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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촌에서는 PC방+고시학원+고시식당+고시원이 모두 있는 건물을 흔히 볼 수 있다.
 고시촌에서는 PC방+고시학원+고시식당+고시원이 모두 있는 건물을 흔히 볼 수 있다.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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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곱창골목' '신당동 떡볶이' '장충동 족발'처럼 신림동은 '고시촌'으로 유명하다. 관악산 밑자락에 위치한 서울대를 중심으로 주변에 형성된 고시촌은 이제 신림동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노량진이 7급이나 9급을 준비하는 공무원시험 준비생, 이른바 '공시생'이 많은 반면에 신림동은 각종 고등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모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가오는 2월 23일의 외무고시, 행정고시 1차시험과 28일의 사법고시 1차시험을 앞두고
지난 16일, 신림동 고시촌을 찾았다.

어려운 합격의 길, 마음은 '두근두근'

신림동을 가기 전에 행정고시를 준비했던 선배에게 신림동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았다.

"시험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이 가장 민감할 시기야"

선배는 "노량진과 신림동은 트레이닝복 차림이 오히려 길 다니기 편한 곳"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하며 까칠한 사람들이 많으니 신중하게 취재하라고  조언해주었다.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취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길을 나서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아직 한번도 신림동 고시촌을 가본 적이 없는 내게는 그 곳에 찾아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2호선 서울대입구 역에서 내려 긴 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신림동 고시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예 '다음 내리실 곳은 신림동 고시촌입니다'라는 방송이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신림동 고시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 가본 신림동 고시촌은 확실히 여느 곳과 달랐다. 요즘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서점도 많이 보였고, 서점이나 식당의 간판명도 '될놈 고시서적' '가문의 영광 고시식당' '법고을 서적' 등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고시', '합격'을 연상시켰다.

'이번에 내리실 정류장은 신림동 고시촌 입니다'
 '이번에 내리실 정류장은 신림동 고시촌 입니다'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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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 23일 치러지는 PSAT(공직 적격성 테스트)는 공무수행에 필요한 기본적 지식과 소양, 자질 등을 갖추고 있는지 평가하는 시험이다. 2004년 처음 외무고시 1차로 도입된 이래로 현재 행정고시와 지역인재추천제의 6급 채용의 평가시험으로 확대되었다.

PSAT의 경우 무조건 외워서 보는 시험이 아니라 논리력·이해력·추론력 등 사고가 필요한 시험이라고 한다. 이처럼 PSAT은 공부를 하면서 "나는 바보인가", "아무말 없이 머리를 찧는다"라고 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시험이다.

중앙인사위원회는 지난 1월 24일 2008년도 행정고시, 외무고시에 1만5646명이 지원하여 평균 46: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이는 작년보다 1054명 늘어난 수치로, 더욱 뜨거워진 '고시열풍'을 실감나게 했다. 작년보다 높아진 경쟁률과 함께 이번 새 정부의 공무원 감원 등의 이야기는 1차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에게 더욱 긴장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고시준비생들 "긴장돼 정말 미칠 것 같아요."

"요즘은 독서실에서 펜 소리만 나도 신경이 거슬려요."

이날 신림동에서 어렵게 만난 유아무개(28)씨는  "평소에도 예민하지만 지금은 더욱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예민한 시기인 것을 알기 때문에 서로 거슬리지 않으려고 조심해요"라고 덧붙였다.

"책상이 너무 낮으면 어떡하지?"
"그래도 중학교가 아니니깐 그리 낮지는 않을 거야."
"난 이번에 또 중학교에서 시험 봐. 작년에 거기는 너무 불편했는데."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PSAT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2월 15일 발표된 시험장소에 대해 정보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4번이나 거절당했다. 5번의 시도 끝에  한 학생은 "지금 신림동 고시촌 전체의 분위기는 긴장 모드"라고 말했다.

고시촌의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민영(23)씨도 "시험이 얼마남지 않아 우리도 학생들 대하기 조심스러워요"라며 시험을 앞두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어렵게 대학에서 추천을 받았어요. PSAT을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긴장됩니다."

