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 KBS 1TV <시사기획 쌈>은 11일 방영분을 통해 스포츠계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렸다.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 2008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 KBS 1TV <시사기획 쌈>은 11일 방영분을 통해 스포츠계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렸다.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 KBS 홈페이지


"선수는 자기가 부려야 하는 종이야. 종인데 육체적인 종도 될 수 있고…. 선수 장악 방법은 단순하게 성적인 관계가 주 방법이고, 또 폭력이 있어야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고…."

한국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KBS 1TV가 지난 11일 오후 방영한 <시사기획 쌈>은 '2008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편에서 한국 스포츠계에 뿌리 깊은 성폭력 문제를 고발했다.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물론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호소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밝히기 어려웠을 뿐이다. <시사기획 쌈>의 11일 방영분은 극히 민감하고 은밀한 이 소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피해자인 선수들의 목소리가 나왔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공신력을 높였다. 자신을 성폭력 피해자라고 밝힌 여자배구 국가대표 출신 김아무개씨는 "합숙 도중 감독이 다른 선수들을 외박 보낸 상태에서 나쁜 일(성폭력)을 당했다"며 "이후 감독이 경질되었고 그 사유는 선수 관리를 못해서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후임 감독도 경질된 전 감독과 큰 차이가 없었다. 김씨는 "지방 시합을 가면 밤에 전화가 왔다, 숙소에서 나가 새벽까지 술을 따라야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면서 "더구나 전 감독의 경질 사실을 알고도 나에게 스킨십을 자꾸 시도하려고 했는데 강하게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시합을 못 뛰었는데 내심 문제가 커지길 바랬다. 새로운 감독마저 그런다면 다른 감독들은 또 그럴 것이 아니냐. 나는 운동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강하게 항의했다. 물론 그룹차원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다 덮었다. 호소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더라."

피해자는 김씨뿐만이 아니었다. 팀에 거의 모든 선수들이 성폭력 피해자였다. 이에 선수들은 집단 이탈과 항의로 집단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김씨가 몸담던 팀은 해체됐다.

김씨의 피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문제로 이혼한 김씨는 재혼 이후 현재까지도 자해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김씨의 남편은 "지금은 그래도 안정되어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정말 어떤 때는 당사자들을 찾아가 따지고 싶다"고 분노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이상한 범죄'

더욱 큰 문제는 가해자가 성폭력에 대한 죄책감을 별로 느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당시 김씨가 몸담던 팀의 감독은 KBS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정작 가해자가 없는 이상한 범죄다.

다른 지도자 또한 완곡하게 부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성폭력 문제로 해임되었던 한 학교의 여자농구 지도자는 "그런 사실은 없고 아이들과의 저와의 스킨십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고 밝혔다. 제자들과의 스킨십이 떳떳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일선 스포츠 지도자들의 성에 대한 의식은 희박했다.

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지도자도 있었다. 그는 "과거 선수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했지만 지금은 이 문제로 너무나 괴롭다"며 "지금 스포츠계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성폭력이 가능한 환경이다"고 경종을 울렸다.

<시사기획 쌈>은 스포츠계에서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한국 스포츠의 근간인 반인권적 엘리트 체육과 남성 지도자들이 90% 가량을 차지하는 스포츠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들었다. 공부를 등한시하고 오직 운동으로만 진로를 결정하게 되는 현재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지도자들에게 엄청난 힘을 실어줬고 그들은 잘못된 성의식으로 무장된 남성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지도자들은 학생선수들의 장래를 좌지우지하면서 '나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많은 학부모들이 성폭행 사실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점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자식의 장래가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일부 현장의 몰상식한 지도자들은 이를 악용한 셈이다. 그들은 결코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성의식, 바로 잡아야

이번에 <시사기획 쌈>이 밝힌 성폭력 문제는 비단 스포츠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 성폭력도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와 매우 유사한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급증한 학생 성폭력 문제는 피해자보다 오히려 가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통상적인 가해자 측의 반응은 "여자가 태도를 단정히 하고 조심했으면 될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식이다. 한술 더 떠 피해자가 받을 상처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우리 사회의 그릇된 성의식이 만든 철저히 잘못된 생각이다.

은폐와 축소가 비일비재하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성폭력 문제가 불거진 해당학교는 일을 밝히고 진심으로 사죄하면서 재발방지를 약속하기보다 숨기는데 급급한 실정이다. 여기에는 '성폭력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안일한 생각과 '세월 가면 잊힐 것'이라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대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성폭력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한다면 피해를 줄일 수도 있고 막을 수도 있다. 성폭력을 두고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는 것'이라는 남녀노소의 공감대가 우선 형성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학생 성폭력 문제는 학부모들이 자식들의 장래를 걱정한 나머지 소극적인 대응을 해왔기에 더욱 커지고 대담해졌다. 하지만 성폭력 사실을 알고도 참았던 학부모들의 선택은 궁극적으로 자식들에게 더 큰 피해가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성폭력을 피하는 방법, 또한 경험했을 경우 대처 등은 학부모들이 자식에게 알려주고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일종의 의무이자 권리다.

또한 학생들에게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성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이라는 것을 포르노 테이프 따위로 처음 접하는 우리 학생들이 건전하고 올바른 성에 대해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부끄럽고 창피한 것이라고 여기며 덮어놓고 쉬쉬하고 있을 때 성범죄는 이미 급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단순히 스포츠계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성폭력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사회는 남성들만의 것이 아니라 여성들과 공존함으로써 유지된다.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남성들의 어머니도 여성 아닌가.

<시사기획 쌈>은 극히 제한적인 취재 환경에도 불구 '객관적인 사실 전달과 현실 비판'이라는 언론의 이상향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칭찬받아 마땅하다. 다시 한번 이 민감한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린 그들의 용기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스포츠 관련 제보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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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berealist@nate.com
성폭력 스포츠계 성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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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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