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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올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공교육과 가정교육만으로 일구어낸 일입니다. 대학에 입학했다 하여 '성공이다 실패다'를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는 하나의 주체로 살아가야 하지만 세상에서는 '성적'만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써 '나만의 자녀 교육법'을 몇 차례에 나눠 싣도록 하겠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님과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 번엔 '책읽기'를 소개했고, 오늘은 사교육 없는 '영어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 기자 주

 

 

누군가는 영어를 두고 망국의 병이라 했다. 나라를 망쳐 먹을만큼 복잡미묘한 일들을 만들어내는 영어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종가를 쳤다. 바야흐로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면 영어교사라도 살아 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럴 때 대한민국이 지닌 고유의 주체성이나 정체성 따위는 게딱지만도 못한 대접을 받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부가 앞장서서 전 국민에게 '영어에 미쳐야 한다'라고 소리를 높이니 달리 할 말도 없는 게 요즘이다.

 

영어교육,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국어도 모르는 아이들이 영어를 줄줄 꿰는 것이 요즘 세상이라 외국어 하나쯤 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다. 어디에 이력서를 내밀던 영어를 할 줄 모르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니 영어를 하긴 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영어를 피할 수 있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영어. 나는 내 아이가 영어를 피할 재주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을 알았고,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나름의 영어학습법에 대해 고민했다.

 

학원비가 가정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던 시절. 나는 '학원식 영어 학습법'을 포기하고 '가정식 백반'을 준비했다. 그것은 영어라는 외국어를 반드시 학원에 가야만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인 1996년도 학원의 영어교육은 말하기와 듣기 교육이 위주였다.

 

그렇다면 사교육을 포기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읽기와 쓰기, 그리고 번역이었다. 말만 잘하는 사람보다 영어책을 줄줄 읽거나 영어로 글을 쓸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었다. 처음엔 학원에 보내지 않고도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물론 학원에서는 내가 생각한 교육법(쓰기(작문), 번역(독해))을 적용하지 않았으니 그 결과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전 알파벳을 익혔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영어로 대화하기엔 나 역시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 일은 실현에 옮기지도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는 집에서 '단어 숙어집'을 외우게 했다. 몇 달 해보았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았다. 암기교육이라는 것이 실체적 체험으로 연결되지 못한 이유였다. 단어를 외우게 하는 일은 몇 달만에 그만두었다.

 

혼자서 하는 영어교육의 첫걸음 '영어로 일기쓰기'

 

아이가 동화책을 줄줄 읽어가듯 영어 또한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뭘까. 고민 끝에 '영어로 일기쓰기'를 선택했다. 일기라는 것은 어차피 숙제 검사를 맡기 위해서라도 매일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나는 가지고 있던 영어 관련 사전을 아이에게 다 주었다. 아이에게 준 사전은 '영어사전'을 비롯해 '영한사전', '영영사전' 세 권이나 되었다.

 

"영어에 관한 모든 것이 사전에 다 들어 있단다. 모르는 것은 여기 있는 사전들이 답해 줄거야."

 

나는 아이에게 사전을 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동화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낱말이 나왔을 때 국어사전을 찾아보라고 했던 일과 같은 맥락이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는 두 달 정도까지 "to day…"만 썼다. 나는 처음부터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그 일마저 잘했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오늘은 별로 한 일이 없었던 모양이구나"하며 쓸거리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세 달쯤부터 아이의 일기장엔 "to day very fun"이라 쓰여지더니 한 문장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의 일기장을 보면서 "오늘은 즐겁기만 했니?" 또는 "아빠와 놀았던 것은 일기에서 빼먹었네?"하며 새로운 단어를 찾아내게 했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아빠, 담임선생님이 영어로 일기 쓰지 말래요"라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한글부터 익혀야 한대요"라고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말씀도 일리가 있구나. 하지만 넌 이미 책을 많이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으니 괜찮단다. 내일 선생님을 만나 볼 테니 걱정말고 하던 대로 영어로 일기를 쓰려므나."

 

담임선생님께서 아이의 한글 교육이 걱정되셨던 모양이었다. 한글도 모르면서 영어로 일기를 쓴다는 것은 나 역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에 선생님의 지적에 대해서는 수긍이 갔다. 다음 날 오후 나는 학교를 방문해 아이의 담임을 만났다. 정년 퇴직을 얼마 앞둔 선생님이었다.

