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월 21일, 번화한 혜화동 거리 한 켠에 깊숙이 들어앉은 '전국국어교사모임' 건물 대강당에서는 작지만 뜨거운 한 토론회가 열렸다. 전국국어교사모임과 전국영어교사모임 주최로, “새 정부 영어교육 정책의 진단과 대안 모색”이라는 주제 하에 열린 이 토론회에는 총 9명의 국어 영어 교사 및 교수들이 발제자로 참석했다.

시작하자마자 자리가 가득 찬 토론회장
 시작하자마자 자리가 가득 찬 토론회장
ⓒ 최봉실

관련사진보기


장소가 협소했다. 사람도 그렇게 많이 올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토론회가 시작된 직후, 어느새 토론회장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었다.

국어교사들과 영어교사들이 함께 했다. 현장 교사들과 대학 교수들이 또한 함께 했다. 여기에 정부 측도 함께 하는 활기 있고 진지한 토론회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이 토론회는 “학교 현장에 뿌리내리고 있는 교사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현실성 있는 요구들을 모으기 위해 현장 교육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과 함께 영어 교육 정책의 위험성을 짚고, 영어와 모국어 교육을 포함한 언어교육 전반의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라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 사회를 맡은 전국국어교사모임 안용순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특별히 당부했다.

“이 자리는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제시되고 있는 영어교육 정책에 대해 잘 생각할 기회로 삼고, 그 안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잘 소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장기적인 안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부분이 보완되고 소통될 필요성’에 부합하듯, 이 토론회에서 발표된 자료집 분량은 덧붙여 언급한 내용을 포함하면 1백 쪽에 육박한다. 이번 영어교육 논란을 계기로 여러 토론 자리에 참석했던 서울대 이병민 영어교육과 교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좋은 의견들이 많다. 잘 취합하면 좋은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래알이다. 잘 소통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토론회 발표자들은 고등학교 국어교사, 초등교사, 영어교육과 교수, 언어학 교수, 시민단체 고문, 원어민 교사 등으로 각자 자신의 전문성과 현장성을 바탕으로 생생한 이야기와 당부를 전했다.   

과학적, 합리적인 진단과 대안 내놓아야

조자룡 동명여고 교사 겸 전국영어교사모임 사무총장은, 대안을 내놓기 전에 실패의 원인을 먼저 살펴서 그 바탕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먼저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영어마을 참가 학생들은 얼마만큼의 영어 능력의 신장이 있었나? 외국인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 들어 온 10년 동안 이들의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어떻게 변화했나? 한국 초등학교 영어 교육의 실태와 효과는 얼마만큼인가? 캐나다 몰입 교육은 영어교육학적으로는 실패한 사례로 알려져 있는데 과연 성공한 몰입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고, 그간의 한국에서 실시된 몰입 프로그램은 얼마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가? 한국의 수준별 이동수업에 대한 연구논문들은 대부분 학생들의 성취도가 낮아졌다고 발표했는데, 여건과 환경의 개선에 대한 대책 없이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려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어 조자룡 교사는, 현 실태와 원인을 먼저 짚는 것과 더불어 추가 질문을 던졌다.

“원리, 데이터 등 객관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자료가 더 많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등교육은 경쟁력 1~4위인데 반해, 대학은 세계 400위 수준에 머무는 것은 왜인가? 현재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력과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영어교육이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점은 어떻게 나온 결론인가?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국가들 중 영어 성적이 좋은 국가가 과연 국제 경쟁력이 얼마나 뛰어난가?”

조 교사는 이 모든 것들이 인수위가 영어공교육 강화를 주장하면서 구체적으로 제시했어야 하는 근거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거시적인 차원에서 국가 수준의 영어교육 목표 등이 정리되어야 하고, 사회 경제적 연관성도 막대한데, 이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는 조자룡 사무총장의 지적은 이미 누차 요구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특별히 박거용 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국가경쟁력이 강조하는 국익과 경제성장의 열매는 어떤 계급의 이익이 될 것인지, 영어교육이 고비용 저효율인 까닭이 동기유발 없이 강요되는 분산된 학습 때문인지 아니면 ‘한글의 저주’ 때문인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해 어방초등학교 박진환 교사는 교사 연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초등학교에 영어가 도입된 1997년 이듬해 120시간 장기 기본 연수가 의무화되었다. 10년 동안 장기간 진행된 영어 연수를 많은 초등교사들이 받았지만, 실제 공교육 내 영어 교수학습 방법의 질이 개선되고 학생들의 영어활용능력이 향상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초등 교사들에게 영어연수는 일종의 통과 의례이다. 교육청 측에서도 투자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져 보이니 연수 대상의 폭도 줄여 가고 있으며 다른 방향을 찾고 있는 실정이다.”

