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집으로 가는 길에 흰연기가 솟았다. 고민은 시작되었다. 대형 화재일까? 아니면 단순히 쓰레기를 태우는 것일까? 결정의 순간, 답을 미뤘다. 무조건 현장으로 달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흰연기가 솟았다. 고민은 시작되었다. 대형 화재일까? 아니면 단순히 쓰레기를 태우는 것일까? 결정의 순간, 답을 미뤘다. 무조건 현장으로 달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9일, 처음으로 '화재사건'을 취재 보도했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 심장은 두근두근, 당시 화재현장의 기억이 머릿속에 선명하다. 그렇게 마음이 요동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엊그제 화재사건은 베테랑 기자들에게는 아무일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대학생 기자인 내게는 첫 화재 현장 취재였기 때문이고 또 '발로 뛰어야 좋은 기사가 나온다'는 교훈을 얻게 해준 일대 사건 이었기 때문이다.

엊그제(9일)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이렇다. 대부분의 화재사건이 우연적이듯, 내가 그것을 취재하게 된 것 역시 우연에 가까웠다. 그 날 난 대전 문화재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랫만에 바람도 쐴겸 해서 장장 30분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다리가 슬슬 아파와 괜히 걸었다고 툴툴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 진짜 힘들다. 얼른 집에 가서 쉬어야지.'

현장이 가까워지자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온다. 정말 화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든다. 인명피해는 없을까? 나는 제대로 취재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의 편린들을 흩날리며 나는 달렸다.
 현장이 가까워지자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온다. 정말 화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든다. 인명피해는 없을까? 나는 제대로 취재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의 편린들을 흩날리며 나는 달렸다.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사건은 이렇게 고난(?)의 순간에 시작되는 모양이다. 갑자기 500m쯤 떨어져 있는 건물에서 거대한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설마, 불이라도 난 건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이내 설마, 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났나? 라는 나의 예감은 틀린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깜짝 놀라서 달려갔지만 도착해서 보면 논을 태우거나, 쓰레기를 태우는 것이었다. 늘 혹시나?하는 마음은 역시나! 로 끝이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고 혼자 푸념했었다. 그래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엊그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보면서 솔직한 갈등을 했다. 

'몸도 피곤하고, 다리도 힘들고, 이번에도 화재가 아닐텐데… 꼭 가야하나?'

고민은 시작되었다. 대형 화재일까? 아니면 단순히 쓰레기를 태우는 것일까? 마음속에서는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이 생겼다. 하지만 결정의 순간, 답을 미뤘다. 무조건 현장으로 달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번에도 '그냥 쉬면 안될까?'하는 머릿속 생각보다 '가보자'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기자거나, 기자를 꿈꾸는 모든 사람이라면, 어제와 같은 상황에서 당연히 '확인'을 위해 무조건 현장으로 달려갔을 테니까.

드디어 화재현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에선 확신이 든다. "화재 현장이다" 달리면서 취재를 위해 조심스레 카메라를 들었다.
 드디어 화재현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에선 확신이 든다. "화재 현장이다" 달리면서 취재를 위해 조심스레 카메라를 들었다.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내가 아는 <오마이뉴스>의 많은 시민기자들 역시 이런 사건현장이 생길 때는 무조건 달렸다. 그들에게 들은 그 이유는 일종의 '의무'같은 것이었다.

나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물론 속으로 툴툴거리긴 했지만 이 의문스런 광경을  모른척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있는 힘껏 현장으로 달려갔다. 고등학교때 100m 달리기 체력검사 이후, 그렇게 빨리 달린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계속 달려서인지 겨울철인데도 옷이 땀에 젖었다. 

하지만 땀이 문제가 아니었다. 달리는 도중에도 계속 정말 화재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화재면 어떻게 취재하지? 라는 걱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되도록 의문과 걱정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했다. 잠시 후 눈에 보이는 광경이 자연스레 대답해줄 테니까,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무조건 현장으로 달려갔고 잠시 후 연기가 피어오르던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한 곳의 광경은 세상에, 라는 말이 터져나올 정도로 심각했다.

눈앞에서는 TV에서나 보던 거대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불길은 위험스럽게 계속 번졌고 놀란 주민들은 밖으로 뛰쳐나오는 상황이었다. 소방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상황을 주민들에게 물었다. 놀란 주민들은 중언부언 했지만, 불과 몇분 전에 화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만은 공통적으로 일치해서 말해줬다.

화재였다. 길이 연기에 휩싸여 흐릿했다. 연기를 뚫고 앞으로 나갔다.
 화재였다. 길이 연기에 휩싸여 흐릿했다. 연기를 뚫고 앞으로 나갔다.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도착하자마자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한 마을 주민분이 깜짝 놀라며 묻는다. "기자 맞아? 그런데 기자가 어떻게 불나자마자 와?"라는 물음을 던지신다. 나는 "소식 듣고 바로 달려왔어요"라고 답변을 했다. 하지만 '바로'라는 단어를 꺼낸 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조금전만 해도 올까?말까? 툴툴대던 모습이 엿보일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작은 일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불길은 계속 번지고 있었다.

눈앞의 화재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다. 기자에게 있어서 '잔잔한 열정'은 생명과도 같건만 내 마음은 '일렁이는 파도'처럼 흔들렸다. 떨리는 마음을 쉽게 가눌 길이 없었다. 여태껏 만나보지 못한 화재현장과 맞부딪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무거운 긴장속으로 밀어넣어 버린 것 같았다.

