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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지난 몇 개월과 대통령 취임 이후의 정치판을 생각하면 가슴은 답답해지고 만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던 대통령 선거, 태안반도를 검게 칠한 기름 유출 사건, 국민의 염장 지르는 정책만 내놓은 인수위 활동, 까맣게 타서 무너져 내린 숭례문, 투기 잘 하고 논문 표절 잘하는 사람들이 장관이 되었던 일들로 인해 정서적인 공황상태,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렸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영어를 국어 쓰듯 하고 투기, 탈세, 논문 표절에 능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군대 안 가고 싶어하는 아들을 군대 보낸 일도 억울했다. 그러다보니 여행도 재미가 없었고 아름다운 경치도 밋밋한 풍경이었을 뿐이다. 

일상을 담은 잔잔한 글, 시비에 휘말리지 않는 글을 쓰고 싶었던 애초의 계획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답답한 현실을 외면하고 살 수 없고 그렇다고 휘갈기듯 욕을 쓸 수 없었다.
이제 아내의 말대로 내 성격 탓으로 돌리고 다시 삽을 잡는다. 그리고 우리의 정원에 철쭉도 심고 유실수도 심는다. 씨를 뿌리는 시기를 놓치면 수확할 것이 없고, 좋은 씨앗을 심지 않으면 많은 수확을 기대할 수 없듯이 나무도 심는 시기가 있고 꽃을 보고 열매를 거두는 시기가 있다. 아마 당분간 쉬는 날에는 나무심기에 바쁠 것이다.

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간 설계를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하고 좋은 나무를 고르는 일도 중요하다.

사실 지난해 땅을 구입한 후 많은 고민을 하고 형편에 맞추어 상당한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한 해가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지금도 아마추어지만) 아무래도 정원은 엉성하여 경험 부족이 그대로 보인다.

눈 덮인 정원에 징검다리의 흔적과  멀리 꿈꾸는 나무들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인상적이었다.
▲ 지난 겨울 눈 덮인 정원의 모습 눈 덮인 정원에 징검다리의 흔적과 멀리 꿈꾸는 나무들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인상적이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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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난해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정원을 가꾸는 책을 참고하고 우리와 비슷한 지형의 정원을 답사하여 안목을 넓혔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2일) 지난해 봄 잔디밭 한 가운데 심었던 나무들부터 옮기기기 시작했다.

나무에는 꽃을 보는 나무도 열매를 따는 나무도 있다. 서까래로 제격인 나무가 있고 기둥이 될 나무도 있다. 백년만 사는 사무도 있고 천년을 사는 나무도 있다. 잎이 지는 나무도 있고 사철 푸른 나무도 있다. 나무의 특성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런데 만약 정원을 만드는데 정원사가 한 종류의 나무만 심는다면 칭찬받지 못할 것이다. 크기를 고려하지 않고, 또 꽃을 피우는지 열매를 맺는지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심는다면 멋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모든 꽃나무에게 기둥이 되라하고 소나무에게 색색의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비웃음을 살 것이다. 모든 나무를 똑같이 취급하고 모든 나무에게 자기 기준으로 똑같기를 원하는 사람은 어리석다고 할 것이다. 모든 나무를 기둥감으로 키우겠다고 말하는 것도 듣는 사람을 속이는 짓이다. 뿐만 아니라 결국 아름다운 정원은커녕 정원 자체를 망치고 말 것이다.

봄의 기운이 슬쩍 느껴진다. 잔디밭가의 돌은 물확이다.
▲ 우리의 정원 봄의 기운이 슬쩍 느껴진다. 잔디밭가의 돌은 물확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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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철쭉은 넓은 땅에 한두 그루 성글게 심으면 보기에 좋지 않다. 또 한 종류만 심어도 싫증날 염려가 있다. 그래서 철쭉은 다양한 종류를 골라 무더기로 심을 계획이다. 땅의 경계에 울타리 용도로 심고, 소나무나 백일홍 등 큰 나무 주변에도 어울릴 수 있도록 심어야겠다.

