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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나고 운하 논쟁이 한창이다. 상선 기관장을 마지막으로 8년 승선 생활을 경험한 나는 아직도 한반도 운하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있다.

 

운하 건설에서 핵심적인 지점은 항상 일정 수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 운하가 활력을 보이며 운송을 담당하는 것도 우기에 강우량이 넉넉하고, 건기에는 광대한 지역에 걸친 알프스 산맥과 로키산맥에서 눈 녹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강의 수심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9월의 태풍이 지나고 시작되는 한반도 건기는 매우 길다. 심하면 다음해 7월까지 계속돼 적시에 모내기마저 어렵게 만드는 것이 한반도 기후의 특색이다. 식수를 위한 동강댐마저 좌절된 것이 우리의 수년 전 현실이고 보면 운하에 흐를 용수의 양을 어떻게 일정하게 유지할지 궁금하기만 하다.

 

한반도에선 안정적 용수 확보 어려워... 스콜 있는 파나마 운하조차 용수난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댐을 건설할 필요 없이 19개의 저수용 보로 수량 문제를 해결하겠다는데, 갑문 도크를 채울 그 많은 용수는 어디서 유입될지 의문이다. 한 번 도크를 채운 용수는 낮은 곳으로 흘러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파나마 운하가 그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것도 게이턴 호수 담수지에 매일 퍼붓는 열대성 스콜이 도크를 채워 용수 확보에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천혜의 파나마 운하조차 건기에는 용수 부족이 발생해 선박이 하루나 이틀 대기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 것이 오늘의 운하 현실이다.  

 

찬성론자들은 인공 수로를 최소화하고 자연이 만들어낸 하천 수로를 그대로 이용해 친환경적 운하를 만들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사행천이 많은 한반도 지형 특성상 경부운하는 굽이굽이 도는 곡선 구간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곡선이 심한 구간에서는 양방통행이 이뤄질까, 아니면 일방통행이 이뤄질까. 만약 전자라면, 양방통행을 가능하게 해줄 정도로 충분한 강폭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직선 구역에서도, 시속 25km로 항행하는 바지선이 시속 20km의 바지선을 쉽게 추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충분한 폭과 거리가 확보되지 않으면 추월은 불가능하다. 인공수로나 터널에서 배는 어쩔 수 없이 저속을 유지하며 앞선 선박을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추월이 가능한 건 지극히 짧고 제한적인 구역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배의 항행 속도를 높이는 것도 그만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준설 문제는 운하 최대의 골칫거리다. 준설은 선박 운항에 앞서 안전상 언제나 100% 완전히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다. 그런데 저속일 수밖에 없는 준설선이 준설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화물 선박은 방해받을 수밖에 없다. 준설 장소에 따라 준설이 완료될 때까지 일방 또는 양방 항행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폭 20m 터널에 12m 바지선? 선장 조선술, 신기에 가까워야

 

폭 20m, 총 길이 24km의 수로 터널도 안전 항행을 위해 신중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선폭 12m의 바지선이 터널에 들어오면 양측 벽과의 거리는 불과 4m 밖에 안 된다. 8년의 선박 운항 경험으로 볼 때, 선박에서 4m는 자동차의 40cm보다 짧은 거리다.

 

폭 12m, 전장 110m의 2400톤 바지선이 터널 안에 들어오면 선장은 선체로 터널이 꽉 찬 느낌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로든 후진해야 하는 경우 선체가 어떤 방향으로 이동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터널 속 저속은 조타 효율을 절감해 변침(침로針路를 바꿈) 능력을 떨어뜨린다. 양쪽으로 각 4m 간격을 유지하며 벽에 충돌하지 않고 24km에 이르는 터널을 항진하려면 선장의 조선술은 신기에 가까워야 한다.

 

운항하는 선박의 경우 관성이 크기에 사소한 충돌이라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심각한 선체 손상은 물론 터널 안전마저 위협받을 수 있는데, 경부운하 찬성 측에서 이런 부분까지 세밀하게 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운하에서 정체 생기면 육상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지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폭 50m의 지류, 인공수로, 터널에서 배는 저속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입구에선 선박의 저속 항진으로 경우에 따라 대기가 불가피하다. 닻을 내리고 대기하다 통제소 지시에 따라 닻을 올리고 지류, 갑문이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기상 악화나 사고로 항행 불능 상황이 되면, 뒤따르던 선박들은 안전거리를 두고 닻을 내린 후 대기해야 한다. 복구되면 이때도 통제소 지시를 받아 항행을 재개해야 한다.

 

갑문 통과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선박이 도크에 들어오면 로프로 선수 선미를 육상 비트에 동여매는 계류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갑문이 열리면 로프를 풀고 나가는데, 이처럼 계류 작업을 거치는 이유는 상승 하강 중 유입 또는 유출되는 용수 와류로 인해 벽과 충돌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작업이 완료되어야만 용수 유입, 유출이 가능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운하에서 정체될 경우 운행은 육상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지연된다. 그런데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19개가량의 갑문을 통과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불과 4시간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당 15분도 안 걸릴 것이라는 말이다. 새로운 갑문 기술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안개에 대한 대비는 충분히 하고 있을까? 안개는 선박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상선의 경우 안개로 유명한 도버 해협을 통과하려면 안전상 도선사가 승선한다. 평생을 도버해협 통과로 보낸 도선사도 선수 마스트가 보이지 않으면 긴장한다. 그런데 운하가 생기면 안개 끼는 일수가 많아지고 농도도 짙어진다. 110m 바지선 선수 마스트가 보이지 않는 안개라면 운항 여부에 대한 안전 지침이 분명해야 한다.

