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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둘째 주 토요일(8일) 아침 날씨가 흐리다. 나와 집사람은 전남 나주시 금천면에 위치한 죽설헌을 방문하기 위한 나들이를 서두른다. 죽설헌 구경 겸 주인인 시원 박태우 씨를 만나보기 위해서이다. 박태우씨는 조선일보 컬럼작가 조용헌씨의 저서 <방외지사>에 소개된 인물로 초야에 묻혀 살면서 인생을 관조하는 화가이다. 아침 일찍 방문을 위한 전화를 하니 오후에는 볼일이 있으니 오전 중으로 왔으면 한다.

 

송정리 산업단지 부근에서 다시 확인 전화를 하고나서야 찾아 들어선 곳이 죽설헌이다. <방외지사>에 소개된 데로 앞의 저수지와 뒤의 3천여 평의 정원에 들어선 각종의 수목들이 서로 서로 조화를 이룬다. 매화와 산수유 꽃이 우중충한 나목들 사이로 봄기운을 전한다.

 

죽설헌 입구에 이르니 사진촬영을 금한다는 내용과 작품을 구상 중이니 방해를 사양한다는 경고? 판이 눈에 띤다. 이 사람도 유명세를 톡톡히 내고 또 비싸게 받는구나 싶다. 나와 집사람은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인 대전에서 온다고 해서 겨우 방문허락을 받은 모양이다. 쓴 미소를 지으며 어께를 들썩이며 서양사람들의  몸짓을 해본다. 옆의 집사람이 가소로운 듯 실소한다.

 

대문으로 사용하는 대나무 가지를 들쳐 내고 본체에 이르는 길로 들어서니 낡은 기왓장 담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내더니 좌측으로 잘 다듬어진 탱자가시나무, 우측으로는 꽝꽝이 나무들이 일렬로 도열하여 우리를 맞이한다. 열병하는 장군이라도 된 기분이다.

 

'정원은 이런 거구나' 느끼면서 본체 마당에 들어서니 안방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서서히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나와 우리를 맞는다. 50대 초반의 머리를 길러 뒤로 묶은 시골 아저씨이다. 아니, 한 소식한 거사요 자신의 고유 영역을 확보한 화가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의 털털함과 감성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섬세함을 더해 놓은 분위기이다.

 

나의 명함과 시원 박철우 화가의 소개장이 건너오고 건너가자 방문의 목적을 전화로 미리 얘기한 터라 우리는 바로 애기의 본론으로 들어간다. 시원 선생이 운을 띤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사업을 실패했을 때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겠다는 말의 모순을 강조한다.

 

나와 집사람이 우리의 4년 동안의 손바닥만한 텃밭을 일군 경험을 들어 맞장구를 치자 시원 선생의 말은 힘을 싣는다. 서글픈 일이지만 먹고사는 경비를 농사로 벌 생각은 어려운 일이니 접어두는 것이 좋다. 귀향이 생계가 아닌 다른 목표가 없으면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나는 선을 통한 나의 마음 본 자리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시원 선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시원 선생은 나의 집짓고 정원 가꾸기 계획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강조하며 요약한다.

 

첫째, 주부가 편하도록 설계하라.

둘째, 최소한의 시행착오를 원한다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의 조언을 청하라.

셋째, 남에게 보이기 위한 집인지 자기가 살기 위한 집인지를 분명히 하라.

넷째, 집을 남향으로 앉히되 남북으로 관통하는 통풍로를 고려하라.

 

꼭 귀담아 들을 만한 조언들이다.

 

그러나 이것을 더 줄이면 집사람이 하자는대로 하면 되겠단다. 나와 집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니 나의 외향적이며 전형적이고 인위적인 스타일과 취향이 영 아닌 모양이다. 시원 선생의 가옥을 둘러 보고난 나의 결론은 손길이 많이 갔지만 손댄 것 같지 않고, 방치한 것 같지만 섬세한 손길이 와 닿는 그러한 집과 정원이 가장 정원다운 정원이다. 라는 것이다.

 

끝으로 시원선생의 자기 집은 1995년 700만원으로 지은 후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본 형틀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집의 뼈대를 중시한 결과라는 것과 내가 집을 짓고자하는 지리산 산동면은 그 자체가 정원이니 될 수 있다면 손을 덜 대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

 

조용헌씨 <방외지사>외에도 죽설헌을 소개한 <김서령의 家> 책에 의하면 시원은  20세의 약관시절에 이미 300여 종의 나무들이 산림으로 자랄 죽설헌의 밑그림을 완성하고 장성 백양사에서 단풍나무 종자를, 나주 불화사에서 호두나무와 산벗나무 종자를, 해남 대흥사에서는 동백과 비자나무를 옮겨 심고 돌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무의 아버지라 불리고 죽설헌의 창조주라 여긴다는 것이다.

 

나의 돌아갈 곳을 준비하는 수련터가 될 전남 구례군 산동면 시상리 산 30번지에 들어 설 집의 윤곽이 어슴프래 떠오르나 싶자, 집사람이 옆구리를 찧는다. 일어서자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지났다. 우리에게 할애된 시간이 이미 지난 모양이다. 마당 끝까지 배웅 나온 시원선생의 부부에게 신선의 생활이 부럽다는 인사를 하고 죽설헌을 나선다.

 

큰길로 나서자, 집사람이 나주곰탕을 점심 메뉴로 추천한다. 나의 몫을 비우고 집사람이 남긴 것 까지 해치우자 집사람이 나의 혈당이 걱정인지 나주 시가지 부근의 산책을 권한다. 시골의 한적한 분위기와 따사로운 봄 날씨가 걷기에 그만이다.

 

봄기운을 받아 물이 오른 보리밭과 콩밭을 지나노라니 대전으로 봄소식을 전하고 싶어진다. 한 움큼씩 모셔온 보리와 완두콩 모종을 화분에 심었으나 다음날 꽃샘추위에 얼어버렸다. 우리집 야생화 화단에도 봄처녀와 동장군의 싸움이 한창이다. 억지와 순리가 극명히 대비된다.

 

 

 

덧붙이는 글 | 정원을 만들기 위한 조언들


태그:#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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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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