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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유럽 에스토니아란 나라에 수 년 째 살고 있는 한국인이다. 그 사이 숭례문은 불에 전소되어 영원히 과거의 추억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국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보고 싶은데, 그럴 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나름 혼자서라도 숭례문를 추모하는 차원에서, 여기 발트 언론와 폴란드에서는 숭례문 소식이 과연 얼마나 보도가 되었을까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공부하는 이곳 에스토니아의 대학교 도서관으로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의 신문이 배달되어 오긴 하지만, 보통 몇 주 지난 다음에 배달이 되기 때문에 현지 신문을 바로바로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만 뒤져볼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대부분 신문에서 숭례문 화재 소식을 다루어주고 있었다.

 

단지 지면신문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면에 얼마나 비중 있게 다뤄졌는지는, 나중에 학교 도서관으로 신문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

 

먼저 리투아니아의 최대 일간지 례투보스 리타스(Lietuvos Rytas)다.

 

발트3국을 비롯한 폴란드의 매체 중 숭례문 소식을 가장 길고, 정확하고, 그리고 세밀하게 다뤘다. 2월 11일 당일 나온 기사에는, 숭례문의 가치가 무엇인지, 왜 소실되어 안타까운지 소실된 경위는 무엇인지,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지를 정말 꼼꼼하게 보도했다.

 

 

그런데 대체 저 위에 웃통을 벗고  팔을 확 벌리고 있는 분은 누구란 말인가.

 

독자의견도 올라왔는데,

 

Padege musulmonai-garantuoju

저건 분명히 아랍인들의 소행이야, 내가 보장한다.

 

정말 이 사람 말대로 외국인의 소행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이것뿐이 아니다. 오늘 2월 14일자 신문에도 기사가 한개 더 실렸다. 방화범에 관한 소식과 건물에 대한 자세한 소개, 그리고 복구는 가능할지 얼마나 걸릴지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혹시 리투아니아의 심장이라 불리는 빌뉴스 대성당이 불타면,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이만큼 다루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럼, 라트비아로 가보자.

 

애석하게도 라트비아는, 현지 신문이 도서관으로 배달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왜나면 라트비아 최대 신문인 디에나(www.diena.lv)는 하루만 지난 기사를 보려고 해도 전부 유료이기 때문에 도저히 찾아볼 방법이 없기 때문. 물론 그리 비싼 돈은 아니지만, 핸드폰 같은 것으로 결재하는 것이다 보니까 여기서는 결제하기가 아주 까다롭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지난 기사 보기에 돈을 받는 거야!

 

에스토니아의 대표신문 포스티메에스(postimees) 역시 관련기사를 두 번에 걸쳐 다루었다. 착하다.

 

11일 당일은 리투아니아보다 상당히 짤막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정보만 꼭 집어서 보도를 해주었다.

 

 

내용은 숭례문의 역사와 수사 상황, 그리고 복원가능성에 관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역시 독자의견이 두 건이나 올라와 있다.

 

See on nüüd küll kultuurikatastroof. Kuigi värav võidakse uuesti ülesehitada, pole see enam muistis.

이건 엄청난 문화적 재앙이다. 물론 새로 지으면 되겠지만, 옛날과 똑같을 수는 없다.

 

Tuleskulptuuride tegemine on vist mingi moodne nakkushaigus.

불 조각 만드는 게 요즘 유행하는 신종 전염병 인가봐. 

 

그리고 그 다음날, 방화범 체포 소식이 바로 보도되었다. 지면 신문에는 국제면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렸는데, 인터넷 판에는 방화범 체포 모습까지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폴란드다.

 

한국에 대해서 상당히 예의 없는 태도로 일관한데다가, 아무도 뭐라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는지 꾸준히 그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는 폴란드의 최대 일간지 가제타 비보르차(Gazeta Wyborcza)에서는 그 어떤 기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인터넷 판의 이야기다.

 

지면신문에는 혹시나 나왔을 수 있겠지만, 현재 인터넷상에 올라와있는 것들을 보면, 한국 관련 최종 기사는, 이천 화재 사건으로 뉴스를 보도하던 아나운서가 뉴스를 마치며 웃는 바람에 직장을 잃었다는 뉴스다. 개인적으로 아나운서에겐 안타깝지만 그 매체에서 보기엔 그게 숭례문보다 중요하다니…. 그나저나 그 아나운서 여전히 오락프로그램에선 얼굴을 보이는 것 같던데.

 

그러나 그래도 폴란드 제2의 신문이라는 명성을 자랑하는 '제츠포스폴리타(Rzeczpospolita)' 에서는 역시 두 번에 걸쳐 방화 당시의 상황과 방화범 체포에 이르는 소식을 다뤄주었다. 내용면에서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보단 많이 빈약한 편이다. 그래도 실어주어서 다행이다.

 

 

독자의견은 달린 것이 없다. 왜냐면 이 신문은 기사에 독자의견을 남기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숭례문이 없어진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화재 이후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멀다고만 느끼던 여러 나라 매체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해 주는 것을 보니, 그 가치는 정말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이상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묵묵히 옆에 있을 때, 가치를 알아주지 못한 내가 미안하고, 어처구니없이 그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우리가 부끄럽다.

 


태그:#숭례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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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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