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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이란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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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불의 나라라 했던가? 햇살이 너무나 강렬하고 건조하다. 도로에 나선 지 20분도 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입안과 코 안이 타는 듯 말라온다(이란은 불을 숭상하는 고대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발생지로, 1500년동안 한번도 꺼지지 않고 타고 있다는 불을 가진 나라다).

국경 통과도 순조로웠고, 국경에서 우연히 영어 잘하는 트럭기사 아저씨를 만나서 자헤단(Zahedan) 시내까지도 편하게 왔건만, 그 다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의 요구대로 이 픽업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이란 여행자 인포메이션 앞에 내려주고 떠났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국경을 넘은 후 첫 번째 여행자 안내소에서 서바이벌을 위한 조언을 구하려 했건만, 처음부터 계획이 틀어졌다.

"아니 어떻게 여행자 안내소(Tourist Information)에 있는 사람이 영어를 전혀 못하는 걸까?"

가이드북도 없고, 이란에 대한 실제적인 정보가 없었던 우리의 입장에선 간단히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손짓 발짓으로 천천히 대화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다름 아닌 이곳에 있던 여행자 안내소가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왕 찾아온 걸음이니 자헤단 시내 지도나 한 장 얻어가려 했지만, 한참을 기다려서 얻은 건, 자헤단이 아닌 엉성한 시라즈(Shiraz) 지도 한 장뿐이었다.

아직 방향설정도 전혀 되지 않았고 자헤단 정보도 전무한 상태라, 우리는 일단 그나마 숙소 찾기가 용이한 시내로 먼저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아까 픽업 기사 아저씨에게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이미 물어 놓았기에 일단 방향을 잡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오래된 차들이 많아서 그렇지 도로는 아주 깨끗하게 잘 정비가 되어 있었고 거리는 질서 정연했다. 자헤단의 첫인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우리를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반응 이었다. 이상야릇한 빨강노랑의 가방을 매단 자전거와 그 위에 앉아 바퀴를 굴리고 있는, 낯선 동양인 커플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머금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네 오는 상황. 처음 보는 낯선 이방인 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름 아닌 언어였다. 이란,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다. 이란에서도 아랍어가 통하는 줄 알고 잘못된 여행 회화 책을 가져온 것이다. 그로인해 의사소통에 이만저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이란인들은 아랍어가 아닌 페르시아어(Farsi)를 사용하며, 그들의 문화 또한 아랍의 문화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페르시아 문화로 분류된다. 여행 시작 후 14개월 중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인도에서 이란 가이드북과 인도 가이드북을 바꿨어야 했는데.' 후회막심이다.

영어 no! 지도 no!... 경찰 도움으로 숙소를 잡다

 이란에서도 아랍어가 통하는 줄 알고 잘못된 여행 회화 책을 가져온 죄로 이만저만 고생한 게 아니다. 이란 인들은 아랍어가 아닌 페르시아어(Farsi)를 사용하며, 그들의 문화 또한 아랍의 문화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페르시아 문화로 분류된다.
▲ 후일 시라즈(Shiraz)에서 구한 영어-페르시아어 교재 이란에서도 아랍어가 통하는 줄 알고 잘못된 여행 회화 책을 가져온 죄로 이만저만 고생한 게 아니다. 이란 인들은 아랍어가 아닌 페르시아어(Farsi)를 사용하며, 그들의 문화 또한 아랍의 문화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페르시아 문화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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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헤매다보면 어떻게 하나는 보이겠지'라는 심정으로 숙소를 찾으려니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지도도 못 구했으니 우리가 어디쯤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이후 우리는 이렇게 적지 않은 시간을 길에서 낭비해야 했다.

"이란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반 이상은 자헤단에서 발생한다. 수많은 아프간 난민들을 이란에서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 첫 번째 도시가 바로 국경도시인 자헤단이다. 적지 않은 양의 아프간에서 재배되는 마약이 이란을 거쳐 유럽으로 들어가는데, 자헤단이 바로 이 마약과 관련된 대표적인 도시다."

이란에 들어오기 전, 마약과 아프가니스탄 난민 관련된 자헤단(Zahedan)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많이 들었기에, 이렇듯 무작정 헤매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작은 덩치의 경찰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의 키는 대단히 작은 편에 속했지만 스스로 경찰이라는 자긍심이 대단해 보였고, 비록 단 한 마디의 영어도 통하지 않아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많았지만  어떻게든 우리를 무조건 도와주겠다는 듯한 강한 의지가 넘쳐흘렀기에 마치 작은 거인처럼 느껴졌다. 우선 이 경찰은 우릴 구경 하려고 모여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쫓아 보낸 후, 식당을 겸하고 있는 작은 호텔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러더니 직접 호텔 주인을 만나 우리를 소개 한 후 방도 잡아 주었다.

