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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 <만남의 광장>이라는 영화가 있다. 학교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품은 순박한 시골청년이 서울로 올라왔다가 얼떨결에 끌려간 '삼청교육대'를 '교육대학교'로 착각하고 '순화교육'을 받는다는 내용의 영화다. 물론, 그 이후에는 역시나 얼떨결에 탈출해 인적이 드문 산간마을에서 꿈에도 그리던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다.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장면은, 그 청년이 삼청교육대에서 '교육'을 받는 장면이다. 청년은 '동료'들과 무거운 통나무를 들고 '교육'을 받으면서 "선생님되기 참 힘들다"는 식의 한탄을 한다. 이 장면을 본 미성년자 중 일부는 이게 왜 아이러니한 장면인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삼청교육대'가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삼청교육대의 순화교육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사회정화사업' 차원에서 이루어진 교육 프로그램(?)이다. 조직폭력배나 부랑자를 비롯한 사회악을 일소하고 새롭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그런거야 대통령의 직권으로 만들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조직폭력배나 부랑자라 할지라도 당장의 혐의가 없는 이상은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이 '사회정화사업'은 당장의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전과가 있고 문신이 있으면 무조건 끌려가는 경우는 일도 아니었다.

 

포장마차나 주점에서 늦은 시간에 거나하게 취해 노래를 부르다가 끌려가는 경우도 있었으며, 술에 취해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잠을 자다가 끌려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각 지역 경찰서 등지에 일종의 할당량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헌법에는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민주주의 사회의 최소한의 원칙마저도 무너뜨린, 국가폭력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만 하다.

 

'국가폭력 이론 제공 학자'가 '보건복지'를 맡는 코미디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내정자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신군부 정권 시절에 '사회정화사업 공로'를 이유로 대통 표창까지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통합민주당 장복심 의원에 의해 제기된 의혹에 따르면, 김성이 내정자는 신군부 정권이 주도해 설립한 '현대사회연구소'의 연구2부장으로 근무했다는 것이다.

 

'사회정화위원회'가 '삼청교육대 설립' 등을 주도하는 사회정화운동 추진기구라면, '현대사회연구소'는 그 이론을 제공하며 뒷받침했던 기관이라고 한다. 장 의원의 의혹 제기에 따르면 두 기관은 "서울시 중구 남산동3가 32-3번지로 주소가 동일했다"고 한다.

 

물론, 김성이 내정자는 "비상근 근무"였으며, "대통령 표창은 부패·인플레이션·무질서 등 3대 부정적 심리를 추방하기 위한 개념 설정 공로 덕분에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이걸 해명이라고 하고 있나? '사회정화사업'은 '무질서'라는 부정적 심리를 추방하기 위한 개념 설정 차원에서 추진된 사업이 아니던가. 이 해명은 본인 스스로 의혹 제기를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지금, 국가폭력 이론 제공을 공로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전력이 있던 학자가 우리 국민들의 '보건복지가족' 업무를 총괄하는 장관 자리에 오르는 황당한 현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건강보험의 적자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당연지정제 완화 및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어떤 '부정적 심리 추방' 개념을 설정해 그 이론을 뒷받침할지 궁금해진다. '건강보험 적자 현상'은 부패·인플레이션·무질서 중 어디에 해당되는 일일까?

 

김성이 내정자가 '부패'를 원인으로 본다면, 나는 김성이 내정자의 과거 전력은 고려하지 않고 장관 임명을 지지할 생각이다. '건강보험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부패'를 방지하겠다면,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첫번째로 개혁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사람은 다름아닌 이명박 대통령이다.

 

수백억대의 부동산 부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건강보험료를 1만 3천원을 납부했다는 사실은, 보통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성이 내정자가 그런 일을 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일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 그를, 김대중 정권은 청소년보호위원장으로 임명한 적도 있었다. 인사 검증 시스템의 문제가 반드시 이명박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가 추구한 청소년 정책은 무엇이었을까? 확실한 것 하나는, 청소년보호위원장 시절 1280만원의 공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것.

 

그가 청소년 정책에 있어 바라보는 '부정적 심리 추방' 개념이 '무질서'였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그 자신의 공금 유용 의혹에 대해서도 '부패에 대한 부정적 심리 추방 개념' 설정이 필요할텐데, '치국'을 하자면 먼저 '수신제가'부터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참고로, 독일 실존철학의 대표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나치에 부역했다는 전력 때문에 한때 추방당했던 전력도 있었다. 가해자인 독일도, 피해자인 프랑스도 나치 부역자에 대한 대처는 철저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인 '삼청교육대'에 이론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김성이 내정자, 그는 과연 어떤 벌을 받았을까? 물론, 이것은 김성이 내정자 한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다. 도시에 탱크와 장갑차를 밀어넣은 전직 대통령도 '29만원' 운운하면서 잘 먹고 잘 사는 대한민국이니, 그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는 사실도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1억달러 내각'도 '좌파 정권' 탓이라는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1억달러 내각' 파문에 대해, 익명의 학자의 발언을 인용해 "이 대통령의 실용 노선에 부합할 수 있는 인재풀이 기본적으로 크지 않았다. 대부분의 인재들이 좌파 정권 10년 동안 가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성이 내정자도 '좌파 정권'인 김대중 정권에서 청소년보호위원장을 역임했으니, <조선일보>의 논리대로라면 '좌파 정권'에 부역했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그렇다면 김성이 내정자는 카멜레온일까? '한국판 나치'에 이론 제공을 하더니, 어느 순간에는 '좌파 정권'에 부역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1억달러 내각'을 옹호하기 위해, 김성이 내정자를 '팽'한 것이다. '한국판 나치'와 '좌파 정권'에 동시에 부역했다가 '실용 내각'에 이름을 올린, 학자의 자존심을 완전히 팽겨친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생각난, 김성이 내정자에 대한 지적은 통합민주당 장복심 의원의 발언이다. "학자적 양식보다는 양지만 쫓아 살아온 것은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조선일보>의 지적과 사실상 똑같은 발언이다. 적과 아군으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 김성이 내정자다.

 

"암 진단 결과 암이 아님이 밝혀져 너무 기뻐 오피스텔을 샀다"는 후보자와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다"던 장관 내정자들은 자진 사퇴했다. 한나라당은, 김성이 내정자를 지키기 위해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이들은 재산을 늘리기 위해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을지언정, '한국판 나치'에 부역했다는 혐의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미, 63빌딩 모형을 들고 방송에 출연해 "북이 폭격하면 서울이 물에 잠긴다"는 적극적인 부역을 한 이도 자진 사퇴했다. 한나라당이 "더 이상의 양보"를 운운할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우리도 조금이라도 상식적으로 살아보도록 하자. 최소한 '한국판 나치'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이들에 대한 '자진 사퇴' 정도는 해야, 외국에 나가서도 얼굴 붉힐 일은 없지 않을까?

 

혹시, 김성이 내정자를 결국에는 장관으로 임명할 것이라면, 진중권씨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 '2MB 내각짜기'에서 이야기했듯이 "차라리 반달곰 이근안을 국가인권위원장 삼고", 내 오랜 주장처럼 "과거의 원한 따위는 잊어버리고 김경준을 금융위원장으로 삼을 것"을 강력히 권고할 것을 바란다. 김성이가 되는데, 이근안·김경준이라고 장관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1억달러 내각, #이명박, #한나라당, #김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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