영어교육 문제는 오랜 역사적, 구조적 문제

조자룡 교사는 영어교육의 문제에서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얽혀 있음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 불붙은 영어교육 논란은 “안타깝게도 연구부실, 일관성 있는 정책의 부재 등이 50년 동안 축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번도 언어정책다운 정책이 없었으며, 영어정책도 물론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사들이 영어를 잘 해도 영어로 수업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조 교사는 지적했다.

교사 대 학생 수 문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대학 입시의 파급력이 우리나라처럼 강한 현실에서 입시문제 검토 없이는 영어교육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조 교사의 지적 역시 많은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이병민 교수는, “각 이해 집단들이 상이한 기대와 목표를 가진 현실에서 학생들은 누구의 기준에 따라 영어를 배워야 할지 알 수 없다”고 지적한다. 즉, 읽고 잘 쓰는 능력을 요구하는 대학의 목표와, 국가나 사회가 요구하는 영어교육 목표와, 대학이나 중등학교와는 또 다른 성격의 영어 능력을 요구하는 기업의 이해가 상충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 기관도 제대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바로 모든 형태의 사교육들”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교사가 영어로 수업을 하려고 해도 20%만 좇아오고 80%는 못 좇아올 때, 소수를 중심으로 교육을 한다는 것이 교사의 양심으로 허락되기 어려운 일이라고 조자룡 교사는 호소한다. 그것은 전국민의 80%를 소외시키는 선택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 설득력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사교육을 받기 더 어려운 여건에 있는 학생일수록, 학교 교실에서 소외되는 현상을 넘어서 학원에서조차 실력 미달로 소외되고 있는 현상이 학원가에서는 이미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영어광풍, 뿌리깊은 사대화와 세계화에 대한 맹신이 빚어내는 결과

특히, 영어광풍의 원인을 사회학적 맥락에서 살펴 본 한글문화연대의 김영명 고문의 지적은 우리 사회가 현재 어떤 기로에 처해 있으며, 그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김영명 고문은 현재의 영어광풍의 원인이 뿌리깊은 사대화와 세계화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둘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 후, 특별히 영어의 권력화와 계급화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풀어냈다.

"우리 나라는 다른 제도로 계급 구별이 특별히 없는 비교적 평등한 사회이다. 그러니 그 계급 구별이 ‘교육’(학력과 학벌), 특별히 사교육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냥 사교육으로는 안 되고, ‘영어 사교육’이 더 확실한 계급 구분의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영어야말로 능력이 같다면 돈을 처바를수록 가장 명확하게 그 격차가 드러나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수학, 국어보다 영어가 돈과 더 잘 맞물리기 때문에 영어교육 광풍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

“사교육을 감당할 수 없는 대다수 계층은 영어 권력에서 소외되어 사회적 양극화가 더 심화될 것이고, 영어 계급화가 고착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은 비단 김 고문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다.

생각할 줄 아는 영어교육 절실

상명대 영어교육과 박거용 교수와 고려대 언어학과 김성도 교수는 언어학의 관점에서 영어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고, 우리나라 언어정책의 부재를 비판했다.

박거용 교수는 언어를 가치중립적이고, 정치 경제 상황과 무관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영어교육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수능에 채택된 지문들, 임용고시에 나오는 지문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정치사회경제 문제의 쟁점이 부재하다. 언어가 역사와 무관한 것인양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빅거용 교수와 마찬가지로 언어와 정치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한 김성도 교수는 이 사실을 상당수의 언어학자들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제국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개별 문화들과 언어들을 지워버리고 주변적 공동체의 문화적 발전을 가로막는 획일화(동질화)를 추구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급격하게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문화적 정체성의 소외에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소외까지 광범위하게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지적한 김성도 교수는, “문화의 원리는 호흡의 들숨과 날숨이 서로 숨쉬는 원리”라는 인류학자 오제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언어 획일화는 세계적 차원에서 세계 내부에 양식(신성한 공기)을 공급해주는 외부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인류 문화의 비극을 낳을 것이다.”

