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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여행을 시작하는 아름다운 명소가 있다. 그곳은 바로 미라벨 정원(Mirabell Garten). 나의 가족도 미라벨 정원에서 잘츠부르크 답사를 시작했다.

정원에 들어서자, 정원 너머로 멀리 묀히스베르크(Mönchsberg) 산 위에 우람하게 자리 잡은 호엔잘츠부르크(Hohensalzburg) 성이 마치 사람들을 압도하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위의 고성과 평지의 정원이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호엔잘츠부르크 성과 미라벨 정원은 서로 완벽한 배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페가수스가 힘차게 뛰어오르고 있다.
▲ 페가수스 분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페가수스가 힘차게 뛰어오르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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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원의 북쪽에 자리 잡은 분수대 주변부터 산책을 했다. 이곳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의 정교한 청동상이 분수 위에서 힘차게 뛰어오르고 있었고, 조각상의 발아래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물이 둥그런 연못을 적시고 있었다. 페가수스는 앞발을 들어 올린 채 용케도 뒷발로만 서서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었다. 나는 저 청동상을 분수 위에 고정시키기 위해 조각가가 참 고생 했을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페가수스 분수대 북쪽으로는 낮은 언덕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이 바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트랩 대령의 아이들이 도레미 송을 부르며 내려오던 계단이다. 계단 양 옆에는 이마에 뿔이 솟아있는 전설 속의 동물인 유니콘 두 마리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순결한 젊은 아가씨들에게 꼼짝을 못하는 유니콘이 이 계단에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 유니콘이 아름다운 정원의 청순함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미라벨 정원의 탄생 배경은 이같은 청순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미라벨 정원은 1606년 잘츠부르크의 대주교였던 볼프 디트리히(Wolf Dietrich, 1587~1612)가 사랑하는 여인 잘로메 알트(Salome Alt)를 위해 미라벨 궁전의 전신인 알트나우(Altenau) 궁전을 지으면서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가톨릭의 수장인 대주교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거대한 궁전을 지었을 정도이니, 당시 가톨릭이 얼마나 세속화되고 타락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세속화된 대주교였던 볼프 디트리히는 결국 추방당하여 요새에 갇혀 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금슬은 아주 좋았던 모양이다. 그는 상인의 딸이었던 잘로메 알트와 오랜 세월을 부부같이 살았고, 무려 15명의 자식까지 두었다. 내가 그 당시를 살지 않았고, 그에 대해서는 몇 가지 역사적 기록만이 전해지지만, 타락한 그가 한 여인을 지극히 사랑하였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는 훌륭한 정치가로서 잘츠부르크를 꾸미고 자신의 사랑까지 꽃 피운 능력 있는 사람인 동시에, 비밀결혼을 한 가톨릭 성직자로서 가톨릭 타락의 극치를 보여준 사람이었다.

정원과 분수, 조각상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 미라벨 정원 전경. 정원과 분수, 조각상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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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세속적인 생활은 다른 성직자들의 분노를 샀다. 그는 이 아름다운 궁을 빼앗겼고, 궁은 이름이 바뀐다. 그의 후임이었던 마르쿠스 시티쿠스(Markus sittikus) 대주교는 전임자의 행적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이 궁전은 미라벨(Mirabell) 궁전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아름다운 궁전'을 뜻하는 미라벨 궁전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물러난 이후 이 궁전은 후임 대주교들의 별궁으로 사용되었고, 궁전 안의 대리석 홀(Marmorsaal)에서는 모차르트가 6살 때에 대주교를 위한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미라벨 궁전은 18세기 초 대규모 궁전으로 다시 지어졌으나, 181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아름다운 정원에 비해 다소 단순해 보이는 궁전 건물은 현재 잘츠부르크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녹색의 잔디 위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절정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오후의 해는 밝았지만 햇빛이 피부를 파고 들 만큼 강렬하지는 않았다. 나의 아내와 딸은 잔디밭 위에 붉은 꽃이 원 모양으로 탐스럽게 피어 있는 정원을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했다. 정원의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서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앉아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잘츠부르크 주민들이 무대 공연을 준비 중이다.
▲ 미라벨 정원 야외무대. 잘츠부르크 주민들이 무대 공연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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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딸은 정원의 구석구석을 산책하고 싶어 했다. 정원 서쪽에는 18세기 초에 만든 극장이 있고, 극장 무대 주변으로는 사각으로 재단된 키 큰 나무들이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무대 옆을 지날 때, 콘서트가 많이 열리는 것으로 유명한 무대 위에서는 잘츠부르크의 주민들이 만드는 야외 음악회가 준비되고 있었다. 객석에는 몇 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만이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면 미라벨 정원 전체에 이들이 부르고 연주하는 음악이 울려 퍼지겠지만, 아직 음악회 시작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무대 뒤로는 미로 같은 숲 속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무가 에워싼 이 길은 사람 키의 2, 3배 되는 높이의 나무들이 성벽 같이 가위질 되어 있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책을 쌓아 길을 만들어 놓은 듯한 나무 길들이 이리저리 이어지고 있었다. 신영이가 몇 살만 더 어렸어도 아빠와 숨바꼭질 하자고 졸랐을만한 흥미로운 곳이다.