경찰 아저씨의 소개로 만난, 이 호텔 주인도 다분히 괴짜인 듯했다. 자기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인지 아니면 이란 사람은 다 그런지 도무지 우리말을 들으려 하질 않는다. 우리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이란 경찰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다. 도와줄 의지는 넘쳐나는데 상대방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마음대로 방을 배치하고, 가격도 혼자 말했다가 혼자 깎았다 하고,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 하는 분위기다. 거기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건지 목소리는 얼마나 엄청 크다. 커다란 덩치에 꼭 아인슈타인 같은 머리모양과 굵은 콧수염.

우리는 그 경찰 아저씨와 호텔 주인 앞에서 단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꿔다 놓은 보리자루 마냥 상황만 지켜보고 있던 우리는 결국, 내일 아침 체크아웃 타임을 물어보는 걸 포기했다. 돈을 낸 후, 영수증 받는 것도 포기했다. 체크인을 왜 안하는지 물어보는 것도 포기했다. 아예 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통하지 않았다. 단 한 마디도….

'그냥 모든 게 잘 되겠지!' 믿는 수밖에….

그래도 지금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여행해 오면서, 나름 노련해졌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건만, 이곳 이란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저런 상황에선 저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을 이해시킬 수가 없었다. 또 이란인들의 기질이 지금까지 거쳐 온 다른 곳과는 많이 다름을 느낀다.

"이란인들에 대한 인접 국가 사람들의 평판은 어떤가요?"
문득, 파키스탄을 가로 지르는 열차 안에서 만났던 한 파키스탄 비즈니스맨이, 내 질문에 답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이란인들, 콧대 높고 거만하지요! 산유국이라 부유하고, 찬란했던 페르시아 문명의 후에 들이기에, 자신들이 지구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이란에서의 첫날, 비록 하루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이란'이건만, 왜 이토록 자연스럽게 열차 안에서 만났던 파키스탄인이 했던 말이 머리 속에 맴도는 것일까?

단지 양고기 꼬치가 먹고 싶다구요!

이란의 전통시장 전경
▲ 바자르 이란의 전통시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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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헤단의 밤거리가 보고 싶어서 이미 어둠이 내린 거리로 나섰다. 낮 동안엔 타는 듯한 태양 아래 뜨겁고 삭막하기만 했던, 이란의 동부 국경도시 자헤단. 밤이 되자 거리는 낮과는 달리 꽤 많은 인파들로 북적였다.

우리의 시선을 압도하는 검은색 차도르의 물결. 저녁이 되어 켜지기 시작한 네온사인 불빛 아래, 세련된 이란 여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란 여인들의 아름다움에 대해선 이미 수도 없이 들었다. 비록 검은색 차도르로 몸을 가리고 있지만 그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와! 소문이 그냥 소문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녁 무렵 허기가 져서 양고기 꼬치를 먹을 수 있는 바비큐 집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길거리의 그 누굴 붙잡고 물어봐도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정말 상상 이상이다.

호메이니의 이란 종교혁명 이후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이란인지라, 세계인의 언어라는 영어는 이곳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질 못한다. 심지어 '네임(Name, 이름)'조차도 못 알아듣고, 아라비아 숫자(1, 2, 3…)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양꼬치 구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국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과일가게 안으로 들어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양을 그린다는 것이 그만 소를 그리고야 말았다. 이 그림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들이 민망한 듯 뒷걸음질 쳐 도망가려는 점잖은 이란인 부부에게 우리는 결국 매달리고야 말았다.

"자. 이것 보세요. 이게 양이예요. 양을 이렇게 도막도막 내어서, 꼬챙이로 쫙 끼고, 불에다가 지글지글 굽는 거 말이에요. 몰라요? 어디서 파는지 몰라요?"
"……"
"좋다. 못할 것도 없지. 소리를 내볼게요. 매애에… 매에에… 매에에…."

과일가게 안에 다른 손님이 없었기 망정이지,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하지만 결코 웃음이 나는 상황이 아니었다. 얼마나 진지했던지, 내가 매에에 소리를 내자 이 점잖은 이란인 부부의 얼굴에 희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 다음 들렸던 말은 다름 아닌 "예스. 예스, 예스, 예스, 예스…."

아마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내뱉은 '예스'라는 대답은 열 번도 넘었을 것이다. 그리곤 소매를 잡아끌며 무조건 가게 밖으로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의 대화는 '예스'라는 한 단어로 충분했다.  