 

"아이가 영어로 일기를 써서 걱정이 많으셨겠습니다."

"2학년이면 아직 한글을 깨쳐야 할 나이거든요. 실제로 한글도 모르는 아이들이 있고요."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학교교육도 중요하지만 가정교육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나는 선생님께 "아이의 한글교육은 집에서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 영어일기는 계속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은 그 약속만 지켜준다면 괜찮다고 말했다. 학교와의 문제는 그렇게 해결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영어일기와 함께 시작한 '영어동화책 번역'

 

영어 일기가 자리잡을 무렵인 2학년 겨울방학 때부터는 아이에게 번역을 시켰다. 쓰기를 하면서 읽기는 저절로 되었고, 이번엔 번역을 통해 독해력을 키워야 했다. 처음엔 영어와 번역문이 함께 있는 책을 선택했다. 번역할 책은 아이가 읽었던 동화책 중에서 짧은 단편동화를 골랐다. 그러나 번역문이 함께 있는 책은 아이의 공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스스로 번역하기보다는 번역문을 인용하기에 바빴다.

 

처음 건넸던 책을 접게 하고 큰 서점에 가서 영어로만 된 동화책을 사왔다. 책은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와 '소공녀' 등이었다. 이미 한글로 된 동화책으로 읽었던 터라 아이도 낯설어 하지 않았다. 아이는 먼저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선택했다. 나는 욕심부리지 말고 몇 년이 걸리더라도 혼자의 힘으로 번역을 해보라고 했다.

 

문법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였지만 나름대로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동안은 하루 두 세 문장도 힘들어했다. 영어는 어차피 시간과의 싸움이기에 빨리 하라고 닦달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일이었다. 그 무렵 아이의 공부 시간은 하루 두 시간이었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로 시간을 정해 놓았다. 그 시간엔 어떤 일이 있어도 TV를 켜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공부시간까지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놀게 했다. 방학 때는 하루 종일 놀았다. 그러나 공부시간 만큼은 반드시 지키게 했다. 아이가 영어에 투자하는 시간은 하루 두 시간. 그 시간 아이는 영어로 일기를 쓰거나 번역을 했다.

 

방학이 끝나고 3학년에 올라갈 즈음, 아이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번역을 끝냈다. 내용을 살펴보니 틀린 곳도 있었지만 원문에 충실한 문장이 더 많았다. 아이도 혼자의 힘으로 번역을 해냈다는 기쁨에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스스로 획득한 것이었다.

 

영어 일기는 그 즈음부터 일상화가 되었다. 스스로 사전을 찾아가면서 쓰는 영어 일기에도 낯선 단어들이 점점 늘어갔다. 아이는 다시 <소공녀>를 번역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에게 영어는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므로 일상화 하라고 자주 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돈이 생기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게 하기 위해서라도 외국 구경을 시켜 주겠노라 약속을 했다.

 

번역 포기한 '동물농장', 그러나 아이의 성장엔 약으로 작용해

 

아이는 아비의 말을 군소리없이 잘 따랐다. 그것은 강요보다 영어를 왜 익혀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에 비해 '듣고 말하는 것'은 떨어지지만 읽고 쓰는 것은 아이가 훨씬 앞설 수 있다는 판단이 들기 시작한 것도 그무렵부터였다.

 

언어라는 것이 말하는 것만으로는 그 언어에 대한 문화를 이해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말하는 것은 짧은 교육만으로도 가능하지만 문화의 깊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언어로 된 책을 읽고 쓰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나는 아이가 영어로 된 좋은 책들을 척척 읽으며 자신만의 사상과 철학을 채우길 기대했고, 아이는 그 첫걸음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아이는 <소공녀>를 3학년 동안 번역했고 4학년까지 두 권의 단편동화를 더 번역했다. 그런 다음 나는 조금은 어렵다 싶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아이에게 건넸다. 그동안 얇은 책에 비해 동물농장은 두꺼운 장편소설이었다. 더구나 동물농장은 그동안의 동화에 비해 어려운 단어가 많기도 했다.

 

아이는 1년에 걸쳐 <동물농장>을 번역했으나 절반도 하지 못했다. 단어를 찾다 보면 시간이 다 간다는 <동물농장>. 아이에게 무리다 싶었다. 아이는 결국 <동물농장>의 번역을 포기했다. 내가 보기에도 효율성이 떨어졌다. 번역을 끝까지 했으면 큰 산 하나를 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었다.

