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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두 조직이 현재 여론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다. 삼성그룹은 김용철 변호사라는 내부고발자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라는 상징적인 세력의 주도로 특검까지 진행 중이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 또 하나의 권력인 '법률사무소 김앤장'(이하 '김앤장')은 이보다는 덜 요란하게 여론의 중심으로 들어왔는데 최근 '김앤장'과 관련된 쟁점은 세 가지 정도이다.

 

1. 한승수 총리내정자가 김앤장의 고문으로 재직했던 경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2004년 6월부터 최근까지 월 1천만원씩 총 4억2천만원의 급여를 받았다고 기록돼 있으나 본인은 답변서에 '일한 건 없다'고 밝혔다. 이는 무노동무임금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또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한승수는 소버린이 SK와 경영권 분쟁을 하던 2003년 소버린 측이 지명한 5명의 사외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고, 이듬해 론스타가 비슷한 사건을 저질렀을 때 이를 돌봐주던 '김앤장'의 고문이 되었다. (한승수 내정자의 고문 경력은 책 <법률사무소 김앤장>(이하 <김앤장>) 154쪽에 표로 정리돼 있다.)

 

2. '김앤장'이 외환위기 이후 11년만에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다. 보통 기업의 세무조사는 5~6년에 한번씩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김앤장'은 '성실납세자 우대 관리 규정'을 이용해 사실상 세무조사 면제를 받았다. 즉, '납세자의 날'에 표창을 받은 법인 혹은 개인들에게는 수상일로부터 2년간 세무조사를 유예해 주는데 김앤장은 제도가 시행된 8년 동안 정확히 네 번의 성실납세자 표창을 받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김앤장> 117쪽에 있다.)

 

3. 국회에서 김앤장 사무소 문제가 토론회 주제로 올랐다. 서서히 공론화가 시작된 것이다. 고위공직자 출신의 인맥들이 김앤장의 고문을 맡다가 다시 정부 요직으로 발탁되는 행태가 김앤장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데 대해서 모두가 동의했고 고위공직자의 취업규제 강화에 대한 필요성을 촉구했다. 삼성문제나 론스타 문제 등 우리 사회의 패권자들에게는 언제나 김앤장이라는 책사(또는 모사가)가 따라붙는다는 점에서 김앤장은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김앤장 관련 회전문, 낙하산 인사의 폐해는 <김앤장> 162~164쪽에 걸쳐 소개됐다.)

 

이상의 세 가지 논의는 <김앤장>에서 중심적으로 논의되었던 문제들이었다. <김앤장>은 후속 보도와 법률을 이끌어낼 동력이 되고 있는 '탐사보도'에 가깝다. 현재 <시사IN>의 탐사팀장인 정희상 기자는 우리나라 탐사보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직장을 여럿 옮기면서 탐사했던 결과물은 언론의 지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발족(2006. 8. 18)을 이끌었던 것은 16년에 걸친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 매국노 후손의 매물 장물 찾아가기 소송 연쇄 추적 보도' 때문이었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발족 (2005. 12. 1)은 17년에 걸친 '한국전쟁 전후 은폐된 전국의 민간인 학살 사건 발굴 추적 및 통합특별입법 촉구 보도', ‘대통령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설립 (2006. 1. 1)은 8년에 걸쳐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추적을 매개로 한 군대 의문사 탐사 보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탐사보도 <김앤장>이 결국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고위공직자의 취업규제 강화라는 다소 엉뚱한 결론인데, 그 이유는 <김앤장>이 알려줄 것이다.

 

'법률사무소'가 아니라 '법 전문 로비사무소'다

 

'김앤장'이나 론스타, 지난 번에 국부를 수조원이나 퍼가면서도 세금 하나 내지 않은 뉴브리지캐피탈 같은 '패권자'들이 사법당국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사법당국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저항할 수 있지만, '패권자'들은 법의 테두리는 물론 그 경계에서 활보하기 때문이다.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자격이 문제가 돼 재경부의 질책을 받은 '김앤장'은 결정권한이 있는 금감위의 규정을 바꿔서라도 방법을 가져오겠다고 공언했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론스타가 금융업자로 인정받는 방안'(1안)과 '외환은행이 부실금융기관으로 정리되어야 하는 등 특별한 사유가 인정되는 방안'(2안) 중에 하나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김앤장'은 62조6033억원의 외환은행을 부실은행으로 만들기 위해서 '감자설'을 퍼뜨려 주가를 떨어뜨리고 이제는 누구나 알게 된 전문용어 'BIS 자기자본비율'을 '부실은행' 수준까지 낮춰서 결국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조건을 성립시켜 준다.

 

'김앤장'은 법률사무소보다 법 전문 로비사무소에 가깝다. '김앤장'의 비지니스 영역 안에는 법률적인 부분보다 탈법, 편법적인 부분이 구분 없이 섞여 있다. 오히려 탈법적인 것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한다.