더불어, 초등학교 영어교육이 실시되기 시작한 김영삼 정권 이후 교육정책에 언어정책에 대한 고민이 부재했다는 지적은, 우리가 풀어가야 할 영어교육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교육관련 정책에 자문위원으로 언어 학자의 조언을 경청한 적이 없었다. ‘영어공교육 완성 프로젝트’는 언어정책과 국어정책, 외국어 교육 정책상의 중요 사항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논리에 맞춰 성급히 재단된 취약성을 지닌다. 인수위 참여 교육학자들도 모두 경제 쪽에 기울어진 학자들이다.” 상명대 박겨용 교수의 말이다.

김성도 언어학 교수는 “이러한 지적과 우려는 특정 언어에 맞서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언어들을 다원주의의 논리 속에서 더 소중하게 다듬고 증진시켜 나가자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우리말을 배울 수 있는 권리”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의 증거, 교육 정체성의 붕괴

인터넷 신문인 <미주뉴스앤조이>에 2월 21일 실린 "영어광풍과 뉴하트 은성이의 눈물" 이라는 기사에서 이강훈 기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대한민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교육 혁명이다. 더욱 단단해진 입시 경쟁 체제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교사, 학생, 학부모, 지식인들의 각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현장의 교사들이 전해준 학교의 실태는 이강훈 기자의 말처럼, 모든 이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의 책임을 져야 할 과제가 절박함을 보여주었다.

김해 어방초등학교 박진환 교사는 “경쟁이 너무 심하여 생각할 여유가 없다. 제대로된 학생을 못 길러낸다”고 토로했다. 이병민 교수는 “학교 영어교육을 둘러싼 공정한 경쟁은 이미 교육부의 손을 떠나버린 상태다. 부모의 관심과 부가 아이의 영어 능력을 결정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고 못밖았다.

더 나아가, 경기도 원어민 교사인 제이슨 토마슨(Jason Thomas)은 영어로 진행하는 연구 수업에서 우연히 두 아이가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강제되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제이슨은 “이것은 교육도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이런 증언은 다른 교사를 통해서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못 따라오는 여러 아이들을 교실에 남아 있게 하고 다른 반에서 잘하는 학생들을 집어넣어 시범 수업을 진행하고 ‘성공’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발제자들이 제이슨 토마스 원어민 교사의 발제를 듣고 있다.
 발제자들이 제이슨 토마스 원어민 교사의 발제를 듣고 있다.
ⓒ 최봉실

관련사진보기


제이슨은 TEE(영어로 하는 영어 수업) 수업이 ‘다양한 영어들’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언어말살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보며 “외국어 수업에서 모국어 배제가 우월하다고 믿는 언어학자를 본 적이 없다. 한국 사회를 위해서도 이런 나쁜 영어 교수 학습 방법을 지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TEE가 수업 시간에 많은 학생들을 배제하고 한국인이 각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배제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제이슨은 TEE가 교육적으로 합당치 못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학생들과 교사 사이의 친밀감, 연대감을 차단하며, 영어만이 아니라 전달되어야 하는 그 안의 많은 내용은 무시하고 영어로 말하는 교사에만 집중하는 것이 문제이며, 심화 공부를 위한 매개로 모국어가 필요하며, 학생 상호간의 교제를 통해 서로 배우는 게 아주 큰 영향과 의미가 있는 것인데, TEE는 이를 가로막는 것으로 진정한 가르침도 배움도 아니다.”

더욱이 TEE가 서양에서 오래 전부터 얘기되고 있던 것이지만 지금은 학교 실정에 맞는 교육을 강조하는 추세로, TEE보다는 학생끼리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방식이 교육적 가치와 효과에 더 적합하다고 보고 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이 제이슨의 설명이다. “이경숙 위원장이 TEE를 강조한 것은 과거의 TEE에 매몰되는 것”인 셈이다. 

