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궁금했습니다. 정말 궁금했기에 꼭 한 번은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철썩이는 파도가 내려다 보이는 바닷가 법당, 의상대사가 파랑새를 쫓아 들어가 7일 밤낮을 기도했던 곳, 7일 후 붉은 연꽃이 솟아나고 그 위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친견할 수 있었기에 그곳에 암자를 세워 홍련암이라고 이름 짓고,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한 곳이기에 관음굴(觀音窟)이라고 불렀다는 그곳, 홍련암 법당바닥을 이루는 관음굴에 꼭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망망대해를 이루고 있는 동해의 푸른 물결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몇몇 명소 중의 한 곳이 의상대에서 홍련암으로 이어지는 바닷가입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낙락장송을 이루는 의상대 소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면 모진 풍파를 견뎌내는 강인한 생명력을 실감하게 되니, 지치고 시들었던 삶이 팔팔한 청춘으로 불끈 솟아오르는 기분입니다.

 

재수 좋게 간밤의 어둠을 박차고 동해로 치솟아 오르는 일출이라도 보게 된다면 그 환희로움은 가슴 속에서 불덩이가 됩니다. 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지 못하는 게 의상대나 홍련암에서 보게 되는 일출의 뜨거움입니다. 벅차오르는 감동을 어쩌지 못해 찔끔 눈물을 흘리는 이도 적지 않으니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의상대나 홍련암에서 맞게 되는 일출의 장관입니다.

 

 

홍련암을 갈 때마다 꼭 가보고 싶었지만,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인 고등학생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지만 철썩거리는 파도가 길을 막았고, 낭떠러지를 이룬 바위 절벽이기에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해 밀린 숙제처럼 항상 남길 수밖에 없었던 홍련암 관음굴은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나 먼 그곳이었습니다.

 

법당바닥에서 미역 건져 올려 식사

 

고등학교 시절로 기억됩니다. 국사시간에 잠시 수업을 멈추고 여담을 들려주던 선생님께서 꿀꺽하고 침이 넘어갈 만큼 맛난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동해안을 여행하시던 선생님께서 바닷가 벼랑 위에 세워진 홍련암이라는 작은 암자에 들렸었답니다.

 

스님을 만나 뵙고 이런저런 좋은 이야길 듣다 보니 훌쩍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이 되었고, 끼니때가 되니 홍련암 스님께서 법당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기다란 갈고리를 넣어 싱싱한 미역을 끌어올려 미역국을 끓여주어 맛나게 식사를 하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어찌나 맛깔스럽게 미역국 이야길 하시는지 여기저기서 군침을 넘기는 소리가 도랑물처럼 교실에 울렸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들려주셨던 홍련암 이야기는 법당바닥에서 미역을 끌어올려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 말고도 다른 이야기들도 있었겠지만 그 이후 기억에 남는 홍련암은  법당이 바다 위고, 법당바닥에 뚫린 구멍에서 끌어올린 미역으로 국을 끓이면 기가 막히게 맛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였습니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홍련암에 직접 가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홍련암은 바닷가 벼랑 위에 있었고, 법당바닥에 뚫어진 구멍을 통해 들여다본 바다에서는 파도가 철썩거리고 있었습니다.

 

구멍을 통해서 바라본 바다

 

법당은 비좁고 사람들은 북적거렸지만 홍련암을 갈 때마다 뚫어진 구멍을 통해 바다를 들여다보느라 코가 바닥에 닿을 만큼 납작 엎드렸습니다. 민망스러울 만큼 엉덩이를 치켜올리며 들여다봤지만 구멍을 통해 볼 수 있는 관음굴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보일 듯 말 듯 가려지는 그곳, 홍련암 법당바닥을 이루는 관음굴에를 꼭 한 번은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일반인들의 접근이 허용되는 곳이 아니었고, 낭떠러지도 낭떠러지지만 철썩이는 파도가 접근을 막았습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아도 부챗살을 펼친 듯 너울 파도가 일기 일쑤니 그럴 때마다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렇게 궁금했고, 그렇게 들어가 보고 싶었던 홍련암 관음굴에 지난 3월 1일 들어가 보았습니다. 반팔 옷을 입어도 춥지 않을 만큼 따뜻한 날씨여서 그런지 바다도 조는 듯 조용했습니다. 한참을 지켜봐도 일상적인 파도만 일 뿐 거친 물결은 일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동해가 관음굴을 열어주려나 보다 하는 기대감과 때가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종무소로 연락을 하여 출입과 접근을 허락받고 벼랑을 내려갔습니다.

 

 

조심은 하되 겁먹지 않는 몸놀림으로 벼랑을 내려가 모퉁이를 돌아 관음굴로 다가갔습니다. 벼랑을 내려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가에 서니 위에서 내려다보던 바다와는 달랐습니다. 점점이 부서지던 파도는 겁을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큰 물결로 느껴집니다.

