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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봉을 지나자 여명이 시작된다 

 

 

덕유산 종주는 새벽 5시에 육십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덕유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시간이 조금 지체되어 현장에 도착하니 벌써 5시25분이다. 짐들을 내리고 장비를 착용하고 준비운동을 하고 몇 가지 다짐을 하고 나니 5시 40분이다. 이때까지도 사방은 깜깜하고 육십령 휴게소도 아직 겨울잠에 푹 빠져있다. 육십령은 전북 장수군 장계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을 경계 짓는다.

 

5시45분 산행대장이 백두대간 길로 들어선다. 헤드랜턴 불빛을 따라 앞 사람 뒤만 쫓아가는 양상으로 산행은 이어진다. 1시간동안 정신없이 산을 오르니 하늘에 푸르른 빛이 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저 아래 장계면 지역은 아직도 어둠이 깔린 채 전등불빛만이 반짝인다. 한 5분을 더 가니 할미봉 정상이다. 육십령에서 할미봉까지는 2.3㎞로 예상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린 것 같다.

 

 

이곳 할미봉에서는 가까이 깃대봉이, 그 너머로 백운산, 영취산, 장안산이, 그 너머 왼쪽으로 지리산 줄기가 보인다고 하는데 아직도 어두워 확인할 길이 없다. 할미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우리 일행은 이내 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수직으로 50m는 되어 보이는 암벽에 줄이 매어져 있다. 물론 중간에 발을 밟을 공간도 있고 나무들도 있지만 상당히 어려운 코스임에는 틀림없다.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내려가자니 시간이 꽤나 걸린다. 그래도 7시가 되어 대지에 푸른 여명이 비치면서 산행이 훨씬 수월해진다.

 

7시 15분이 되자 사방으로 산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빛이 이렇게 좋은 줄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라는 글귀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지나온 할미봉 북쪽 경사면에는 눈이 하얗고, 앞으로 진행해 갈 백두대간 능선은 북으로 길게 뻗어있다. 그 능선의 끝에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있는데, 동서 양쪽에 대칭처럼 마주하고 있어 서봉과 동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저 두 봉우리를 넘어야 진정 덕유산 종주가 가능한 것이다. 

 

 

서봉 가는 길이 이렇게 힘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들 백두대간 구간 좌우를 둘러보며 북쪽으로 진행을 하자 푸른 여명도 서서히 사라진다. 할미봉에서 서봉까지 거리는 5㎞로 중간에 함양군 서상면에 있는 덕유교육원으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할미봉에서 이곳 교육원 삼거리까지가 2.9㎞이고, 그곳에서 다시 서봉까지가 2.1㎞이다.

 

 

교육원 삼거리는 봉우리가 아니고 능선이어서 조망은 별로 없다. 이곳에서 다시 10분을 올라 고도가 조금 높아지자 할미봉 너머 남쪽으로 지리산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천왕봉 능선은 분명히 보이고 반야봉과 노고단은 둥글고 뾰족한 봉우리만 보인다. 교육원 삼거리와 서봉 사이에는 신갈나무 군락과 산죽 군락이 주를 이루고 있다. 소나무는 이들 두 수종에 밀려서인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산의 아름다움은 바위와 소나무에서 나오는데, 이곳에는 그것이 없어 산 자체의 아름다움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그러한 밋밋한 산들이 능선으로 연결되어 이루어내는 파노라마는 정말 장관이다. 그리고 이렇게 긴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에는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백두대간 덕유산 산행은 매력이 있다. 그러나 매력 못지않게 힘들고 지루한 구간이 바로 여기다.

 

앞으로 가야할 서봉이 저 멀리 보이는데 그 경사와 굴곡이 만만치 않다. 해발도 천미터 대에서 천오백미터 대로 높아져 갑자기 오백 미터를 올라야 하니 부담이 크다. 말이 오백 미터지 산행에서 오백 미터를 오르려면 보통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그런데 계획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1시간 10분 정도에 올라야 한다. 그러니 가슴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또 서봉으로 가는 길 주위에는 바위들이 많아 속도를 내기도 쉽지 않다.

 

 

힘이 들면 잠시 쉬기도 하면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할미봉, 깃대봉, 영취산,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굽이굽이 흘러가고 그 너머로 푸른 능선이 동에서 서로 이어진다. 동쪽 끝이 천왕봉이고 한 가운데가 반야봉이며 서쪽이 노고단이다. 서봉의 밑에 가까이 갔지만 먼저 오른 사람들이 여전히 작게 보인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여유가 부럽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힘을 내야 저곳에 오를 수 있다. 팽팽한 다리를 끌고 서봉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드디어 서봉 정상이다. 교육원 삼거리에서 서봉까지 걸린 시간을 확인하니 1시간 40분이다. 

 

덕유산 구간 중 서봉처럼 조망이 좋은 곳이 또 있을까?

 

 

덕유산 서봉에서 사방을 돌아보는 조망은 한마디로 장쾌하고 시원하다. 동쪽으로 바로 코앞에는 눈 덮인 남덕유산이 흘립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뚜렷한 산이 없지만 눈을 조금 북쪽으로 돌리면 장수군 계북면의 시루봉이 우뚝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 북동쪽을 바라보니 앞으로 갈 덕유산 종주 능선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갈 길을 생각하니 정말 까마득하다. 그러나 나도 산꾼인지 서봉에 오르느라 1시간 반 동안 고생한 일은 다 잊어버리고 한 번 해봐야겠다는 의욕이 다시 용솟음친다.

 

물을 마시고 잠시 쉬니 원기가 조금은 회복된다. 회원들과 지나온 길에 대해 대화도 나누고 사진도 찍으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휴식을 취한다. 3시간 산행을 했으니 조금 쉴 필요도 있다. 남쪽의 지나온 길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니 함양군 서상면 분지가 바로 아래 보인다. 그 오른쪽으로는 백두대간 줄기가 지리산 종석대까지 남북으로 이어진다. 백두대간은 그곳에서부터 방향을 동으로 틀어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큰 산줄기를 형성한다.

 

  

서봉은 이곳 사람들이 장수덕유산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서봉이 장수군에 속하는 덕유산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앞으로 진행하게 될 남덕유산은 함양군에 속하면서 서봉과 대칭으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동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봉 정상은 아주 공간이 넓어 헬기장으로 쓰이고 있다. 옛날에는 서봉에서 동봉까지 일부 구간이 다리로 연결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서봉에서 계단을 타고 100여 미터를 내려간 다음 다시 남덕유산으로 올라야 한다. 이제 일차 목표는 남덕유산이다.


태그:#육십령, #할미봉, #덕유교육원 삼거리, #서봉, #장수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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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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