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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가치는 디지털처럼 재생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의 미디어정책이 어디로 갈 것인가?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미디어 공공성을 포기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그 대신 경쟁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공공 부문의 미디어를 대폭 줄이는 미디어 시장주의 정책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흐름에 반대해서 미디어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또 다른 흐름도 있다. 이 둘 사이의 토론과 논쟁이 있을 것이고 타협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시장지상주의가 압도한다 해도 미디어와 미디어정책은 사회문화적 가치를 으뜸으로 삼는 것이 원칙이다. 미디어는 현대 사회에서 수용자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실로 엄청나다. 또 국가 정책이나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어찌 보면 현대의 사회 문화적 가치는 이들 미디어가 대부분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정보와 문화를 다루는 미디어에 대하여 신중히 접근했던 것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나서서 환경, 보건, 지식, 정보를 지구적 공공재로 칭하고, 어떤 나라도 독점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고 제안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사회 민주주의가 진척되면서 국가주의적 통제는 뚜렷이 줄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공공성은 구현되지 않고 있는 틈을 타 사유화와 이윤 논리가 정의로운 가치인양 활개를 친다. 미디어시장에서 수용자들은 미디어기업과 광고주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거래하는 상품으로 전락되고 만다. 이들은 ‘수용자 상품’으로 취급될 뿐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문화적, 정신적, 정치적 위험 사회라는 신호다. 공공성은 우리 사회를 규율하는 기본 원리다. 그래서 미디어도 공공성 이념의 규제를 받았다.

 

미디어가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에 비추어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미디어는 민주적, 문화적 가치를 만들어 내고, 국가권력과 기업을 감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사적 자본에 맡겨둘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도 미디어 시장주의가 지배할 경우 우리 사회는 미디어라는 공공적 가치 생산자를 잃고 말 것이다.

 

숭례문이 그 자리에 있을 때는 별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숭례문이 없어진 지금 그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보인다. 숭례문과 같은 문화적 자원은 아무리 중요해도 항상 곁에 있으면 중요한지 모르다가 없어지면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말, 글, 언론, 습관 등 문화적인 것은 지키기 어려운 속성이 있고, 한 번 붕괴되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특징이 있듯이 미디어도 그렇다. 공공성 중심의 미디어구조와 정책이 무너지면 공공적 가치와 공공서비스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미디어 정책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이 말을 하기 전에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개국한 정도전의 경구를 들어보자. 그가 말하기를 임금이 “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들은 복종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임금을 버린다”. 이것은 봉건시대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음미할 내용이다.

 

노무현 정권의 미디어정책이 실패한 까닭은 국민의 마음과 함께하지 않았던 때문인지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미디어도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하고, 미디어정책도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디어시장주의는 공공의 재산인 정보와 문화를 자본에게 넘겨줌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버리고 자본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기에 잘못된 길이며, 그릇된 정책인 것이다.

 

국민의 마음을 잡는 정책

 

지금까지 논의를 기초로 해서 미디어 정책에서 꼭 해야 할 일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은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무엇보다 먼저 정치권력이 미디어에서 손을 떼는 것이다. 미디어와 미디어규제기구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려는 유혹을 떨쳐 버리는 순간 정권과 미디어 관계는 원만해지고, 미디어도 정상화된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기구가 되고, 위원도 대부분 정부여당이 뽑는다고 한다. 이것은 큰 문제다.

 

- 미디어와 미디어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생명으로 삼아야 한다. 그 신뢰는 특정한 계급이나 집단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국민의 보편적 신뢰인 만큼 미디어 정책은 보편타당한 가치를 추구해야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 국민 신뢰의 핵심은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이다. 현행 법제는 언론의 자유와 영업의 자유에 치중한 반면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소홀하다.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법제의 정비가 필요하다.

 

- 미디어의 다양성, 진실성, 지역성, 대안성을 존중한다. 상업 미디어의 과잉에 대응할 대안 미디어 활성화도 주요한 정책적 목표가 될 수 있다. 공공 인터넷 포털이나 대중적 대안 채널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것들이다.

 

-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디어를 대폭 확장시킨다. 특히 무료 디지털 지상파방송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이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이 있어야 하다.

 

- 미디어 품질의 향상을 촉진한다.

 

- 미디어산업에서 작가, 스태프 등 비정규직 노동자 또는 창작자의 고용 안정을 추진한다.

 

- 광고 제도와 광고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고, 미디어 다양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 지역 미디어의 역동성을 촉진한다.

