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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숭례문 화재현장 보수작업을 위한 가림막 설치가 진행중인 가운데 검게 불타버린 숭례문을 찾아 아쉬움을 달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13일 숭례문 화재현장 보수작업을 위한 가림막 설치가 진행중인 가운데 검게 불타버린 숭례문을 찾아 아쉬움을 달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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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사이에서 '숭례5적(전·현직 서울시장, 서울 중구청장, 문화재청장, 소방방재청장)' 처벌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정동일(54) 서울 중구청장이 13일 저녁 뒤늦게 숭례문 화재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해 빈축을 사고 있다. 

정 청장은 이날 뒤늦게 발표한 사과문을 통해 "국보 1호 숭례문 관리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수많은 외침과 전란 속에서도 600여년을 꿋꿋하게 버틴 숭례문을 지키지 못해 선조와 후손에게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문화재 점검을 실시해 앞으로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네티즌 "600년 조상 혼 불태운 중구청장은 용퇴하라"

그러나 시민들은 이같은 정 청장의 사과내용이 미흡하다며 당장 사퇴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서울 중구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정 청장을 비난하는 시민들의 글이 빗발치고 있다.

숭례문 관리의 실질적 책임자였으면서도 사고발생 이후 지금까지 아무말 않고 있다가 여론의 불똥이 중구청에게까지 직접 튈 것 같으니까 뒤늦게 '면피용'으로나마 사과에 나선 게 아니냐는 비판인 것이다.   

네티즌 김은태씨는 14일 중구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600년 조상 혼을 불태운 중구청장은 국민에게 사죄하고 용퇴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스스로 용퇴하지 않으면 주민 소환에 직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인기씨도 같은 날 중구청 게시판을 통해 "200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는 구청이 국보 1호 숭례문 보호에는 고작 연간 수천만원을 사용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고 "즉시 사과문을 발표해야지 오늘(13일) 저녁에야 사과문을 발표하는 게 무슨 염치냐"고 다그쳤다.

권정화씨는 지난 12일 '중구민이라는 게 부끄럽습니다'라는 중구청 게시판 글을 통해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화재영상과 담당부서의 변명들을 보면서 하나 같이 자신의 담당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책임회피 하는 걸 보니 모두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가 보다"며 "불을 견디다 못해 쓰러져버린 숭례문을 보면 안타깝지 않느냐"고 질타했다.

시민들의 지적대로 정동일 구청장의 때늦은 사과문 발표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서울 중구청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정동일 구청장은 지난 10일 저녁 9시 8분 자택에서 구청 당직사령으로부터 숭례문 화재사고 보고를 받았다.

곧이어 이날 저녁 9시 30분 숭례문 화재사고 현장에 도착했으며 이튿날(11일) 새벽 3시 30분까지 현장을 지켰다고 했다. 그 뒤에 귀청했으며, 같은 날 오전 7시경에는 현장조치상황 등을 점검하기 위해 다시 숭례문 현장에 나갔다고 주장했다.

정 청장은 사고 이후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결빙도로가 생겨 염화칼슘 살포와 도로청소도 직접 당부했다고 전했다. 또한 11일 새벽 5시에는 정 청장의 지시로 '빠른 문제 해결'을 위해 가림막 공사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서울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개막선언을 하고 있는 정동일 중구청장.
 서울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개막선언을 하고 있는 정동일 중구청장.
ⓒ 연합뉴스 강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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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자는 "정 청장이 사고발생 직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퇴청하지 못한 채 나흘째 사고현장과 구청 사무실을 오가며 현장상황을 점검하고 있다"며 "점심과 저녁식사 모두 청 내에서 해결하면서 현 상황을 타개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달했다.

그의 이 말은 서울 중구청이 숭례문 화재사고 이후로 나흘간 현장상황을 컨트롤하느라 국민들에게 '사과'할 시간이 없었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현장상황을 컨트롤하느라 바빴다는 중구청은 정작 '가림막 공사 책임'이나 '숭례문 관리책임 미비' 등 사건과 직접 관계된 부분에 대해서는 서울시와 문화재청, 소방방재청으로 책임을 떠넘겼다.

이 관계자는 "숭례문 가림막 공사 지시를 중구청이 어떻게 혼자 결정할 수 있겠냐"며 "청장님 지시가 있기 전에 문화재청과 서울시와의 협의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사실상 '연대책임'을 주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숭례문 잔디광장 건설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주도했지만, '홍예문(숭례문 석축 중앙부의 문) 개방'은 중구청이 주도했다는 서울시의 입장에 대해, 이 관계자는 "이제 와서 서울시 문화재관리과에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1차적으로는 중구청에게 책임이 있지만 국보의 이전과 공사는 문화재청 허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못 하나 박으려고 해도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허락 없이는 안 된다는 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중구청 "진작 사과했어야 하는데... 수습에 여념 없다보니 죄송"