화재취재는 어려웠다. 철없는 대학생 기자가 상대하기에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가까이 접근을 해야하는데 하늘 높이 치솟는 불길을 보며 앞으로 나가기란 마음만큼 쉽지 않았다. 주변에 가득 내려앉은 메케한 연기와 붉은 불꽃은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그것들이 주변을 집어삼킬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항상, 내가 입에 달고다니던 '용기'란 단어, 하지만 눈앞의 화재 현장 앞에서 그 '용기'가 멈칫하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예전에 종군기자에 대한 책을 본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조금 생뚱맞은 말이지만 나는 엊그제 화재현장을 다냐와서야 '종군기자'들이 얼마나 용기있는 사람들인지 깨달았다.

자그만 불꽃 앞에서도 긴장하는 나와,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도 일말의 두려움는 종군기자들의 차이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들은 원래부터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일까? 아니 면 두려워서 죽겠는데도 참는 것일까?'라고 혼자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화재현장에서 용기를 내어 사진을 찍는 다는 것,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이번 취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용기'도 숙련되어야 한다는 것, 교훈처럼 가슴에 새겼다.
 화재현장에서 용기를 내어 사진을 찍는 다는 것,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이번 취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용기'도 숙련되어야 한다는 것, 교훈처럼 가슴에 새겼다.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나는 그런 '용기'가 부러웠다. 이깟 작은 화재를 겁내며 제대로 촬영하지도 못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작은 '용기'를 냈다. 한발, 조금 더 한발 앞으로 나아가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쯤 앞으로 나갔을까? 눈앞에서 화재 현장이 펼쳐졌다. 그제서야 나는 미친듯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물론 완벽한 촬영은 아니었지만, 그래고 최대한 열심히 촬영했다. 잠시 후, 소방대원들이 도착해 불길 속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한치의 두려움도 없이 뛰어드는 그들, 멋졌다. 그리고 대단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두려움'을 가슴 한 쪽에 밀어내는 일 같아 보였다. 한 소방대원이 내게 말한다.

"여기, 엄청 위험하거든요. 밖으로 나가세요."
"안돼요. 취재중이에요. 이해 좀 부탁드릴께요."
"안되는데…."
"부탁드릴께요."
"네. 그럼 조심해서 취재해 주세요." 

'취재'라는 이름으로 양해를 구하고 가까이서 현장 취재를 할 수 있었다. 화재를 두려워하지 않는 소방관들의 용기는 대단했다.
 '취재'라는 이름으로 양해를 구하고 가까이서 현장 취재를 할 수 있었다. 화재를 두려워하지 않는 소방관들의 용기는 대단했다.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소방대원들의 재빠른 활약 덕분에 치솟던 불길은 채 30분이 되지 않아 불길이 잡혀갔다. 프로들은 이래서 다른가 보다. 혼자 속으로 감탄했다. 화재의 끝에서, 나는 한 소방대원에게 물었다.

"이정도 화재면 엄청나게 큰 화재였죠?"

소방대원이 살짝 웃음을 짓는다.

"이정도요? '작은규모' 화재에요, 물론 사람이 안다쳤으니 다행이고요."

나는 '엄청나게 큰' 과 '작은규모'사이에서 소방대원과 큰 간극이 있음을 느꼈다. 초짜 대학생기자와 베테랑의 차이가 어마어마했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하기 충분했다. 그런 마음을 간직한 채 취재는 끝이났다. 이제 취재한 내용을 기사로 옮기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화재현장을 빠져나오는데, 마침 멀리서 현장을 지켜보던 한 동네 노인분이 나를 보며 말씀하신다.

"이봐, 기자양반, 허허, 물폭탄이라도 맞았소? 얼굴과 옷이 물에 흠뻑젖었구먼."

그제서야 내 모습을보니 정말 그랬다. 소방관들의 물세례 옆에서 촬영하다보니 그렇게 된것이다. 정말 물에 빠진 생쥐꼴이었다. 하지만 내모습보다 카메라가 걱정되었다. 혹시 카메라에 물이라도 들어가서 사진이 날아갔으면? 눈앞이 캄캄했다. 조심스레 카메라를 살폈다. 천만다행으로 카메라는 무사했다. 조금 렌즈가 흐릿해지긴 했지만 물이 날라오는 순간 카메라를 코트속에 넣고 다녀서 사진과 기계는 무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옷과 얼굴에 물폭탄을 맞았다. 카메라와 사진은? 무엇보다 카메라와 사진이 걱정되었다. 다행히 코트안에 카메라를 숨겨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이런, 옷과 얼굴에 물폭탄을 맞았다. 카메라와 사진은? 무엇보다 카메라와 사진이 걱정되었다. 다행히 코트안에 카메라를 숨겨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돌아오는 길에 나는 기자라는 이름과 취재할 수 있다는 특권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기자는 현장의 생생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기에 일반인에는 허락되지 않는 '사건현장'에 다가갈 수 있다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특권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에 걸맞은 '용기'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화재현장에서 깨달았다. 용기가 없으면 좀 더 정확한 사진, 제대로 된 내용을 전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나는 나의 '용기'가 부족함을 절감했다. 화재현장에서 용기를 내어 사진을 찍는 다는 것,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이번 취재를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용기'도 숙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처럼 가슴에 새겼다.

하지만 스스로 풀이 죽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라도 처음에는 망설이고, 실수할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삼아 본다. 강철 같은 열정은 엄청난 노력과 의지를 통해 차차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렵겠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조금씩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래서인지 마음 한 구석은 따뜻하다.

'적어도 무사히 사진은 지켜냈으니, 기자지망생으로 완전 구제불능은 아니겠지?'라는 은근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그날 오후, 마감시간을 맞추기 위해 집까지 힘껏 뛰었다. 하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갈 때의 '걱정'과는 달리, 돌아오는 마음에서는 '빛'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동안 잊지못할 나의 좌충우돌 화재 현장 취재는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태그:#화재현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잊지말아요. 내일은 어제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저널리스트는 오늘과 함께 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