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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끓고 새벽기도를 하거나 대웅전에 가서 삼천배를 올려도 당신의 아랫배는 고해처럼 출렁이지요. 그러나 달빛 내리는 뒤뜰 정한수 앞에 서면 팽팽해지지요 뒷산 대나무처럼 말이에요 온몸이 아랫배인 대나무들은 선채로 평생 기도를 올리지요.
 
처마 속으로 대뿌리가 번지는 것 같다고, 대나무처럼 텅 빈 자궁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것 같다고, 당신은 약이랄 것도 없는 잡풀을 달이셨지요. 여물 같은, 쇠죽여물 같은, 약 달이는 냄새를 맡으며 저는 죽순처럼 잘랐지요. 그런 밤이면, 댓잎들 황달을 앓는 소리 누렇게 들려왔지요.
 
- 이정록 시 '대나무' 
 
'상징'에게 반란하는 언어들
 
바람에 자주 흔들리나 구리처럼 잘 꺾이지 않는 대나무는 선비의 절개와 기개와 지조를 상징한다. 이정록 시인은 이러한 보편적 상징에게, 과감하게 혁명을 한다. 시인의 예리한 투사력에 형상화된 '대나무'의 상징 이미지는 대나무의 텅빈 공(空)의 실존을, 여성의 자궁에 환유하므로써 여성성(모성)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대나무'는 올 곧은 대나무가 아니다. 병든 대나무는 '어머니'의 지난한 생애를 형상화하고 있으나, 시적 자아와 중첩되어 있다. 병든 대나무와 싱싱한 대나무의 공존공생을 그리면서, 대나무의 속성의 안과 밖처럼, 뼈마디 앙상한 노모의 병든 육신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면서, 죽순을 치고 올라오는 시인의 어린시절과 동일시된다.
 
사실 싱싱한 대나무보다는 병든 대나무(쌍골죽)로 만든 피리 소리가 아름답다. 무릇 시인은 성병(聲病)을 앓는 존재. 이 성병을 깊이 앓은 자만이, 아름다운 혁명의 노래의 시를 짓지 않을까.
 
'대나무'는 산문시이나, 연(聯)이 있다. 마치 두 연은 대나무의 마디와 같이 단절되어 있으나, 마디를 잇고 있어 단절되지 않는 대나무의 형태와 시의 형식을 같이 했다. 
 
'온 몸이 아랫배인 대나무들은 선채로 평생 기도를 올리'는 어머니와 '여물 같은, 쇠죽여물 같은, 약달이는 냄새를 맡으며 저는 죽순처럼 자랐지요'에의 시적 자아의 중첩의 이미지들이 이러한 대나무의 보편적인 상징에의 혁명을 낳는다. 때문에 놀랍도록 신선하다. 시는  보편적 세계에의 전복을 꿈꾸는 낯설게 하기의 도전이며, 진부한 세계의 혁명이다.
 
 
대는 번성하는 푸르름, 번식력이 강하다. 소나무와 비견되는 대나무는 영생과 불변을 상징한다. 대는 절개의 상징이며 충신, 열사, 의사 등에 비유되는 대나무. 속이 텅 비어 있으나 가득찬 대나무와 같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금이야말로 피리 소리가 그리운 시대. 그 옛날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역병이 가라앉으며, 가물 때 비가 오고, 장마는 개며, 바람은 자고, 물결이 평정했다는 만파식적의 피리 소리 너무 그립다.
 
그래도 이 어수선한 세상을 잠재우는 것은, 온 영혼의 몸살을 앓으면서 피처럼 토해 내는, 시누대의 이슬과 같은 시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정록  : 1964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였으며,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는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풋사과의 주름살> 등이 있다.


태그:#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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