나무길 미로가 끝나는 곳에는 뜻밖에도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있었다. 길고 경사가 꽤 심한 튜브 속을 타고 내려오는 미끄럼틀이 있고, 끈으로 엮은 바구니 안에 앉아서 타는 그네가 신영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영이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다가, 이 곳 친구들이 그네를 비워주자 얼른 뛰어가서 그네에 올라탔다. 놀이기구들이 아이들 취향에 맞게 잘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놀이기구의 세련된 색상이나 디자인이 미라벨 정원과도 묘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 미라벨 정원 어린이 놀이터. 아이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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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벤치에서 쉬고 나는 한동안 신영이의 그네를 밀었다. 놀이터 한 중앙에서는 멀쩡하게 생긴 예쁜 금발의 젊은 엄마가 맨발로 아이들과 뛰어놀고 있었다. 아내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 노는 백인 여자를 신기하다는 듯이 구경하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신영이를 위해, 유럽에서의 황금 같은 시간 중 상당 시간을 이 놀이터에서 쉬는 데 할애했다.

우리는 맑은 분수물이 쉴 새 없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중앙 분수를 향해 걸어갔다. 화려한 중앙 분수 주변에는 수많은 바로크 양식의 조각들과 정원이 전체적인 조화 속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스 신화 속의 영웅들이 분수의 4면을 장식하고 있고, 정원의 남문 주변으로도 바로크 양식의 대리석 인물상 조각들이 도열하듯이 멋지게 장식되어 있다.

주변에는 그리스 신화 속의 영웅들이 조각되어 있다.
▲ 미라벨 정원 중앙 분수. 주변에는 그리스 신화 속의 영웅들이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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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들과 정원의 조화로운 배치에는 이웃 나라인 이탈리아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다. 1690년에 이 정원을 구상하고 조각을 배치한 피셔 본 에를라흐(Fischer von Erlach, 1656~1723)가 이탈리아의 후기 바로크 건축을 공부하고 돌아온 바로크 양식의 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정원의 배치와는 별도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조각상들을 가까이에서 보면 이탈리아의 그 것에 비해 섬세함이 떨어진다. 이는 이탈리아 조각을 모방한 아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원 남쪽의 마카르트 광장(Makartplatz)으로 나가려는데, 아치형으로 나무터널을 만들어놓은 산책로가 나온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가 본 트랩 대령의 일곱 아이들과 함께 '도레미 송'을 부르며 뛰어다니던 곳이다. 신영이도 영화에서 본 그 장면이 이곳이라며 방긋 웃었다. 그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사람이라면 이 나무터널 속에서 도레미 송을 부르는 아이들이 튀어나올 것이다.

실제 이 정원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미라벨 궁전을 처음 건설한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의 15명에 이르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곳에 살지 않았던 7명의 아이들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이 정원을 뛰어다녔고,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아이들만 기억하고 있다.

15명의 아이들과 7명의 아이들을 기억하는 일반사람들의 인식의 차이는 누가 상식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았는가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가톨릭 대주교가 금지된 사랑으로 낳은 자녀들을 미화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영화 속에서 독일의 침공에 항거한 스토리의 자녀들은 칭송 받을만 했을 것이다.

계절마다 철을 달리 해 피는 꽃이 아름다운 미라벨 정원, 세계 각국에서 온 어린이들의 밝은 웃음이 퍼지고 있었다. 마치 잔디 위에서 붉게 웃고 있는 꽃들처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미라벨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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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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