 

파랑새의 마음으로 찾아간 관음굴

 

벼랑으로 된 모퉁이를 돌아 다가간 관음굴에서는 파도가 찬불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밀려오는 물결을 따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허허롭도록 반복되는 가락으로 찬불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건방을 떨다가는 미끄럼이라도 태워 혼내주겠다는 듯 위험한 곳이었지만 파랑새가 날아들고, 의상대사가 7일 밤낮을 하였던 기도가 서린 곳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달랐습니다. 나지막하게 찬불가를 부르던 파도가 가끔은 죽비를 후려치듯 철썩하고 부서집니다.

 

한참을 머물며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았습니다. 건질만한 미역이 있는지도 둘러보았고, 의상대사가 7일 밤낮을 머물렀을 만한 곳이 어딘가도 살폈습니다.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여지없이 바위에 부서지고, 부서지는 파도에는 전설로 피어 있는 붉은 연꽃이 하얀 몽우리가 되어 맺었습니다.

 

 

그 옛날 이런 낭떠러지에 어찌 법당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경이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법당을 이루는 바닥을 보고 있노라니 하늘에 걸친 무지개 형상입니다. 홍예문에서 걸친 쌍무지개가 이곳 홍련암으로 이어진 모양입니다. 무지개를 닮은 둥근 바닥은 구조적으로도 안전할 뿐 아니라 주변경관에 금상첨화의 조화를 이루니 아름답고도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헛발이라도 디디거나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풍덩 빠질 것 같아 조심조심하며 들어간 관음굴이기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관세음보살님’하고 불러보았습니다. 응답이라도 하듯 철썩하고 파도가 울려줍니다. 몇 번이고 ‘관세음보살님’하고 부를 때마다 세지도 거칠지도 않은 파도가 철썩철썩하며 응답합니다.

 

작고 좁은 골짜기를 이루던 관음굴은 홍련암 법당바닥에서부터 동굴을 이루듯 위쪽이 막혀 있었습니다. 꽉 막혀 답답한 동굴이라기보다는 벽을 이루는 양쪽바위에 커다란 돌을 얹어 놓은 너와처럼 숨통이 트이는 그런 형태로 뭍과 바다를 가름하지 않고, 하늘과 땅을 가름하지 않는 일원상의 동굴입니다.

 

 

굴로 들어가 볼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수문장처럼 동굴을 막고 있는 커다란 돌이 멈추게 하고, 좁고 가느다랗게 뻗쳐 있는 틈새가 아직은 전설로 남고 싶다는 주문쯤으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궁금했고, 꼭 한번은 들어가 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관세음보살님’을 염하며 관음굴에서 30여 분을 머물렀습니다. 무릎을 꿇고 몸을 낮춰 손을 내미니 파도로 부서진 물들이 손에 담깁니다. 파랗고 하얀색을 띠던 바닷물이 손으로 만든 표주박에 담기니 아무 색깔도 내지 않는 물이 됩니다.

 

손에 담긴 물에 혀를 가져다 대니 짠맛입니다. 싱싱한 미역국으로 맛깔스러움을 더해주던 그 맛, 고교시절 선생님이 자랑을 하여 입맛을 다시게 했던 상상 속의 미역국에서 배어 나오는 짠맛이 있었습니다. 날름거리는 혀에서 느끼는 맛은 바닷물에서 우러나는 짠맛만이 아니라 전설로 전해지는 홍련암의 맛이며 이야기였습니다.

 

철썩! 파도가 부서지는 건너 쪽 바위에 그림자가 생겼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바닷물을 먹어 보지 않고도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알고, 8만 4천 대장경을 다 읽지 않아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우친다고 하였는데 바닷가에 걸친 그림자는 제 몸이 바닷물이 잠겼음에도 짠맛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어리석은 흔적입니다.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려 파랑새의 날갯짓인가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죽비처럼 후려지는 하얀 파도입니다. 바다에 잠기고도 짠맛조차 느끼지 못하는 그림자를 거두며 주섬주섬 관음굴을 나왔습니다.

 

되돌아오는 모퉁이에서 뒤돌아본 관음굴에는 파랑새의 날갯짓이 힐끔 보였고, 서린꼭지를 한 의상대사의 기도가 묘음이 되어 들렸습니다. 그렇게 궁금했고,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홍련암 관음굴에 들어가 봤으니 파랑새는 보지 못했고, 관세음보살님은 친견하지 못했어도 성불이라도 한 기쁨입니다.

 

파랑새의 마음이 되어 찾아 들어간 관음굴에서 파랑새는 보지 못하고 바닷물에 잠긴 그림자만 보았습니다. 바닷물에 잠기고도 짠맛을 느끼지 못하던 그림자를 찾아 허벅지 한번 꼬집어보았습니다. 아얏! 하고 외치는 비명에 그림자조차 사라집니다. 관음굴에 담겼던 그림자 역시 오욕칠정에 찌든 나그네의 마음이니 마음이 어떤 건지 궁금해지니 푸드덕거리는 날갯짓을 하는 일상입니다.


태그:#홍련암, #관음굴, #파랑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