 

국민의 마음을 버리는 정책

 

그러면 도입하지 말아야 할 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효율성이라는 잣대만으로 미디어를 재단해서는 곤란하다. 미디어 분야에서는 이것보다 훨씬 가치 있고, 유익한 것들이 많다.

 

- ‘이것 하면 성공한다. 저것 하면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뉴미디어 만능론도 진실은 아니다. 우리가 똑똑히 볼 수 있듯이 미디어는 이미 공급 과잉의 시장이다. 지금 있는 미디어도 재정난으로 인해 경영 상태나 콘텐츠의 질이 말이 아니다. 이문을 남기는 미디어도 전체의 10%도 안 될 것이다. 그 외에 많은 미디어가 적자를 내거나 사주, 모기업의 이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버티고 있다. 살아남기에 급급한 미디어가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지 의문이다. 이들이 이익 찾기에 급급해 부작용을 일으킬 경우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오곤 한다.

 

-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미디어 정책도 삼가는 것이 좋다. 국민들은 앞을 내다보는 신중한 미디어 정책을 원한다. 정권을 쥐었다는 이유로 미디어를 지배하려 들면 사단이 생기고 만다. 더구나 미디어는 국정에서 사람들의 의식, 가치관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섣부른 정책은 금물이다. 사익이나 편파 또는 ‘코드’ 같은 요물들이 미디어정책을 왜곡시켰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 미디어 정책은 미디어산업이 한국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극복하는 기능을 하도록 견인하는 데 충실해야 한다. 그 반대가 돼서는 안 된다. 거대 미디어나 재벌에게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를 허용한다면 미디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여론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다. 이미 3대 신문과 3대 방송은 정보와 대중문화 시장에서 자원을 독식해왔다.

 

미디어 사주와 광고주는 국가를 제치고 미디어 정책과 내용까지 통제하는 지배자로 올라섰다. 아무리 다채널 경쟁이라 해도, 또 제아무리 인터넷이니 무료신문이니 해도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힘은 이들에게 있다. 지금도 언론권력의 힘이 하늘을 찌른다. 이들의 횡포도 견제하지 못하는 실정에서 신문과 방송의 교차 소유가 허용된다면 한국사회는 언론권력이 획일적으로 통제하는 언론파시즘 체제가 될 것이다.

 

- 미디어의 과격한 시장화나 상업화는 부작용이 큰 만큼 신중히 제어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중간 광고 문제다. 방송광고가 정체되었다고 프로그램을 끊어먹고 광고를 하자는 발상은 지나치다. 또 방송광고시장을 경쟁적으로 만든다는 목적으로 미디어랩을 만들려는 생각도 아직은 이르다. 방송광고공사는 방송사와 광고주가 광고를 매개로 뉴스나 프로그램의 방향을 놓고 직접 거래하는 통로를 차단해왔다. 그런데 미디어랩이 허가되면 광고주의 영향력이 훨씬 증가해 뉴스와 프로그램이 이들 손에 들어갈 위험이 있다. 중간광고 불허, 광고공사를 통한 방송과 방송광고의 공공성 확보는 우리나라가 자랑해도 좋은 제도다.

 

- 미디어산업은 한류시장을 만들 정도로 국제경쟁력이 있는데도 함부로 구조를 해체하거나 변동시키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미디어와 광고 시장이 지금보다 더 광범위하게 개방될 것이지만 개방의 득실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면 시장도 빼앗기고 문화주권, 국가주권까지 위협당하는 처지에 몰릴 것이다.

 

국민들은 새 정부가 국민의 편에서 미디어 정책을 수립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걱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새 정권이 기업과 영어를 중심으로 나라를 경영할 것 같아서 그렇다. 새 집권 세력이 국민의 마음을 잡으려고 하지 않고, 재벌, 신문기업, 미국의 마음을 잡으려 애쓰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미디어시장주의를 신봉해서 문화산업에 문화는 없고, 미디어시장에 문화적 가치나 민주주의가 없는 흉한 모습만 보일지 모른다. 공영방송이나 보도채널 등이 신문재벌이나 대기업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

 

문화적 가치는 디지털처럼 재생되지 않는다.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다. 시장주의는 미디어의 사회 문화적 가치를 파괴할 충분한 힘이 있다. 숭례문 붕괴는 문화적 가치를 억누르고 돈 지상주의, 시장만능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 주는 엄중한 경고이며, 언론, 정보, 문화, 지식, 오락 등의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고 돈 가치만 따지는 현실을 질책하는 무서운 신호일지 모른다. 미디어와 문화에 대한 신중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 PD저널 >(http://www.pdjournal.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태그:#미디어정책, #미디어시장주의, #이명박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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