 

아이가 5학년을 끝낸 겨울방학. 문학상을 받으면서 내게 목돈이 생겼다. 나는 아이에게 외국 구경을 시켜주리라 약속했던 일을 상기하며 3주 코스 어학연수를 보냈다. 학원을 보낸다면 몇 년은 족히 보낼 수 있는 돈을 투자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과 '동기'라는 판단을 했고, 짧은 기간이지만 외국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혼자 여행을 보내리라 마음 먹었지만, 굳이 어학연수를 보낸 것은 외국에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간 곳은 호주. 지독한 감기로 고생하던 아이는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감기가 나았다며 공기좋은 나라 호주에 대해 감탄했다.

 

 

호주 어학연수 갔던 아이, 책을 사들고 오다 

 

홈스테이로 학교를 오가며 외국 생활을 경험한 아이. 영어를 배워 오게 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세상이 넓다는 것과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만 알고 오면 그만이었다. 12살 무렵이니 사고의 영역을 넓힐 수 있으며, 문화적 충격의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판단도 했다.

 

3주 후 귀국을 하면서 아이가 들고 온 것은 친구들에게 선물할 열쇠고리와 아비를 위한 담배 다섯갑(한보루였는데 공항에서 다섯갑을 빼았겼다고 함), 그리고 영어로 된 소설책 한 권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호주의 서점에서 산 책이에요."

"무슨 내용인데?"

"환타지 소설이에요. 호주에도 환타지 소설이 유행하나봐요."

 

환타지 소설. 그 무렵 아이는 <드래곤라자>와 <묵향> 등의 환타지 소설에 빠져 있었다. 그때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졌으며 출판사로 책동냥을 다니기도 했다. 아이가 원하는 책을 구해주는 일은 아비인 내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럼 어차피 읽어야 하니 이 책을 번역하면 되겠다."

 

나는 아이에게 호주에서 사온 책을 번역하게 했다. 아이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이가 호주에서 책을 사왔다는 것에 대해 아비로서 큰 보람을 느꼈다. 한국에서 함께 간 친구들이 햄거버집에서 군것질을 하던 시간에 아이는 학교 근처 서점에 들러 책구경을 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호주의 서점에서 책을 보다 머물던 집으로 가는 버스를 놓치기도 했다니 아이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외국에 나가 책을 구입한다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어른들도 하기 힘든 일이 아니던가. 나는 그날 저녁 아이에게 자장면을 사주며 '고맙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영어로 일기 쓰고 책 번역하다보니 저절로 '수능 1등급'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는 학교에서도 본격적으로 영어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이미 영어에 익숙해진 터라 영어과목에 대해 힘들어 하지 않았다. 아이를 괴롭힌 것은 영어 문법이었으나 그 또한 세월이 말해주는 것이었다. 말하기와 듣기는 학교 교육으로 충당했다.

 

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영어를 익혔기에 친구들이 어려워하는 작문이나 독해는 월등했다. 아이 스스로도 그 분야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최고라고 자부할 정도였다. 그런 이유일까.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때까지 집에 돌아오면 하루 2시간만 공부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하루 두 시간 공부가 그때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데 이젠 공부 시간을 조금은 늘려야 하지 않니?"

 

고등학교 2학년인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니, 아이는 "3학년 되면 어차피 야간자율학습 해야 하니 그때까진 놀게요"라고 했다. 나는 아이를 믿었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공부라는 게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 집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도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적어도 하루 7시간은 잤다. 잠을 줄여가면서 공부하는 것은 내가 반대했다. 이번 수능시험에서 아이는 외국어 영역에서 1등급을 받았다. 영어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러하니 아이가 수능에서 1등급을 받은 것은 영어 책을 가까이한 이후 생긴 수많은 '이윤' 중에서 하나의 '덤'일 뿐인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한 아이의 '스스로 학습법'은 책을 즐겨읽듯 영어도 아이의 성장시기에 필요한 학문 중 하나의 과목에 불과하다. 영어에 목메는 수많은 사람들. 이 시간에도 아이들은 학원으로 달려가지만 그 비용에 비해 '말'은 모르겠지만 언어에 대한 학문적 성취도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 생각이다. 학문의 깊이는 말하고 듣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태그:#영어학습, #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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