'과연 우리말을 알아들은 걸까? 도대체 어디까지 이해한 걸까?'
희색이 만연한 이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한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계속 가라고 일러 주었다.
"예스? 예스, 예스, 예스…."

양고기 꼬치를 설명했더니, 우유 아이스크림을?

 이란에선 여성들은 반드시 헤잡을 해야 한다. 법의로 정해진 의무기에 외국인인 영아의 경우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 헤잡을 한 영아 모습 이란에선 여성들은 반드시 헤잡을 해야 한다. 법의로 정해진 의무기에 외국인인 영아의 경우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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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 길은 아까 우리가 가본 길인데, 그럼 우리가 아까 가본 곳 보다 더 가란 말인가?'
우리는 무거운 귤 2kg을 들고 반신반의하면서 그 길을 걸었다. 그리고 거리의 아이들이 따라 붙을 즈음해서,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정육점이었다.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어. 분명히 꼬챙이를 그림으로 그렸고, 쫙 끼우고, 불에 굽는 시늉까지 했는데 정육점이라니 그럴 리가 없어.'
우리는 정육점을 지나친 후, 한참을 자신 있게 더 걸었다. 컴컴하고 낯선 길이 계속 이어지자 문득 불안이 일기 시작했다.

'혹시 아저씨는 정육점을 말했던 것일까?'

얼마 후 우리는 눈앞에 나타난 다른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재차 확인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아까 그림을 보여주며 양 울음을 내기 시작했다. "매에에……매에에……매에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외국인의 생뚱맞은 행동에, 가게 주인아저씨는 약간 당황한 듯도 보였고, 약간 화가 난 듯도 보였다. 나는 다시 양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토막 난 양에다 꼬챙이를 끼우는 그림을 다시 그리며 설명을 했다. 덧붙여 지글지글 굽는 시늉과 소리까지. 하지만 잠시 후 아저씨가 들고 나온 건, 다름 아닌 우유 아이스크림 이었다!

그게 아니라고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더니, 화를 내는 건 오히려 아저씨다. 아저씨의 표정이 몹시 못마땅한 듯 보였기에 가능한 한 빨리 가게에서 나와 버렸다. '어떻게 보면 아저씨를 놀린 게 될 수도 있으려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유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온 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는 아까 가게에서 만났던, 점잖은 부부도 정육점을 말해 준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 후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의사소통 불능, 졌다 졌어, 완패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 단하나의 먹거리를 파는 곳이 없다니…. 우리는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곳! 연기를 자욱하게 피워내며 꼬치구이를 파는 곳이었다. 

사실 그곳은 우리가 생각한 곳과는 좀 많이 다른 분위기였다. 생각보다 훨씬 허름했고, 거리의 아이들을 위주로 한 노점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보기로 했다. 하나를 건네받고 맛을 보니 그건 고기가 아니라 비린내 나는 간이었다. 그것도 싱싱하지 않은 간. 난감했다. 간이 아니라 고기를 달라며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옆에서 다른 장사꾼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이 건네는 걸 받아 먹어보니 고기는 고기였다. 양고기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 또한 그다지 싱싱한 고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잘못하면 심한 배앓이를 할 수도 있다. 어쨌든, 두 개를 달라고 해서 받아 들었는데, 이번에는 간을 주는 것이다. 옆에서 줄곧 지켜보고 있었기에, 내가 뭘 고민하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그는 고기랑 간이랑 자꾸 섞어서 주는 것이다. 다시 새로 주문해서 받은 꼬치를 간인지 고기인지 확인하는 내 얼굴을 보고 있는 수많은 눈동자들.

'음. 또 간이야.'

내 실망스런 눈빛을 보고 있던, 우리에게 자리를 권했던 나이 많은 아저씨는 자기가 확인해 줄 테니 꼬치를 줘 보라고 손짓을 한다. 꼬치를 건넸더니, 확인 하는 게 아니라 옆의 난(빵) 상자에서 난을 꺼내더니 고기를 싸서 맛있게 먹는 게 아니던가!

의사소통 불능. 졌다 졌어. 완패다

※차도르(Chador) : 아랍어로는 아바, 페르시아어로는 차도르라 한다. 무슬림 여성이 타인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쓰는 망토로, 몸 전체를 다 가리고자 할 때 쓰인다.

덧붙이는 글 |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 긴 여정(이란,인도/네팔,터키편)- 은 작자의 홈페이지(http://www.bikeworldtravel.com/)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그리고 SLR CLUB(http://www.slrclub.com/)에서 연재가 이루어 집니다. 오마뉴스는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태그:#국이랑 영아, #자전거 여행, #자전거 세계여행, #세계여행, #이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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