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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을 달리다.
▲ 치와와-태평양 연안선 협곡을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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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와와-태평양 연안선의 시작점이자 종착점.
▲ 치와와 역 치와와-태평양 연안선의 시작점이자 종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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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열차 여행의 최고봉은 단연 시베리아 횡단 열차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여타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일리가 있고도 남는 말이다. 누군가는 유럽이나 아프리카 대륙의 열차, 혹은 중국, 인도 등 대륙 열차에 대한 특별한 경험으로 한껏 경험담을 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명물 철도가 있다.

치와와-태평양 연안 횡단열차. 멕시코 산악지역을 가로로 횡단하는 열차다. 출발지에서 종착역까지 자그만치 777페소(한화 약 6만7천원)란다. 가이드북에는 분명 32달러(한화 약 3만원)로 나와 있는데 그새 두 배 이상 가격이 뛰어 올라 창구의 가격표가 뿌옇게 보인다. 더욱이 치와와-태평양 연안 횡단열차라는 칭호가 무색하게 기차는 5량으로 운행된다. 옛 비둘기호 뺨치는 속도에 부대시설이라곤 변변치 않다.

하지만 서양의 여행자들은 특별한 의미의 이 곳을 자주 찾는다. 그랜드 캐년보다 규모가 4배나 큰 쿠퍼 캐년을 볼 수 있으며 산간 지방의 인디오들의 생활 모습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기차여행을 통해서 말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용하는 곳이지만 내가 갔을 땐 비수기라 게스트가 없었다. 치와와 역 바로 맞은 편에 자리잡았다. 가격은 150페소이며 개인 노트북을 휴대할 경우 인터넷 무료.
▲ 유스호스텔 많은 여행자들이 이용하는 곳이지만 내가 갔을 땐 비수기라 게스트가 없었다. 치와와 역 바로 맞은 편에 자리잡았다. 가격은 150페소이며 개인 노트북을 휴대할 경우 인터넷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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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능통한 여행자들의 친구. 내가 오기 전에도 자전거 세계일주를 하는 여행자들이 때때로 다녀갔다고.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은 모두 '크레이지 가이'란다. 여행의 건투를 비는 의미에서 아침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 주인 영어에 능통한 여행자들의 친구. 내가 오기 전에도 자전거 세계일주를 하는 여행자들이 때때로 다녀갔다고.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은 모두 '크레이지 가이'란다. 여행의 건투를 비는 의미에서 아침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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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를 가로지르는 653km의 긴 철도

▲ 치와와-태평양 연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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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최대의 주 치와와에서 캘리포니아 만에 이르는 653km의 길 위엔 대자연의 장엄한 경관과 함께 북부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큰 원주민족인 따라우마라를 볼 수 있다. 처음 철도 부설을 계획하고 나서 험난한 자연환경과 멕시코 혁명에 이은 정부군의 방해 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장장 90년의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이 철로는 치열했던 근대 멕시코 역사의 궤와 함께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철도의 매력은 멕시코에서도 가장 빼어난 경관 중의 한 곳을 기차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 점이 많은 여행자들을 발길을 끌어 모으고 있다. 마음을 풀러 왔기에 역사보다는 경관에 초점을 맞춘 나는 홀가분하게 기차에 탑승했다.

기차는 서서히 치와와 역을 빠져나간다. 여전히 잃어버린 카메라와 캠코더에 대해 진정되지 않은 가슴을 억누른 채 안식을 찾아 헤매는 시선은, 온통 '푸름'으로 치장한 숲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태평양 횡단 열차지만 여행 중 처음으로 길을 개척하지 않고 맡겨진 루트대로 간다는 사실이 내겐 특별한 것이었다.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 홀짝이며 차창 밖을 감상하는 여유가 그립지만, 커피 대신 콜라라도 그 여운이 옅어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비둘기호에서 KTX로 진화하는 철도의 역사 과정 속에서 우리는 '칙칙폭폭'의 리듬감 있는 마찰음을 점점 더 잊어가게 되었다. 레일을 타는 열차의 움직임은 더 세련되고 부드러워졌지만 그 안에 주름진 얼굴로 마주하던 후덕한 사람 냄새는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실로 오랜만에 덜컹거리는 열차에서 난 촌스런 익숙함을 즐기며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목적은 달라도 목적지는 같은 사람들끼리 눈빛을 마주치면 입 꼬리가 올라간 채 가볍게 눈인사하는 존중의 소통이 있는 곳. 출발한 지 십 분도 되지 않아 난 이름만 거창하고 실제는 촌스런 이 기차가 마냥 좋아진다.