유실수는 물 빠짐과 토양을 고려하여 골라 심되, 길한 나무를 골라 좋은 방향에 심을 작정이다. 예부터 앵두는 뱀을 쫓는 나무라고 주로 우물가에 심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앵두는 산자락에 심을 작정이다. 귀신을 달랜다는 복숭아는 동쪽에 심고, 입구에는 후손이 번성한다는 회화나무를 심어야겠다. 지난해에 못 심은 감나무는 두 줄로 심고 자투리땅은 매실로 채워야겠다.

작은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도 이렇듯 많은 생각이 필요한데 하물며 사람을 기르는 교육이나 국가를 경영하는 일에는 얼마나 많은 계획과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삽질을 하다가도 먼 산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자고 나면 물가는 치솟아 불안하고, 무역 적자라는 소식도 마음을 어둡게 한다. 곡물 가격이 오르고 식량을 무기화 될 것이라는 예측도 심각하게 들리고 남북관계도 전에 비해 매끄럽지 못한 것 같아 염려스럽다.

사교육비의 인상으로 학부모들의 부담이 늘었다는 기사를 본 것이 엊그제인데 어제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국에서 일제고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전국 석차를 알 수 있다는 말도 들린다. 본격적인 경쟁의 신호탄인 것 같아 착잡하기만 하다. 이제 자립형고등학교와 특목고를 많이 만들면 중학교에서도 아침 0교시와 야간 자율학습을 시작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걱정이 앞선다. 그렇게 되면 이 땅의 중학생들은 어떻게 되나.

현재도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국어, 영어, 수학 능력만으로 학생을 평가하고, 그것도 선택형 객관식으로 우열을 가르려 한다. 학교에서 정서교육과 예절 교육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국어, 영어, 수학 점수 올리기에 목숨을 걸고 있다. 과연 그렇게 해야만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 아무리 음악과 미술에 소질이 있어도 영어와 수학을 못하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없는 나라가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교육의 정상화는 영어교육 강화와 대학입시 자율화에 있는 것일까?

잔디밭 가운데 주목과 보리수 나무는 다른 곳으로 옮겼다.
▲ 최근 잡은 정원의 일부분 잔디밭 가운데 주목과 보리수 나무는 다른 곳으로 옮겼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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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원사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기 위해 토양에 맞는 작물을 골라 심고 작물에 따라 물을 주고 거름을 조절해야 하는 법이다. 모든 나무를 똑 같이 취급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내 땅이라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나무만 심어서도 안 된다.

사람을 키우는 일도 나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의 특성을 살리는 교육 조화로운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잘하는 점을 찾아 격려하고 아이들의 성장을 기다려야한다는 말이다.

알묘조장(揠苗助長)이라는 말이 있다. 미처 자라지 않은 벼의 목을 뽑아 키를 키우려하지만 그렇게 억지로 키운 벼가 제대로 자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농사를 망치고 말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보면 알묘조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건 우선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조급한 것 같다.

아이들이 자신의 소질과 특기를 살리며 활발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특별한 재능을 살려주어야 한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기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부모가 잘났다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받는 경우도 없어야한다. 키 작은 다리를 늘이고 키 큰 아이의 다리를 자르는 스핑크스의 침대를 떠올리는 교육은 사라져야한다.

정원에 나무들이 모여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낙옆이 지는 모습을 연출하듯, 교육도 그렇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사고하고 창조하며 더러는 춤추고 노래하는 학교, 한쪽에서는 이젤을 펴놓고 세상의 풍경을 담아내는 아이들이 어울리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그날이 올 때 공교육의 정상화는 이루어질 것이다.

이 순간 성장률 7%, 국민총생산 4만불 시대, 세계 7위의 경제 대국 도약을 외치며 ‘국민 성공 시대’를 이루겠다고 공약했던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에게 새벽부터 밤까지 딱딱한 의자에 앉아 시름하는 아이들과 단 하루만이라도 함께 하길 권하고 싶다. 아직 바람이 차갑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나무를 심을 때다. 편안한 정원을 위해.

덧붙이는 글 | 한겨레 내 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



태그:#알묘조장, #스핑크스의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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