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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밥상을 차려 왔는데 어머니가 안 드시겠다고 하면서 자리에 누워 버리셨다. 막 한 밥이어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게 밥이 아주 잘 됐는데 딱 한 술 드시고는 숟가락을 내려 놓으셨다. 난감했다.

떡국을 써시는 어머니
▲ 떡국 썰기 떡국을 써시는 어머니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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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다 먹어라."

자리에 누우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떡국 안 끓여 오고 웬 이따위 밥이냐'하는 심정이신가 싶었던 것이다.

외사촌 형님네서 설 선물을 가져 오셨다.
▲ 떡국 외사촌 형님네서 설 선물을 가져 오셨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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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다 돼서 곧 밥상을 차려 올까 하는 때에 누워 있던 어머니가 약간 역정 섞인 채근을 하셨다.

"어서 나가서 떡국 안 끓여오고 뭐 하노?"
"떡국요? 웬 떡국을…."

난데 없는 떡국 이야기에 밥이 지금 다 됐으니 저녁은 밥을 드시고 떡국 드시고 싶으면 내일 해드리겠다고 했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어쨌든 어머니는 오로지 떡국이 드시고 싶으셨나 보다.

낮에 경남 안의에 사시는 외사촌 형님네 부부가 와서 어머니 드실 한과랑 곶감을 내놓으시면서 설 가래떡도 주셨다. 어머니가 그걸 썰고 싶다고 하셔서 부엌칼을 숫돌에 슥슥 갈아가지고 방에 도마랑 갖다 드렸다. 그런데 두 줄을 써시고 너무 딱딱해 못 썰겠다면서 내일 삼발이 놓고 쪄서 말랑말랑해지면 다시 썰자고 하셔서 그러자고 했었다.

급히 끓이는 떡국
▲ 떡국 급히 끓이는 떡국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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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넘어 갔지만 어머니는 저녁에 떡국 드실 생각을 하면서 떡을 써신 게 분명했다.

그런데 떡국을 안 해 주고 밥을 해 왔으니 기분이 많이 상하신 것 같다. 어머니는 누워 있는데 나 혼자서 밥을 먹을 수는 없는 법. 바로 부엌에 나가 어머니 혼자 드실 떡국을 끓였다. 며칠 전 아내가 손수 만들어서 갖다 준 만두도 하나 넣었다. 멸치 빻아 놓은 것 반 숟갈 넣고 파 썰어 넣고, 김 넣고, 조선 간장으로 간을 맞췄다.

국물 맛이 제법이었다. 떡도 아주 정확한 때에 넣어서 쫄깃한 상태가 되었을 때 퍼왔다. 떡국 끓여 왔다는 말에 어머니가 부스스 일어나셨다.

떡국 끓여 왔다니까 일어나시는 어머니
▲ 어머니 떡국 끓여 왔다니까 일어나시는 어머니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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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밥 그릇은 "너 먹어라" 하면서 내게 밀어 놓으셨다. 나는 밥 그릇이 두 개가 됐다. 어머니는 정신없이 드시다가 갑자기 내 생각이 났나 보다. 큼직한 만두를 건져 내시더니 나에게 주셨다.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 한 말씀도 안 하셨다. "간 잘 맞췄죠?"라고 해도 묵묵부답. "대홍이 형님네 떡국이 쫀득쫀득한 게 맛있죠?"해도 묵묵부답. "내일 또 끓여 드릴게요"해도 묵묵부답.

아까 화 났던 감정을 추스르느라 그러시는 건지, 새삼스레 떡국 끓이느라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보기 좀 안 됐어서 그런 건지 어쨋든 아무 말씀이 없었다. 그러나 국물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다 드셨다.

밥 그릇을 내게 밀어 주셨다.
▲ 떡국 밥 그릇을 내게 밀어 주셨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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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결국 사고(?)를 치셨다.

설거지를 하고 탈수가 된 빨래를 한아름 안고 방에 들어 오는데 어머니가 뒷간에 가시려다가 그만 옷에 오줌을 잔뜩 실수를 하신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학수고대하던 떡국 상을 받았겠다, 오줌 나오는 것도 모른 채 후룩후룩 떡국을 드셨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아들이 들어오기 전에 수습을 하시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옷을 벗어 방바닥을 닦고 옷장에서 내복을 꺼내 입으시려는 순간 내가 방에 들어 온 것이다. "에고, 내가 옷에 오줌 쌀까 봐 물 한 잔도 조심하고 국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는 사람인데…"하시다가 말을 뚝 그치셨다.

차린 밥을 물리고 떼를 써서 (떡)국을 먹고 바로 오줌을 눠 버렸다는 생각을 하신 것이다. 멈칫 하고 나를 쳐다보는 어머니. 손가락질까지 하며 폭소를 터뜨리는 나.

우리 모자는 오줌 묻은 옷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웃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www.cafe.naver.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떡국, #어머니, #치매, #전희식, #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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