 

교통량이 늘어나면 예측할 수 없는 장애로 인한 지연은 불가피하다. 위에 언급한 요소들을 다 고려하고도 40시간 내에 주파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고 완벽한 운하다.

 

그렇지만 서울, 부산, 대구의 도시 특성상 운송화물 불균형으로 공선 운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공선 운항은 선주 비용과 운임에 직결된다. 갑문 관리나 야간 항해를 위한 신호체계 관리비도 상당하다. 이런 유지 보수에 투입되는 비용들이, 운하 운임이 육로 운송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을 거라는 계산에 모두 포함되었는지 의문이다.

 

첨단 제품, 운하 이용 가능성 매우 낮아... 두 번의 환적 비용·시간 손실도 문제

 

어쨌건 갑문이 7개인 파나마 운하의 두 배가 넘는 19개의 갑문, 높이 26m인 게이턴 호수의 4배에 해당하는 해발 105m에 건설되는 24km 길이의 운하 터널, 10km의 인공수로, 50m 폭의 자연하천 구간을 포함한 530km 거리, 길이가 육로운송 때보다 25%나 긴 경부운하가 설계대로 완성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렇지만 육로보다 100km 가까이 더 먼 운하를 통해 과연 어떤 화물을 운송할 것인가? 운하를 이용하는 화물은 곡물, 광물, 유류 등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장거리 대량운송에 적합한 화물, 즉 부피나 무게가 큰 벌크화물이 주종을 이룬다.

 

예컨대 유조선이 원유 20~30만 톤을 싣고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입항해 하역하면, 육상으로 이송된 원유가 탱크에 저장되는 것과 동시에 10000톤, 5000톤 등 소형 바지선에 실려 대형 유조선의 접안이 불가능한 정유소로 향한다.

 

독일의 경우 함부르크에 곡물 5만 톤을 실은 배가 입항하면, 육상 사일로로 이송되는 것과 동시에 작은 바지선에 실려 내륙 깊숙이 위치한 소비 도시로 운송된다. 이런 벌크화물은 자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 등으로도 분산된다.

 

미국의 경우에도 광대한 지역에 걸쳐 생산된 곡물이 바지선에 실려 미시시피 강의 지류나 운하를 통해 수송된 후, 하류의 뉴올리언스 육상 사일로에 저장됐다가 대형선에 선적되어 한국이나 일본, 중국으로 수출된다.

 

이것이 운하다. 장거리 운송해도 쉽게 손상되지 않고, 포장되지 않아 육로 운송이나 항공 운송으로 감당하기 힘든 벌크화물을 대량 수송할 수 있다는 것이 운하의 강점이다. 그런데 이런 점은 한국의 경부운하와는 잘 맞지 않는다.

 

외국에서 수입된, 포장이 완벽한 기계류나 부품 또는 전기제품을 운하를 이용해 운송하면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제품의 화주들이 운하를 이용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컨테이너의 경우 운하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바지선 접안이 가능하고 하역시설이 구비된 선착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외항선 컨테이너 전용 부두나 야드에서 트럭을 이용해 운하 선착장까지 이송해야 한다. 공단 공장에도 자체 선착장이 없다면 아무리 짧은 거리일망정 트럭을 이용해 운하 선착장까지 이송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니 부두나 공장에서 직접 적하하고 목적지로 출발한 트럭보다 한 번 더 환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화물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이런 환적을 또 한 번 해야 한다. 운하를 통해 목적지에 도착한 컨테이너는 선착장에 하역된 후 다시 트럭에 실려 비로소 화주에게로 향한다. 두 번째 환적이다. 두 번의 환적은 상당한 비용과 시간 손실을 초래한다. 환적에 따른 비용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운임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부산 공장이나 부두에서 동시에 출발한 컨테이너의 경우 육로를 택한 화물은 6시간 후면 서울 화주 손에 도착하지만, 운하를 택한 바지선은 대구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다. 경부운하 주파에 40시간이 걸린다 해도 약 이틀 후에나 도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운송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운하는 가전제품이나 기계류처럼 도로로 운송하는 물동량을 절대 흡수하지 못한다.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 제품을 운송할 때 대부분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은 예다.   

 

시간 경쟁에서 밀리는 운하, 화주 외면 받아

 

독일의 마인도나우(MD) 운하가 운송 부문에서 사양길을 걷고 도버 해협을 관통하는 쾌속열차 TGV가 시간 경쟁에서 항공 운송에 패배, 화주의 외면으로 적자에 허덕이는 오늘날 유럽의 물류 현실을 보더라도 시간 단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은 건설 당시 목적이 뚜렷했던 대토목공사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오늘날 관광자원으로서만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불가사의한 대토목공사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본래 목적이 사라진 역사적 사실을 되새겨 한반도 운하가 과연 꿈을 현실로 이룬 대역사의 장이 될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덧붙이는 글 | 김상모 기자는 호주에 거주하는 다큐멘터리 작가입니다.


태그:#경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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