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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혹시, 김영호 아니야? 에이~ 설마. 어? 맞네?"

계획에도 없었던 일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와의 만남은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지난 달 14일 오후 4시쯤(베를린 현지시각), 베를린영화제 개막식이 열린 복합영화관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근처에 있는 한 쇼핑몰 지하 1층. 오전에 방콕맨, 타블로와 함께 영화를 보고난 뒤, 기념품을 사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함께 원정에 나선 방콕맨이 어깨를 툭툭 건드리더니 "저기, 김영호다"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걸음을 멈춰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을 자세히 살폈다.

한 남자가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검은 비니 모자를 깊게 눌러쓴 한 남자, 배우 김영호였다. 원정대 출국 하루 전,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과 낮>으로 국제영화제 참석 차 베를린에 갔다는 기사를 봤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과 낮'의 남자주인공 배우 김영호가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근처에 있는 한 쇼핑몰 지하 1층에서 엄지 손가락을 들고 웃고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과 낮'의 남자주인공 배우 김영호가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근처에 있는 한 쇼핑몰 지하 1층에서 엄지 손가락을 들고 웃고 있다.
ⓒ 이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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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정 때문이었는지, 다소 피곤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영화제 보러 한국에서 왔어요"라며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특유의 함박웃음으로 일행을 반겼다. 이후 원정대는 10여 분 동안 깜짝 길거리 인터뷰를 나눴다. 다음은 김영호씨와의 간단한 일문일답.

-안녕하세요. 제 5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온 베를린영화제원정대예요. 소식은 들었는데, 사실 직접 만나게 될 줄 몰랐어요.
"우와, 정말 멀리서 왔네요. 영화제 보러 온 거예요? 근데, 어떻게 오게 됐어요? 몇 명이나 함께 왔어요?"

-미디어 다음, CGV, 한진관광과 함께 하는 베를린영화제원정대 이벤트가 있었는데, 인터넷에 영화 리뷰를 올려 뽑혔어요. 모두 10명이 선출돼, 이틀 전에 독일에 왔어요. 베를린엔 어제 왔고요.
"영화는 많이 봤어요? <밤과 낮>은 물론 봤죠?"

- 하핫. 오전에 일본 영화 <카베이>(KABEI)를 한 편 봤어요. 아쉽게도 <밤과 낮>은 일정 때문에 못 봤어요. 독일 오기 전, 예고편이 공개돼 보고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아쉬워요.

여기서 잠깐. 사실 김영호를 확실하게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툭 까놓고 말해 스타급 연기자는 아니다. "얼굴은 친숙한데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드라마 '야인시대' 얘기를 꺼내면 상황은 급반전된다. 주먹깨나 쓰는 씨름 선수 출신 깡패 '이정재'가 바로 그다. "아! 그 사람" 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당시 시라소니(조상구), 임화수(최준용), 이화룡(안승훈) 등과 함께 화려한 액션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성들은 사랑에 빠져 가정을 버린 유부남(드라마 <두번째 프로포즈>)으로 더 친숙할지도 모른다. 이밖에 여자(배종옥)를 두드려 패는 깡패(드라마 <바보같은 사랑>), 태권도 사범(영화 <돌려차기>), 애절한 순애보의 주인공(뮤직비디오 <화장을 고치고>) 등을 연기했다. 이밖에 영화 <태양은 없다>, <유령>, <신장개업> 등에서 개성 있는 역할로 스크린에서 얼굴을 알렸다.

더 궁금한 게 많았지만, 미안해 더 이상 잡아둘 수 없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이 기막힌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함께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아, 그래야죠"라며 손을 내밀어 어깨동무를 했다.

헤어지기 전, "언제 돌아가느냐"고 묻자 그는 "내일 갈 생각이에요"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원정대를 위해 사인 한 장도 남겼다. "많이 보고 조심히 돌아가세요." 푸근한 인상만큼, 후덕한 마음을 가진 그였다.

영화 '밤과 낮'의 남자 주인공 배우 김영호가 베를린의 한 쇼핑몰에서 원정대에게 직접 남긴 사인.
 영화 '밤과 낮'의 남자 주인공 배우 김영호가 베를린의 한 쇼핑몰에서 원정대에게 직접 남긴 사인.
ⓒ 이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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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밤과 낮>= 서울에서 파리로 도피한 유부남 국선 화가 김성남의 유쾌하고 기이한 여행 이야기다. 영화는 여자들의 관계와 사랑에 맞춰져 있다. 성남 역의 배우 김영호를 비롯해 박은혜가 유정을, 황수정이 성남의 아내 성인을 연기했다. 이번 베를린국제영화제에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감독 홍상수.

영화 '밤과 낮'의 남자 주인공 배우 김영호가 베를린의 한 쇼핑몰에서 원정대(사진 왼쪽부터 방콕남, 이기자, 타블로)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영화 '밤과 낮'의 남자 주인공 배우 김영호가 베를린의 한 쇼핑몰에서 원정대(사진 왼쪽부터 방콕남, 이기자, 타블로)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 이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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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베를린영화제원정대'는 지난 12일 독일로 출국, 다음 블로그를 통해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의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원정대는 미디어 다음(daum)과 CGV, 한진관광이 공동으로 후원한다.

이기사는 블로그(blog.daum.net/erowa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영호, #베를린영화제원정대, #밤과 낮, #홍상수, #밤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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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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