PSAT을 준비하는 사람은 고시생뿐만이 아니었다. 지역인재추천제의 6급 견습시험을 준비중인 김경아(24)씨는 수능시험일보다 더 떨린다며 23일만 생각하면 잠도 안 온다며 긴장감을 토로했다.

지역인재추천제는 각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특별히 추천받아 PSAT시험과 면접시험을 통해 6급공무원으로 채용되는 제도이다. 추천을 받기 위해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는 그녀는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공부가 더 안 되는 것 같아요"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고시촌 곳곳에는 1차 시험 마지막 강의를 선전하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보였다.
 고시촌 곳곳에는 1차 시험 마지막 강의를 선전하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보였다.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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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 다가오면 살벌해지는 독서실 분위기

주로 사법고시 준비생들이 많이 모인다는 독서실을 찾았다. 이 독서실은  두 개의 쌍둥이 건물을 연결해 놓은 독서실이었는데, 처음 이 독서실을 보고 나는 기존의 내가 알고 있던 독서실 수준의 규모가 아니라 놀랐다.

신림동을 찾기 전에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분위기가 살벌해지기 일쑤"라는 소리를 듣고 온터라 선뜻 혼자 독서실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독서실 총무실에 시험을 앞두고 독서실 분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왔다고 알렸으나 역시나 아웃. 결국 나는 그곳에서 공부를 하는 친구에게 연락해 독서실 안에 들어가게 해줄 것을 부탁했다. 

"사진을 찍었다가는 독서실에서 비난의 집중포화를 받고 나까지 쫓겨나."

열람실 내부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다고 하자 친구는 "심지어 열람실 안에서 걸어다니는 것 조차도 신경쓰는데, 사진까지 찍었다간 큰일난다"며 하도 심각하게 말리는 통에 할 수가 없었다.

독서실 앞에서 만난 문성목(28)씨는 "어제는 정말 조용히 있었는데도 조심히 다니라는 쪽지까지 받았다"면서 내부의 살벌한 분위기를 전했다.

로스쿨 도입... 사시준비생 "이번이 마지막 기회"

'될놈 서적'이라는 재밌는 이름의 책방 앞에 붙은  마지막 PSAT 모의고사물
 '될놈 서적'이라는 재밌는 이름의 책방 앞에 붙은 마지막 PSAT 모의고사물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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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준비생들에게 이번 1차시험은 더욱 절박한 의미를 가진다.

로스쿨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움직임을 보이면서 사법고시 자체가 조만간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법고시는 2010년까지는 현재와 같이 1000명의 합격인원이 유지되지만, 2011년부터 인원이 대폭 축소되고 2014년에는 완전히 폐지한다는 것이 현재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로스쿨 제도의 기본이다.

사법고시 합격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일부 준비생들은 아예 로스쿨 준비로 방향을 돌리기도 한다. 2010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사법준비생들은 자연히 이번 시험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늦은 나이에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아무개씨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더욱 이번 시험의 합격이 간절하다"면서 불안한 마음을 전했다.

합격을 위한 첫 단계 "모두 시험 잘보세요"

이날 신림동 고시촌을 누비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시험을 앞둔 초조함과 긴장감, 그리고 외부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였다. '외부인'이라는 표현도 웃기긴 하지만, 사실 고시를 준비하지 않는 내가 신림동 고시촌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여러 사람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으나 번번이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심지어 대꾸도 안하고 지나가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야속하게도 느껴졌으나 내가 고시촌을 찾은 16일은 PSAT시험이 일주일, 사법고시 1차시험이 불과 2주일 남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고시 합격의 문이 더욱 좁아질 거라는 전망과 함께 힘들게 어려운 공부를 평가받는 날이 얼마남지 않았으니 그 긴장감이야 오죽할까.

한편으로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온힘을 다해 공부하는 그들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정말 코 앞으로 다가온 고시 1차 시험, 신림동 고시촌의 수험생들뿐만 아니라 전국 모든 수험생들의 선전을 기원한다.


태그:#고시촌, #신림동, #수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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