박진환 교사의 발제는 지난 10년간 지역 교육청 단위들이 ‘영어교육의 내실화’라는 명목 하에서 어떻게 영어공교육 강화의 성과들을 부풀려 왔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영어교육의 내실화’라는 것의 실체는, 한국 교육행정 풍토를 그대로 답습하는 변함없는 전시주의, 실적주의였다. 공교육은 늘 사교육에서 훈련받은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명분과 실적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대상이었다.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의 상실감과 격차는 그 그늘이 더욱 짙어지고, 어학연수를 받고 오는 학생들이 늘면서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간에 구분이 지어지고 영어를 못하는 것 때문에 놀림까지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수업을 ‘생존, 경쟁 중심으로’ 전달받고 스스로 전달하는 교사 연수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은 박진환 교사는, 교사들도 한편 부모로서, 인생의 모든 고비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영어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으니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나름대로 소신 있게 자녀교육을 하는 것이 바른 길인가에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걱정하며 교사들이 처한 딜레마를 다음과 같이 적나라하게 설명했다.

“결국,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고 추락하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에서 갈등에 빠질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사고는 학교 안으로 이어져 교사들의 교육관과 학생관을 결정짓게 만든다. 따라서 학교라는 사회는 입시를 정점에 두고 학부모와 교사가 하나가 되어 아이들을 몰아가는 사육공간이 돼가고 있다. 이곳에서 어떠한 교육철학도 어떠한 교육적 원리도 설 자리가 없다.”

박진환 교사는 이러한 초등영어교육 철학의 부재와 공교육관의 부재를 우려하며 “영어정책들이 자꾸 들어와 초등교육 전체를 흔들고 있고, 학교 현장이 철학이 없이 실적 위주로 흐르고, 입시 기관의 하위 기간으로 초등교육을 생각하고 있어, 초등 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을 새가 없다”며 현장의 실태를 전했다. “영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 교육을 위해서 고민해야 한다”는 고용우 울산고등학교 국어 교사의 지적과도 통하는 부분이다.

“가르침이 희망이어야 하고 배우는 것이 행복이어야 하는 삶터인 교육 현장에, 생존수단의 도구로 무장한 영어가 자리 잡는 일은 초등교육의 정체성을 더욱 흔들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박진환 교사의 우려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우려이기도 할 것이다.

인내와 희망을 가지고 고집스럽게 풀어가야

영어교육 논란으로 인해 학교 현장이 겪고 있는 우려스러운 이야기들은 한국 사회의 ‘교육’이 현재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새삼 확인하게 했다. 또한 언어학과 언어 정책 측면에서의 고찰은 영어 교육의 문제가 한국 사회 문화 및 정치 문제와 함께 포괄적으로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짚어주었고, 영어 교육 문제에 대한 역사적, 구조적, 사회적 측면에서의 진단은 이것이 서둘러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인내와 희망을 가지고 고집스럽게 풀어가야 할 문제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너무 많은 과제 앞에서 압도될 수도 있는 문제의 진단 앞에서, 발표자들은 희망을 나누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발제문 말미에서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경쾌하게 던지고 있는 희망들을 박진환 교사의 발제글의 일부로 대신하고자 한다.

“당장 문제가 뿌리뽑혀지지는 않는다. 새로운 대안과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환경도 만들고, 초등교육, 중등교육, 공교육에 대한 관점도 다시 만들어가며 아이들의 삶을 생각하는 교육관들을 만들어갈 환경도 조성해가야 한다. 그 때 영어교육도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참을성을 가지고 오랜 세월 준비하고 싸워나가는 일에 맣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연대해야 한다. 우리교육을 밑바닥부터 다시 점검하고 새롭게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역사가 없지 않은가!”

토론회 내내 발표자들이 공통되게 토로한 것이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나눠지는 얘기들이 얼마나 전달되는가”하는 것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높은 자리에서 ‘장’의 직함을 가진 이들에 의해서이다. 발표자들은 하나같이 하부 단위의 일선에 있는 교사들과 영어교육, 언어학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 안타까움을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이 함께 덜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영어교육의 진실, 그  공명을 위하여!

덧붙이는 글 | "진실, 그 공명을 위하여"라는 제목은 본 기자가 <미주뉴스앤조이>에 번역한 한 기사의 제목이다. 그 기사는 미국기독교 잡지인 <소저너스>의 편집장 짐 월리스가 <뉴욕타임즈>의 특집 기고가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를 인터뷰한 것으로, 원문 제목은 "Truth and Consequence"이다.



태그:#교육, #영어교육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좋은 나라, 널리 생명을 이롭게 하는 나라가 되어봅시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