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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희 교수는 억울할 법하다. 퇴직 뒤에 노후를 위해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을 집중 구입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걸 문제 삼는다. 노동부 장관 자격이 없다고 살천스레 따지니 황당할 터다. 열심히 저축해서 불린 재산도 문제라니 더 기막힐 성싶다.

 

  다만 조용히 성찰해볼 일이다. 아무리 대한민국에 사회보장이 없다고 하지만, 교수 부부의 퇴직 뒤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언제 일터에서 밀려날지 모르는 서민들이 월세라도 받아 살려고 애면글면 장만해놓는 부동산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보라. 그가 소유한 오피스텔 가운데 하나는 64평형이다. 붙박이장이 3천만 원, 유명 특급호텔과 똑같은 샤워실 천장이 1천만 원, 비눗갑이 35만 원 짜리다.

 

  오해 없기 바란다. 부자라서 문제가 아니다. 법학교수로서 얼마든지 자신의 인생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식인으로서 금도는 필요하다. 법학교수 이영희는 노동부 장관 후보자로서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와 말했다. “공장노동자와 교수를 같은 카테고리에서 볼 수 없다.” 교수노조를 겨냥해 한 말이다.

 

공장노동자와 교수를 같은 범주로 볼 수 없다는 노동장관 내정자

 

  곧장 묻는다. 대체 어떤 뜻인가. 공장노동자와 교수가 같은 범주가 아니라는 말은. 대체 지금껏 그는 어떤 노동법을 공부하고 가르쳐왔는가. 교수노조의 성명처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비천하게 여기는 전근대적이고 노동 차별적인 의식 아닌가.

 

  백번 양보해서 교수의 사회적 지위는 다르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대학에는 비정규직 강사들이 교수보다 더 많은 강의를 맡고 있다. 시간강사들의 임금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저임이다. 박사인 시간강사들의 자살이 곰비임비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교수들이 시간강사들의 생활고와 차별을 모르쇠 한다. 비정규직 교수들의 목숨은 강의할 때도, 잘릴 때도 ‘파리’처럼 가볍다. 비정규직교수노조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겨울 칼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175일째 지며리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까닭이다.

 

  비단 비정규직 교수들만이 아니다. 노동장관 내정자 이영희가 언죽번죽 공장노동자와 교수가 다르다고 한 바로 그 날, 비정규직 공장노동자는 차디찬 한강에 몸을 던졌다. GM대우 부평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다.

 

  참담하게도 그의 요구는 결코 정규직화가 아니다. 소박하다. 그저 다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다. 같은 공장의 노조 조직부장은 일터의 탑 위에서 63일째 농성 중이다.

 

  그런데 어떤가. 노동장관 내정자 이영희를 보라. 고용정책심의위원을 맡았으면서도 단 한 차례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당당하게 답했다. “고용을 몰라서 참석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국회 인사청문회 자리엔 왜 나와 있는가. 대체 노동부를 뭐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강에 몸 던진 노동자와 자살하는 비정규직 박사의 심경 아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노동현장에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법학교수 이영희를 노동부 장관에 내정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터다. 하지만 처음부터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으려는 노동자는 아무도 없다. 한강 다리에 겨울바람 맞으며 외줄을 타고 매달리다 끝내 강물로 떨어진 노동자가 한 말은 간명하다. “비정규직들이 파업하고 시위해도 신문에 한 줄 안 나오는데, 우리는 이런 방법밖에 없다.”

 

  그 심경을 헤아릴 수 있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줄이려고 기업에 온갖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나라들을 보라. 바로 그것이 노동부 장관이 할 일이다. 법과 질서만 외마디처럼 질러대는 대통령 앞에서 자리를 걸고 비정규직 대책을 부르댈 사람이 바로 노동부 장관이다.

 

  그럴 뜻이 없다면, 아니 그럴 문제의식조차 없다면, 거듭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국회 청문회 자리에 앉아 그 ‘수모’를 당하는가. 대접받는 교수 생활이 남아 있지 않은가. 호사스런 노후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길 권한다. 그것이 한 때 자신이 들먹였던 전태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태그:#노동부장관, #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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