그러나 이 같은 중구청 관계자의 말은 '구청장 사과'가 사흘이나 늦어진 점에 대한 구체적 해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중구청이 '상황을 수습'하느라 '사과'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은 쉽게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 구청장은 사건 발생 뒤 69시간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다 사흘 만에 사과문을 발표했다. 관리책임자가 뒷전에 있다가 뒤늦게 사과한 것은 여론의 눈치를 살피다 집중포화가 쏟아지니 할 수 없이 나선 게 아니냐는 등 여러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먼저 12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먼저 머리를 숙이고 나선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 등 상층의 책임공방이 치열할 때 나서서 먼저 매를 맞기보다는 피할 수 있을 데까지 피했다가 나중에 사과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또,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이 숭례문 관리실태의 부실을 지적하면서 "노숙자들이 숭례문 누각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술을 마셨으며 잠까지 잤다"고 보도한 데 따른 해명자료를 내야 하는데, 아무런 사과 없이 해명자료만 내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과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이에 대해 장성삼 서울 중구청 공보계장은 "우리 청이 진작 사과에 나섰어야 했는데 수습에 여념이 없다보니 상대적으로 늦어졌다"며 양해를 구했다. 정 구청장과의 직접연결을 당부했지만, '사고 수습 중이라 연결이 곤란하다'는 입장이 돌아왔다. 수차례 정 청장과의 직접 전화연결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한 전직 중구청 직원은 "평소 대책 없이 사업을 벌이던 구청장의 사업스타일이 결국 숭례문 화재사고로까지 이어진 느낌"이라며 "서울시내 200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는 식으로 책임지지 못할 사업계획을 추진하는 걸 보면 이명박 당선인과 같은 코드"라고 비판했다.

(주)일동인터내셔날(둘둘치킨) 회장으로 성공해 '기업인 출신 구청장' 별호를 달고 다니는 정동일 청장은 2006년 당선 이후 2년간 충무로국제영화제, 소나무 가로수 교체사업, 영어교육특구, 효도특구, 음식점 글로벌 인증제 도입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또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해외시장 개척, 지역 상공인들과 함께 러시아 국제 가족 및 모피제품 전시회와 의류·액세서리·스포츠용품 시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특히 충무로국제영화제와 관련해서는 대표적인 구청장 홍보용으로 지역의 생색내기 행사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25일 개막한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는 모두 140여편의 고전영화가 준비됐는데 이 가운데 약 10% 가량이 영어자막 없이 진행됐다. 경비가 모두 시민세금으로 충당됐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하루 1갑 이상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로서 기초 자치단체장으로서는 처음으로 관할지역내 꽁초휴지통을 설치했고, '효 테마송' 앨범을 내고 구청장 가수로도 데뷔했다. 구청장이 대중가수가 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정동일 청장은 '중구발전 4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초고층 빌딩 계획'을 세우고, 강북 도심에 상징적이고 기념비적인 초고층 건물 건립을 통해 동북아의 금융·관광 허브로 육성시켜 서울을 경쟁력 있는 지속가능도시로 만들자고 나서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는 것처럼 정 청장도 '청계천과 남산을 잇는 인공수로 계획'을 세워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세운상가 재개발 지역 중앙을 가로질러 꾸며질 녹지공간에 인공으로 물길을 내 배를 띄우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길의 폭은 10~30m, 길이는 800m 정도로, 한번에 20명 정도 탈 수 있는 나룻배를 띄워 관광명소를 만들고,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초고층 빌딩을 세워 높낮이가 다양한 스카이라인을 세우겠다고 나섰으나 서울시의 반대에 부딪쳤다.

서울시는 "남산과 인왕산, 낙산과 북악산 등으로 둘러싸운 서울의 자연경관과 고궁 등 역사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높이 제한이 불가피하다"며 "세운상가 자리에는 폭 90m의 중앙녹지와 90m 높이의 건축물을 세울 것으로 규제"했다.

당시 정동일 구청장은 "서울시가 높이 제한을 풀지 않으면 공람공고를 계속 거부할 것"이라며 지난해에는 토지 소유자를 비롯한 주민들을 동원해 15만6600여명의 주민서명을 받아 서울시에 제출하기도 했다.

중구청 자유토론방 게시판.
 중구청 자유토론방 게시판.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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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호 관리에 구청 예산의 0.02%만

구 예산 40억원이 투입된 충무로국제영화제에 대해서도 '구청장 홍보용 치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구청장 치적에는 40억원씩 예산을 쓰면서 정작 문화재 관리에는 '짠돌이' 행세를 했다는 비판인 것이다.

실제 중구청이 지난해 숭례문 관련 예산으로 지출한 금액은 모두 1억7200만원. 전체예산이 2709억9386억원이니까 0.02%만 쓴 셈이다. 국보 1호 숭례문을 이렇게 관리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남에 따라 비난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이 가운데 국비와 시비를 제외하면 중구청이 쓴 돈은 인건비 8000만원이 전부다. 치적 논란이 일었던 소나무 가로수 교체사업에만도 16억원의 예산이 투여됐으니 사실상 국보 1호 숭례문은 '관리책임자' 중구청으로부터 '홀대'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관련, 네티즌 황승호씨는 "충무로국제영화제를 하면서 혈세를 낭비하지 않나, 멀쩡한 가로수를 소나무로 교체하지 않나, 이런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하면서 어떻게 숭례문에는 예산타령만 하느냐"며 "숭례문 같은 상징적인 곳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 이러는 거냐"고 개탄했다.

정동일 구청장은 94년 민주당 입당으로 정치에 발을 처음 디딘 뒤 95년 구의원 선거 후보로 지명됐으나,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그 뒤로 98년 서울시 중구의회 구의원에 당선됐으며, 2002년에는 서울시의회 보궐선거 중구 의원에 당선됐다.

현직 회장 직함을 갖고 있는 둘둘치킨의 모토는 '고객사랑에 대한 책임감'이며 전국적으로 500개 점포, 해외시장에도 진출해 있다. 저서로는 <희망을 튀겨내는 치킨 아저씨>가 있다.


태그:#숭례문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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