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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7일(목요일) 설날 오전 10시경, 우리 가족은 집을 나섰다. 부산 근교 언양읍에 있는 자수정 동굴과 온천탕에 목욕하며 하룻밤 새고 오려고….

 

난 맏이기 때문에 미풍양속대로라면 나와 아내는 6일 설 하루 전날 장을 봐야 한다. 그리고 갖가지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장만해야 한다. 그래서 설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내가 준비한 차례상을 차리고 가족 모두 조상님께 절을 올려야 마땅하다. 그러나 난 그렇게 하지 않고야 말았다.

 

내 생각이 잘못된 건지는 몰라도 난 제사나 명절마다 차례상 차린다고 허덕거려야 하는 게 싫다. 이미 세상을 등진 조상 때문에 산 사람이 골병드는 일이라면 그것은 올바른 조상 모심이 아니라 여긴다.

 

오늘날 과연 정성껏 조상님께 예를 다하여 그리고 마음을 다 바쳐 제를 모시는 가정이 몇 가정이나 될까? 형식적인 제사는 백날천날 해봐야 시간 낭비고 돈 낭비 일 뿐이지 않을까? 마음에도 없는 제사나 차례를 미풍양속이라는 이유로 산 사람들이 힘들다면 중단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이미 가신 님을 위해 아무리 산해진미를 차려 놓은들 무슨 소용인가? 부모님 살아생전 잘할 일 아니던가?

 

결혼하고 나서 몇 년 후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산마다 있는 묘가 못마땅하다. 그래서 난 아버님을 화장시켜 드렸다. 마땅히 묻어 드릴 땅도 없거니와 남의 땅 빌려 무덤을 만든들 해마다 드는 비용이 또한 마땅찮았다. 조상님 덕 보고 잘 모시는 분들이 들으면 노할 말이지만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난 아버님 무덤을 만들지 않았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적에 나는 큰집 댁 식구와 아버님 따라 강원도 산골에 있는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묘 벌초를 몇 해 따라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야 마을 옆에 묻었겠지만 지금 그곳을 가려면 이틀이 걸리는 거리다. 도로 가까이 갔어도 거기서부터 길도 없는 산 속을 낫으로 풀과 나무를 자르며 가야 하고, 그러한 산을 두어 개나 넘어가야 무덤을 찾을 수 있었다.

 

세월이 워낙 흘러서인지 무덤인지 평지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으나 다만 묏자리엔 잔디가 듬성듬성 나있어 그 자리가 할아버지 산소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때 난 우리가 왜 그런 쓸데없는 수고를 해야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 다짐했다. 우리 식구는 모두 화장을 하고 무덤을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이미 돌아가신 분들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쓸데없는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다.

 

나 또한 죽으면 자식들에게 그런 쓸데없는 짐을 지우진 않을 것이다. 젯밥을 얻어먹으려고 자식 낳고 기르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난 유언장을 남기고 분명히 써 놓을 것이다.

 

'나 죽으면 절대로 무덤이나 뼈라도 보관하는 일은 하지 말거라.'

'나 죽고 나면 곧바로 그냥 맨몸 천에 둘둘 말아 화장터로 가거라.'

'나 죽거들랑 내 몸을 불태우고 뼛가루 만들어 산이나 들이나 바다나 아무 데나 뿌려라. 그마저도 나라에서 못하게 하거들랑 그냥 뼛가루를 시궁창에 버려라.'

'나 죽더라도 3일장이니 5일장이니 그런 거 하지 마라.'

'나 죽고 나면 절대로 제사나 차례 지내지 마라. 차라리 그 돈과 시간 있으면 가족 나들이나 가서 재밌게 놀다 오너라. 너희들이 즐겁고 행복하면 나도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 또한 해마다 세 차례씩 제사와 차례를 반복해 왔다. 아버님은 추석 일주일 후 돌아가셨기 때문에 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일주일 후 밤 10시 넘어 다시 제사상을 봐야만 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일주일 두 번이나 이미 돌아가신 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뿐 아니었다. 나와 두 살 터울인 남동생네는 이혼한 상태다. 물론 가정사야 복잡 미묘한 일들이 합쳐져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남동생네도 제사나 명절 때마다 적잖은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제수씨는 명절 때마다 골머리가 아파 드러눕곤 하였다. 아마도 우리 집에 의무적으로 와야 하는 게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난 그때 생각했다. 조상님껜 미안하지마는 죽은 이 때문에 생사람 잡겠다 싶었다. 아버님껜 다 같은 자식임에도 맏이에게만 집중된 제사 문화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부담이 큰 제사 비용을 나누어 내는 것도 아니고 버스 기사 하느라고 찾아오는 날도 적었다. 사는 것도 빠듯한데 1년에 3회나 차례상을 봐야만 하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또한 한 번 제사상을 보고 나면 기진맥진하는 아내에게도 미안했다.

 

몸으로 하는 수고야 그냥 가족 음식 차린다고 여기면 된다지만 보이지 않는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큰 문제였다. 아내는 몸이 약한 상태고 한번 제사를 지내고 나면 스트레스로 3일을 몸져눕곤 했었다.

 

내 생각이 틀렸는지 모르지만 난 이게 아니다 싶었다. '왜 이미 돌아가신 분들 때문에 산 사람들이 이리도 고생해야 하지?'

 

난 그런 생각이 들었고 수천 년을 내려오던 미풍양속을 어기기로 마음먹었다. '차라리 제삿상 차릴 비용으로 지금 살아 있는 가족이 즐겁게 지내자', '그것이 곧 조상님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난 그런 생각이 미쳤고 시간과 돈을 가족 나들이에 썼다.

 

언양 자수정 동굴에 가서 여러 가지 구경을 하였다. 눈썰매도 타고 놀이기구도 탔다. 자수정 동굴 옆에 있는 네발 달린 오토바이도 타보았다.

 

그날 저녁엔 가까운 온천단지 내에 있는 큰 온천모텔에서 온천욕을 즐기며 하룻밤 지새웠다. 그렇게 1박 2일을 즐겁게 지내고 저녁 무렵 집에 들어왔다. 나와 아내의 자식이자 조상님들의 손자손녀들인 아이들이 마냥 즐거워했다.

 

집에서 딱딱하게 차례 지내고 무의미한 음식을 즐겁지 않게 먹는 것보다 천백 배 낫지 않는가? 내가 행복해야 조상님도 행복한 거 아닌가? 내가 차례상 때문에 골병든다면 조상님도 기분 좋게 차례상 앞에 앉아 음식이 제대로 넘어가겠는가?

 

난 이제부터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 한다. 차례 한번 지내고 1년 내내 아내랑 서운하게 지내느니 차라리 차례 한번 안 지내고 아내랑 1년 내내 살갑게 지내는 편이 내겐 행복하다. 조상님도 그것을 더 원할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태그:#제사 반대, #차례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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