 

법무법인 광장 출신인 임성우 변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앤장'을 가리켜 "legal practice(법률적 활동)보다는 비(非)legal practice(법률적 활동)에 가깝다"고 비판한 바 있다.(51쪽) <김앤장>에서는 '김앤장'이 위반, 배반하거나 그런 의혹이 있는 법률과 윤리규약이 적시돼 있다.

 

변호사법 제26조, 형법 제317조

"변호사는 직무상 알게 된 문제에 관한 사항을 타인에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김앤장 : 골드만삭스는 1997년 경영실패로 부도유예협약을 받았다가 김앤장의 도움으로 화의신청을 승인받았다. 재무 관련 컨설팅을 맡은 곳은 골드만삭스였는데 2003년 진로가 원금 변제의 일부를 이행하지 못하자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기존의 화의를 취소하여 경영권을 취득했다. 이 과정에서 김앤장은 화의신청과 채권양도 업무를 대행하며 기업비밀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92~198쪽)

 

변호사법 제31조(수임제한)

"변호사는 당사자 일반으로부터 상의를 받아 그 수임을 승낙한 사건의 상대방이 위임하는 사건에 관여하는 그 직무를 행할 수 없다." (쌍방대리 금지의 원칙, 상대방의 동의 받아도 역시 금지된다)

김앤장 : 외환은행이 외환카드를 인수하면서 외환카드가 '보험 대리업점'을 운영하며 라이나생명 등 보함사로부터 받던 수수료 100억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는데 김앤장은 '수수료 수취를 금지하는 근거는 없다'는 법률자문을 해주었다. 김앤장은 이미 5년간 라이나생명과 거래를 해오던 상황이므로 쌍방대리 금지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61쪽)

 

변호사 윤리장전 제14조(위법 행위 협조금지 등)

"변호사는 의뢰인의 범죄 행위 기타 위법 행위에 협조하여서는 아니 되며, 직무수행 중 의뢰인의 행위가 범죄 행위 기타 위법 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될 때에는 즉시 그 협조를 중단하여야 한다."

김앤장 : 흥국생명은 "2년 동안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합의하고 1년이 지나지 않아서 400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나섰다. 단체협약을 어길 경우 실질적인 제재 조처가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김앤장의 법률 해석에 따른 방침이었다. (231쪽)

 

우리는 김앤장을 통해 공법조차도 무자비한 약육강식의 법에 철저히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법'이란 모르는 사람에게는 두렵고도 두려운 것이지만, 이를 잘 아는 자들에게는 '제까짓거'가 된다.

 

민주주의 제도에서 법이란 '입법'과 '집행'으로 나뉘어지지만 실질적으로 사회시스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집행'이다. 근래에 국회가 입법 발의한 사학법, 비정규직보호법 등이 여야 정치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누더기가 되어 버린 것을 생각할 때 법 집행만큼 국민들에게 직접 닿는 것은 없다. 법 집행을 책임지는 국가주체를 '사법/행정당국'이라고 한다.

 

'사법(司法)'이라는 글자를 보면 '司'는 관직이나 관리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신 앞에서 깃발을 들고 입으로는 기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잘 아는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의 예를 들면 이 글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말은 잘 관리하면 하루에도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가고 일국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엄청난 기능을 하지만, 관리를 잘 못하면 무용지물이 된다. 모이를 주고 훈련을 시키고 제때 일을 시켜야 제대로 된 말을 얻을 수 있다.

 

기업의 담합이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 교복값이 턱없이 올라도 떨어지지 않는 이유, 정유사가 이문을 엄청나게 남기는 행태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징금이 이익에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경실련이 작년 봄에 2005년 이후 공정거래위원회가 적발한 담합 사례 16건을 분석한 결과, 주요 9개 담합 사건의 소비자 피해 추정액은 3조8480억원이지만 과징금은 7.7%인 2960억원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2007.3.7일자 기사) 같은 해 교복 공동구매 방해나 가격담합 등을 주도한 교복업체와 대리점 12곳에 대해서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1800만원에 불과했다. (경향신문 2007.5.20일자 기사) 정유사는 어떤가. 가격이 끝모를 정도로 치솟던 작년 5월 담합을 통해 수천억원의 부당이득을 남긴 정유사에게 당국은 1억~1억5천만원에 약식기소하는 데 머물렀다. 이는 부당이익 규모의 0.15%에 불과한 수준이다. (경향신문 2007.5.27일자 기사)

 

