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전 끝무렵 먼저 골을 넣은 이후 후반전에 내리 두 골을 내주고 뒤집혔다가 다시 두 골을 내리 터뜨리며 재역전승'

 

축구 경기니까 일부러 이런 각본을 만들어 흉내내라고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승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각본은 딱 하루만에 여자 경기에서 재연되었다. 더구나 그 주역이 두 경기 모두 '한국과 중국'이었기 때문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안익수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18일 밤 중국 충칭에 있는 용추안스포츠센터에서 벌어진 2008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여자부 중국과의 첫 경기에서 2-3으로 아쉽게 역전패했다.

 

물오른 골잡이 박희영의 인상적인 발놀림

 

 FW 박희영

FW 박희영 ⓒ 대한축구협회

대교의 골잡이 박희영은 스물 셋 동갑내기 공격수 한송이와 짝을 이뤄 한국 공격을 이끌었다. 경기 시작 후 13분이 지나면서 박희영의 빠른 몸놀림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낮게 깔려나가는 그녀의 왼발슛이 아슬아슬하게 골문 오른쪽 기둥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안방팀 문지기 장안루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희영의 공격적 가치는 38분에도 입증되었다. 왼쪽 미드필더 권하늘과 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돌아서는 동작도 인상적이었지만 막아선 상대 수비수의 키를 넘기는 감각적인 띄워차기가 일품이었다.

 

권하늘의 헛발질로 아쉽게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한국 여자축구의 기술적 자신감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전반전 끝나기 직전에 중국의 프리킥 세트 피스 공격에 대한 수비 조직력이 흐트러지며 골잡이 한뚜안에게 선취골을 내줬지만 박희영은 후반전 중반 혼자서 내리 두 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참모습을 맘껏 자랑했다.

 

동점골(60분)은 차연희의 왼쪽 띄워주기를 이마로 받아넣은 것이었고 역전골(67분)은 한송이가 찔러준 공을 침착하게 받아놓고 멋지게 돌려차 성공시킨 것이었다. 특히, 역전골 순간에 보여준 180도 회전 동작은 흔히 개인기가 출중하다고 하는 남미 선수들이 부러울 것 없었다.

 

비록 뒷심이 모자라 이후 두 골을 잇따라 내주며 재역전패하고 말았지만 박희영을 중심에 두고 실험한 한국 여자축구의 공격적 변화는 그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권하늘-조소현-전가을'로 이어지는 스무 살 대학생 미드필더들과 엮어내는 아기자기한 공격 조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편, 주장 완장을 차고 중국의 수비를 지휘한 리지에는 경기 종료 직전 한국의 마지막 코너킥 공격이 거세게 이어지는 과정에서 부상으로 경기장 밖에 있으면서 코너킥을 교묘하게 방해하다가 두 번째 노란딱지를 받고 쫓겨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일본도 꼭 빼닮은 재역전극

 

이보다 앞서 열린 경기에서 펠레스코어도 모자라 똑같은 흐름의 재역전극이 펼쳐져 보는 이들의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더구나 세계 정상급 수준의 북한을 상대로 일본이 거둔 짜릿한 승리였기 때문에 그 결과가 더욱 놀라웠다.

 

일본은 미드필더 미야마가 세트 피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전문 키커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북한 문지기 한혜영을 괴롭혔다. 경기 시작 3분만에 미야마의 발끝을 떠난 측면 프리킥은 안도의 머리에 맞고 그물을 흔들었고, 1-2로 끌려가던 82분에는 미야마가 낮게 찬 측면 프리킥이 골문 앞에 엉켜있던 선수들을 그대로 지나치며 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노련한 골잡이 리금숙과 김영애의 활약으로 역전승을 꿈꾸던 북녀들은 후반전 추가 시간에 어이 없는 결승골을 내줬다. 미드필더 사와가 반대쪽으로 띄워준다고 찬 공이 골문 왼쪽 톱 코너를 그대로 뚫어버린 것. 문지기 한혜영은 뒷걸음질 치다가 흔히 말하는 만세골을 내주고 말았다. 일본 선수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번째 골과 마지막 골을 문지기의 기록되지 않는 실수로 내주고 말았지만 노련한 골잡이 리금숙을 중심에 둔 북한 선수들의 짜임새 있는 공격 전개 방법은 마치 럭비 경기에서 뛰어난 조직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모양새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가운데 미드필더 역할을 맡은 리은숙과 리은경은 빠르게 전개되는 패스의 줄기를 잘 조절했다. 비가 내리는 경기장 조건을 염두에 둔 중거리슛도 매우 위력적이었다.

덧붙이는 글 | ※ 2008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여자부 첫 경기 결과, 18일 충칭

★ 중국 3-2 한국 [득점 : 한뚜안(45+1분,도움-왕쿤), 한뚜안(79분), 쑤유엔(87분) / 박희영(60분,도움-차연희), 박희영(67분,도움-한송이)]

◎ 한국 선수들
FW 9한송이(79분↔27곽지혜), 11박희영 
MF 19차연희, 8권하늘, 20유영실, 24조소현
DF 2이진화(65분↔7정정숙), 5홍경숙(46분↔6전가을), 4김유미, 3류지은
GK 18김정미

★ 일본 3-2 북한 [득점 : 안도(3분,도움-미야마), 미야마(82분), 사와(90+4분,도움-아라카와) / 리금숙(37분,도움-김영애), 리은경(54분,도움-김영애)]

◎ 북한 선수들(이름 옆 숫자는 등번호)
FW 10(주장)리금숙, 17,김영애(89분↔22라은심)
MF 8길손희(87분↔12조윤미), 9리은숙, 11리은경, 2김경화(77분↔24조금숙)
DF 3엄정란, 20홍명금, 15선우경순, 5송정순
GK 18한혜영

■ 여자부 현재 순위
1 중국 1승 3점 3득점 2실점
1 일본 1승 3점 3득점 2실점
3 북한 1패 0점 2득점 3실점
3 한국 1패 0점 2득점 3실점

2008.02.19 08:18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 2008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여자부 첫 경기 결과, 18일 충칭

★ 중국 3-2 한국 [득점 : 한뚜안(45+1분,도움-왕쿤), 한뚜안(79분), 쑤유엔(87분) / 박희영(60분,도움-차연희), 박희영(67분,도움-한송이)]

◎ 한국 선수들
FW 9한송이(79분↔27곽지혜), 11박희영 
MF 19차연희, 8권하늘, 20유영실, 24조소현
DF 2이진화(65분↔7정정숙), 5홍경숙(46분↔6전가을), 4김유미, 3류지은
GK 18김정미

★ 일본 3-2 북한 [득점 : 안도(3분,도움-미야마), 미야마(82분), 사와(90+4분,도움-아라카와) / 리금숙(37분,도움-김영애), 리은경(54분,도움-김영애)]

◎ 북한 선수들(이름 옆 숫자는 등번호)
FW 10(주장)리금숙, 17,김영애(89분↔22라은심)
MF 8길손희(87분↔12조윤미), 9리은숙, 11리은경, 2김경화(77분↔24조금숙)
DF 3엄정란, 20홍명금, 15선우경순, 5송정순
GK 18한혜영

■ 여자부 현재 순위
1 중국 1승 3점 3득점 2실점
1 일본 1승 3점 3득점 2실점
3 북한 1패 0점 2득점 3실점
3 한국 1패 0점 2득점 3실점
박희영 여자축구 동아시아축구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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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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