는 수 없다. 물가 비싸다고 징징거려 본들 가난한 사람만 더욱 비참해진다. 이럴 때 웰빙으로 가는 것이다. 돈도 절약하고 건강도 챙기는 기회로 삼자.

 

몇 십년 만에 찾아온 보리고개, 추억만은 아니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먹는 것 때문에 기분 심란해질 일 없으니 나름대로 즐기면서 살아보자. 나른한 봄날 저녁 술 생각이 난다면 막소주 큰놈으로 한 병 사다 벗 두어 사람 초대해서 냉장고 것들만으로 조촐한 술상을 만들자. 그래보았자 소주값 포함해 3천원도 들지 않는다. 1인당 천원도 들지 않는 술자리이니 지지리 궁상떨며 살 일은 없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는지, 하고 묻는 이도 있다. 걱정 없다. 기본 반찬인 된장을 비롯해 고추장, 간장이 있지 않던가. 곧 완연한 봄이다. 이것들만 있으면 먹고사는데 지장 없다. 3월 말이면 산나물이 날 테고 그때부터 가을까지는 쌀과 된장만 있으면 걱정 없이 산다.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은 이번 한 달만 버티면 해결되는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이다. 

 

겨울에서 봄으로의 계절 이동이 시작되는 3월. 옛날부터 3월은 보릿고개의 계절이다. 겨울보다 무서운 계절이 봄이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어머니가 춘삼월 초이레, 나를 낳고 열흘을 굶었다는 말은 결코 전설이 아니다. 젖도 나오지 않는 어미의 빈 젖을 빨며 울었을 내 어린 시절도 결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기억조차 없는 내 가난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에 '영양실조'라고 적혀 있을까 싶다. 그러하니 가난은 오랜 연인과 다르지 않다. 자발적 가난이든, 사회적 가난이든 견딜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지난 일은 역시 지난 일이다.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가난의 고통을 참을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먹을 것은 넘치는데 '전'이 없다는 것이다. 수입은 뻔한데 늘어가는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호소를 해보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게 현실이다. 경제 관료들도 현실을 타개할 마땅한 대책이 없는지 먼 강산만 바라본다.

 

이 어려운 시기를 살아 남기 위해서는 결국 소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담배를 끊을 수 없다면 나처럼 꽁초를 재활용하고, 전화로 할 말이 있다 해도 가능하면 이메일을 사용하고, 급박한 일이 있을 땐 문자메시지로 해결한다. 아프지 않으려면 가끔은 맨손 체조라도 해야 한다.

 

움직이는 순간 돈이 들어가므로 돈벌이가 시원찮은 사람은 가능한 동선을 줄인다. 생선을 사도 파장 때 사야 할 것이며 반드시 머리까지 먹을 수 있는 고등어를 산다. 바삭하게만 구우면 머리만으로도 한 끼는 해결한다. 철저한 자린고비 생활만이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손님] 뭐가 이렇게 올랐어요? vs [주인] 우리가 올린 거 아니에요!

 

열흘 전엔 장터에 가서 순두부 세 봉지를 사왔다. 500원 하던 것이 두어 달 만에 1000원으로 올랐다. 양을 비교하면 그래도 순두부가 가장 싸다.. 순두부 한 봉지면 이틀을 먹는다. 이번엔 열흘간이나 먹었다. 음식값으로 열흘 동안 지출한 돈이 3000원이다. 그래도 산다.

 

며칠 전엔 제법 큰 슈퍼에 들렀다.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표정이 다들 언짢아 보였다. 한 아주머니, 요구르트를 계산하려다 말고 "뭐가 이렇게 올랐어요?" 하고 쌍심지를 켰다. 요구르트 한 줄에 400원이나 올랐다는 것이다. 계란 값도 올랐다며 공연히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계산원에게 화풀이를 한다.

 

계산대 앞에서 옥신각신하자 주인이 나오더니 한마디 한다.

 

"우리가 올린 것도 아닌데, 왜 우리한테 그러세요."

"올렸으면 올렸다고 말을 해야지요. 계산하고 나서 올렸다고 말하면 어떻해요."

"아이참, 아주머니도. 오른 것이 한둘이라야 올랐다고 표시를 하지요. 물건 가격을 음식점처럼 일률적으로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오르지 않은 것이 없다. 생활용품에서부터 반찬류, 건자재, 농기구(쇠값이 오르면서 급등했다), 음식점, 기름값, 비료값 등.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김 없이 가격이 올랐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돈이 원수인 세상이다. 그날 나는 슈퍼를 30분이나 돌다가 겨우 1000원짜리 마른 김 하나를 사왔다. 간장만 있으면 이것만으로도 서너 끼는 충분히 해결한다.

 

저녁 시간이지만 슈퍼가 한산했다. 저녁 찬거리를 사기 위해 주부들의 발길이 이어져야 하지만 그것 또한 옛날이야기란다. 물가가 오르면서 손님이 줄었고, 주부들의 장보기 풍속도 또한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 경제 못살리면 ...

 

물가 급등의 현실을 무시하기 위한 방법은 소리를 줄이는 일 밖에 없다. 그러나 소비가 줄면 경제가 더 위축된다. 국가의 발전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적당한 소비가 있어야만 기업도 살아남기 때문이다. 서민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그 소리가 배부른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렇게 소비 주체가 지갑을 닫게 되면 기업이 죽는소리를 낸다. 생산한 상품은 쌓이고 자금회수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정도 되면 기업이 정부에다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는 방법을 내놓으라고 압력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 경기는 하락하고 물가는 지속해서 오른다. 국민보다 기업이 어려운 구조다.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인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죽는소리를 내면 정부는 건전한 소비 운운하면서 소비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나선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지금 당장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카드는 돈을 쓰지 않는 것뿐이다. 그래야 정부나 기업이 건강 소비 주체인 국민을 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살리겠다고 철썩 같이 약속했다. 어렵지만 국민은 대통령이 경제를 살릴 때까지 믿고 기다려야 한다. 방법이 없다. 경제 살리겠다고 말한 사람들은 한나라당과 대통령뿐이었다. 그러니 믿을 수밖에 없다. 만약 경제 못살리면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죄를 물어 탄핵하고, 더 능력 있는 사람들 뽑자. 간단하다.

 


태그:#물가비상, #무능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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