산을 달리다.
▲ 치와와-태평양 연안선 산을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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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몇 개의 역을 정차한 뒤 중간 기착지인 끄레엘(creel)역에 도착했다. 여기서 이틀 정도 머물 요량으로 기차 계단에서 사뿐하게 뛰어내렸다. 치와와-태평양 연안 횡단열차가 거치는 역 중에서도 가장 여행지의 내음이 물씬 풍긴다는 이 곳에서 잠시 마음의 묵상을 가져보려 한 것이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소담스런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호흡을 가다듬어 깊게 들이쉰 숨이 상쾌할만큼 나무가 빽빽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알록달록 예쁜 색깔들의 집들이 모여있는 곳. 어쩐지 사람보다 마을에 대한 매력으로 푹 빠질 것 같은 느낌이다.

느끼는 상쾌한 여유.
▲ 기차에서 느끼는 상쾌한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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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한가로운 마을엔 '향기'가 있다?

기차를 타고 온 산골짜기 마을. 정적인 동시에 오밀조밀한 움직임이 있고, 차분함 동시에 서두르지 않는 여유가 있다. 역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숙박할 곳을 정해야했다. 몇몇 호객꾼이 접촉을 시도했으나 이런 경우 발품을 팔면 더 나은 조건의 숙박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웃으며 거절을 했다. 내가 여행 했던 11월은 비수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작은 마을의 제법 많은 숙박 시설들이 비어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이리기웃 저리기웃 초보행색이 들통난 나에게 한 아이가 다가왔다.

"하룻밤에 250페소(한화 약 2만원)에요. 아침과 저녁까지 무료로 제공해 준답니다."
"글쎄. 조금 더 둘러보고."

신중해야했다. 눈에 밟히는 게 숙박시설이라 다 둘러보고 와도 늦지는 않을 성 싶었다.

"그럼 200페소는 어때요?"

단번에 20%가 할인된다. 아이들은 철저히 비즈니스 영어에 길들여져 있다. 조금이라도 다른 얘기를 영어로 하면 못 알아듣는다. 하지만 하룻밤에 얼마인지 부대 서비스는 무엇인지 정도는 서투르게나마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의 눈빛을 보니 마음이 금방 여려졌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여행할 때는 하루하루가 5달러로 연명하는 필사적인 생존이었지만 여유를 가지고 떠나 온 여행에서까지 페이롤에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200페소를 염두해 두고 들어간 숙소는 그러나 룸이 아닌 도미토리의 경우 100페소를 받는단다. 도미토리에 묵고 있는 다른 여행자로부터 우연히 들은 정보다. 역시 여행자는 정보가 생명이다.

100페소 얘기에 이층 침대로 된 도미토리에 묵기로 단번에 결정했다. 아침, 저녁도 물론 포함된 가격이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그리고 외국의 친구들을 사귀는 건 덤이다. 녀석이 100페소짜리 숙소 얘기는 왜 하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이런 여행에 능숙하지 못한 아마추어 여행자의 애환이지 싶다.

역 앞에서 물건을 팔 던 아이들. 수줍어하다 다시 웃으며 사진에 응한다.
▲ 아이들 역 앞에서 물건을 팔 던 아이들. 수줍어하다 다시 웃으며 사진에 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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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정하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선선한 가을 햇살 아래 따뜻한 온기로 품는 것 같은 노란 색의 성당과 바로 맞은 편 왼쪽에 위치한 깔끔한 화이트 톤의 교회를 중심으로 군을 이룬 마을은 열차 여행자들로 경제를 꾸려나가는 관광도시 아니랄까봐 숙박과 기념품 가게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복잡한 스케줄을 염두하지 않아도 되는 한가로운 풍경이다. 거리의 여인네들은 풍부한 색감을 지닌 전통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남자들은 멋진 솜브레로 아래 여유로운 미소를 보낸다. 학교를 파하고 친구들끼리 재잘대는 아이들의 맞은 편엔 가난을 기저로 삼은 또다른 코흘리개 아이들이 어색한 장사꾼이 되어 장신구들을 팔지도 못한 채 여행자 사이를 서성거린다.

말을 타고 가는 동네 남자들. 저 말은 원하면 요금을 내고 탈 수 있다.
▲ 끄레엘마을 말을 타고 가는 동네 남자들. 저 말은 원하면 요금을 내고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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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해왔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그들의 눈을 보며 그들과 교감을 나누는 데에서 의미를 찾았다. 그런데 이곳은 느낌이 다르다. 동네를 산책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히 내딛을 때마다 사람이 아닌 마을을 보게 된다.

가을바람을 타고 오는 인디오들의 냄새까지 느껴질 정도로 마을은 독특한 향기가 있다.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보고서는 부끄러워하진 않지만 사진기를 보고는 그만 수줍어 얼굴을 돌려버린다. 짐짓 웃어 보이며 말없이 사진기를 흔드니 여유를 찾았는지 렌즈를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정겹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는 생각, 게으름이 여유로 다가오는 느낌. 이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속세에 물든 욕망의 한 점 찌꺼기까지 날려버리는 것만 같다. 치와와-태평양 연안 횡단열차를 타고 온 치와와 주 산속 마을 끄레엘에서의 첫 날은 그렇게 잔잔하니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덧붙이는 글 |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입니다.



태그:#세계일주, #자전거, #문종성, #멕시코, #비전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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