기업들이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면서도 맘놓고 저지르는 이유가 바로 있었다. 하지만 기업 혼자서 이 사실을 알아냈을까. 혹시 법을 잘 아는 사람이 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서 검은돈을 받아내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법률사무소는 법조인의 품위를 지키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한 기업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단지 법을 잘 알고 있다고 법률사무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브로커도 법관 못지 않게 법을 잘 안다. 김앤장은 과연 '법률사무소'라는 이름이 적당할까 '법 전문 로비사무소'라는 이름이 적당할까. 변호사법의 제1조항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법 제1조 :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법 제2조 :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서 독립하여 자유롭게 그 직무를 행한다"

 

우산(牛山)이 처음부터 민둥산이었던 것은 아니다

 

우산(牛山, 춘추시대 제나라 동남쪽에 있었던 산 이름)의 아름드리 나무숲이 일찍부터 썩 아름다웠는데, 큰 나라의 근교에 위치한 바람에 벌목이 끊이지 않았으니 나무숲이 남아날 리 있겠는가. 밤기운의 맑은 공기와 새벽이슬의 윤택함에 싹이 자라나지 않을 리 없건만은 소와 양을 줄줄이 몰고와 방목을 해대니 결국 대머리 민둥산이 되고 말았다. 그 후로 사람들이 이 산은 애초부터 민둥산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민둥산이 된 것이 어찌 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맹자 고자상)

 

지금은 민둥산이 되어 버린 옛 아름드리 우산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나라의 사법정의를 보는 듯하다. 법원과 검찰은 이미 자본의 손에 넘어가 우리는 사법정의라는 말이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사법질서가 이 지경으로 몰락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낱 법조항에 연연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법당국은 옛부터 몹시 권위가 위태로웠나 보다. 도필리(刀筆吏)라는 말은 '구실아치' 즉 아전을 낮잡아 부르는 말로, 이는 아전이 죽간(竹簡)에 잘못 기록된 글자를 늘 칼로 긁고 고치는 일을 했던 데서 유래한다. 도필리라는 단어가 만들어질 만큼 법 집행이 문란했다는 말이다.

 

그리스 시대 '스파르타'라는 나라는 성문법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전설적인 입법가 리쿠르고스의 가르침에 따른 것인데, 리쿠르고스는 "법률은 종이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의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리쿠르고스의 법이 500년 이상이나 유지된 것은 바로 이 교육의 덕이다. 사실 모든 스파르타 인들의 생활은 리쿠르고스의 법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법 대로 해"라는 우리 사회의 외면은 법을 법전 안에만 가두어 놓았다. 영국 등 대부분의 나라가 성문법 체제를 유지한 데 대해서 미국은 불문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법조문의 법률보다 해석이나 관습에 익숙한 나라였다. 링컨은 헌법에 상상력을 가미해 불멸의 지도력을 펼친 지도자로 기록돼 있다. 최근 정년퇴임한 한 대법관은 후배 법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말을 남겼다.

 

"여러분이 만약 법 집행을 현재보다 2배는 더 원칙에 맞고 엄정하게 한다면, 10년 후에 미국의 주식시장은 10배는 더 성장할 것입니다."

 

법에 관한 소중한 가르침은 동양의 경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맹자는 "일반 백성들은 일정한 일자리가 없으면 상식을 품기가 어렵고 상식이 없으면 법에 저촉되는 일을 스스로도 멈출 수 없게 되는데, 제대로 된 법률을 시행하지 못한 당국이 법 조항에 따라 백성을 처벌한다면 이는 망민(罔民), 즉 백성을 그물질하는 꼴이 된다"고 경고했다. (맹자, 양혜왕 상)

 

그리고 공자는 자신의 제자 자로에게 법률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언론이 소통되지 않는다. 언론이 소통되지 않으면 일이 성립되지 않는다. 일이 성립되지 않으면 예와 악이 일어설 수 없고 예약이 없으니 형벌과 법률이 바로 설 수 없음은 자명하다. 형벌과 법률이 바로 서지 못하게 되면 백성들이 손발을 어디다 놓아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논어 자로편)

 

민둥산이 된 우산을 다시 아름드리 나무숲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다시 나무를 계속 심는 일이다. 불법으로 방목과 벌목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단속하고 사람들이 함부로 짓밟지 못하게 잘 보살피는 방법뿐 없다. 우산은 일부 사람들의 재산이 아니라 공공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면서 돌아오는 결론은 너무나 식상한 '법의 기본'이다. 하지만 법의 기본이 허물어졌을 때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식상함을 무릅쓰고 법의 기본을 결론으로 삼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나를 괴롭혔던 한줄의 문장이 끝내 어색하게 남아 있어서 이를 마침표로 삼는다.

 

"재벌 총수에게 무죄를 선고하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더라도 직접적으로 손해를 보는 당사자는 없다. 다만 법적 정의가 사라지고, 사회 질서와 도덕이 무너질 뿐이다. (81쪽)


법률사무소 김앤장 - 신자유주의를 성공 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

임종인.장화식 지음, 후마니타스(2008)


태그:#법률사무소 김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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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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