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감 넘치는 시가전  누가 그랬다, 사람만 죽지 않는다면 전쟁만큼 재밌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

▲ 박진감 넘치는 시가전 누가 그랬다, 사람만 죽지 않는다면 전쟁만큼 재밌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 ⓒ (주)성원아이컴


어디선가 본 듯한 블록버스터 <집결호>

펑 샤오강 감독의 <집결호> (Assembly 2007)는 중국 최초의 전쟁 블록버스터라는 역사적 기록을 수립하며, 6주 연속 중국 박스오피스 1위, 한국의 무술감독 박주천 등 <태극기 휘날리며> 제작진의 참여 등 여러 화제를 낳고 있다.

이 영화는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8년 겨울 인민해방군(PLA) 9중대장 구지디 대위(장한위) 휘하 부대원들이 국민당군(KMT)과 혈전을 벌이고 있는 시가전에서 시작된다.

이 영화 초반의 전투 장면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나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2004>와 비견될 정도다. 그 사실적인 묘사는 흡입력이 있다. 그러나 <씬 레드 라인 The Thin Red Line 1998>을 감독한 테렌스 맬릭의 전쟁을 보는 심오한 시선이나 <풀 메탈 쟈켓 Full Metal Jacket 1987>의 냉소적 아이러니 같은 것은 없다. 전투장면을 음미해보면 그저 전쟁은 참혹하지 않은가 하는 점을 새삼스레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구 대위는 홧김에 포로를 사살한다

시가전에서 겨우 승리를 거뒀지만 자신의 오른팔 지도원을 잃은 구 대위는 분노감에 이성을 잃고 무장해제당한 국민당군 포로에게 총질을 한다. 이는 사소한 사건이었는지 구 대위가 포로를 사살한 행위에 대해 회의하거나 후회하는 모습은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는다.

군법 위반으로 구금됐던 구 대위가 퇴각 나팔 소리(집결호)가 들릴 때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사수하라는 연대장의 명을 받고 요충지에 당도한 것은 그 며칠 후다.

난 나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집결호'란 제목은 '명령의 비정함'을 암시한다.

▲ 난 나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집결호'란 제목은 '명령의 비정함'을 암시한다. ⓒ (주)성원아이컴


참호를 구축하기 바쁘게 국민당군과 인민군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면서 이 영화가 자랑하는, 비주얼 완성도가 빼어난 컷들이 이어진다.

군인들이 흘린 핏물들이 스크린에 번지고 절단당한 사지들이 나무토막처럼 날아다닌다. 구 대위 쪽의 화력과 병력은 적군에 비해 절대 열악하다. 뛰어난 지도력과 게릴라식 전술에 능통한 구 대위는 명령에 따라 죽자살자 진지를 방어할 뿐이다. 그러나 국민당군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부대원은 전멸하고 구 대위만 살아남는다.

영화 후반부는 혼자 살아남은 구 대위가 공문서상 실종자로 처리된 47명의 명예 회복을 위해 관(官)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룬다. 구지디의 입장에서 관료적 태만은 영웅의 행로를 막는 장애물일 뿐이다. 구지디에게 중국의 만연된 관료주의의 폐해는 관심 밖이다.

구지디 대위 전우애를 목숨으로 소중히 여기는 장교로 열연하는 장한위.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죽어간 전우들의 명예에 편집증적일 정도로 집착한다.

▲ 구지디 대위 전우애를 목숨으로 소중히 여기는 장교로 열연하는 장한위.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죽어간 전우들의 명예에 편집증적일 정도로 집착한다. ⓒ (주) 성원아이컴


감동대작의 삼요소... 휴머니즘 마케팅, 역사의 탈현실화, 영웅 출현

<집결호>는 ‘감동대작’이란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압도적인 힘에 지칠 줄 모르고 달려드는 적과 맞서는 힘없는 소수가 사투를 벌이다가 처절하게 죽어간다는 맥 빠진 스토리가 관객의 호응을 얻으려면 사실적인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 방식을 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실사에 가까운 전투씬을 보여주며 감독은 대중의 동정심을 이끌어내길 즐긴다. 일단 감정이 이입된 관객은 감독이 나머지 이야기 진행에 자연히 빨려들게 되면서 영화를 감독의 눈으로  감상하게 된다. 

<집결호>는 중국 본토에서의 성공작이다. 모택동의 인민해방군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여 본토를 점령하고 있지만 대만이 존재하는 한 이 전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런 현실적인 소재를 거부할 중국인들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구지디가 전후에 보여준 행위는 ‘과거사 진상 규명’에 해당한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감동대작을 표방하는 영화들은 흔히 ‘휴머니즘 마케팅’을 채택한다.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이 영화는 ‘인해전술’, ‘꽹과리 부대’, ‘당나라 군대’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치던 중국 인민군의 인간적 측면을 부각시켜 우리들의 편향된 시각을 교정하는 데 이바지한 측면이 있는 동시에 '국민당군'의 인간적 측면을 거세하는 바람에 공들여 찍은 전투씬의 사실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현실감은 떨어진다.

<집결호>는 국민당국을 ‘적’이라고만 규정해 놓았을 뿐 그 캐릭터의 핵심을 파악할 만한 최소한의 정보도 제공해 주지 않았다. 이는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이 인민해방군을 위한 프로파갠다의 변형이다. 오래된 프로파갠다 테크닉 중의 하나는 ‘적을 악마화하라(Demonising the Enemy)’란 공식이 있다. <집결호>가 국민당군을 악마화했다는 소리가 아니다. <집결호>는 국민당군을 ‘탈인간화’할 뿐이다. 이 탈인간화 과정에서 인민해방군 중심의 전우애가 인류 전체의 휴머니즘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집결호>를 보면서 모택동의 인민군도 ‘사람’이었다는 데 가벼운 전율을 느끼는 관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사람’들이 대체 어떤 ‘적’과 싸웠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은 이 영화의 리얼리즘을 의심쩍게 만든다.

47명의 인민해방군에 할당된 전체 시간 중 5분의1 정도도 국민당군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하는 데 할애하지 않은 점이 주목된다. 탄광지대로 변한 옛 전장에 찾아가 곡괭이질로 시신을 찾겠다는 구 대위의 노력은 모택동 주석이 자주 인용했다는 사자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연상케 한다. 감상적인 톤으로 질질 끌고 나간 후반부가 지루하게 느껴진 이유는 이것이다. 넣어야 할 것은 빼고 빼야 할 부분은 늘렸다는 것. 

죽은 전우의 철모를 씻으며 이 장면은 '죽음'과 '실종이라는 불명예'를 씻어내는 의식과도 같다. 죽음을 씻어낸다는 것은 혁명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 죽은 전우의 철모를 씻으며 이 장면은 '죽음'과 '실종이라는 불명예'를 씻어내는 의식과도 같다. 죽음을 씻어낸다는 것은 혁명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 (주)성원아이컴


구지디의 과거사 규명 노력이 시각적인 함축미를 통해 전달되고 국민당군의 묘사가 현실적이었다면 구지디의 영웅화는 보편적인 감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집결호>는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전쟁 휴머니즘의 자기중심주의적 한계 안에서 자족하는 듯 보인다. 후반부의 진행을 보다가 ‘국가보훈처’에서 찍은 영화냐, 중국판 <배달의 기수>냐 하는 불만이 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집결호>는 당연히 다뤘어야 했을 국민당군의 정치적 존재감에 침묵하고, 인민군 장교의 '영웅적 전우애'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장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자기회귀적 휴머니즘은 자기연민이 아니라면 뻔뻔스러움의 가면으로 보일 수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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