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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찾아서

[1월 18일]

베트남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아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호텔로 돌아옵니다. 예정보다 줄어든 홈스테이 일정으로 아쉬움이 큰지 배웅 나온 베트남 친구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여학생들도 눈에 띕니다. 올 7월에 남양주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고합니다.

베트남 전통국수
▲ 쌀국수 베트남 전통국수
ⓒ 이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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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시를 출발하여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로 향합니다. 가는 도중에 적당한 식당이 없어 길가의 허름한 노천식당에서 쌀국수로 점심을 때웠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먹는 쌀국수는 면발이 부드럽고 국물도 구수하지만, 베트남 특유의 향신료가 가미되어 쉽게 그 맛에 친해지기는 어렵습니다.

길가의 집과 가게
▲ 노점 길가의 집과 가게
ⓒ 이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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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으로 뵈는 도로변의 집들은 죄다 무언가를 팔고 있었습니다. 하다못해 과일 몇 알 벌여 놓을 망정 그냥 건성으로 서 있는 집은 없을 지경입니다. 도대체 저 물건들을 누가 다 사가는지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하롱베이로 향하는 관광객의 수가 늘면서 아마 그들을 바라보고 차린 가게들인 듯합니다. 이따금 한글로 ‘휴게소’라고 적힌 간판도 눈에 띕니다.

길가의 건물들은 전면은 좁고, 뒤로 길게 이어진 직육면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집과 집이 벽을 함께 붙이고 이어진 것이나 창문이 없는 벽면도 특이합니다. 창이 크면 안으로 볕이 들어 덥기 때문이라는 안내인의 설명이었습니다.

산이 적은 베트남 지형상 논이나 밭 가운데에는 우리네 납골당 같은 묘지들이 있는데, 웬만한 개인집 같은 묘부터 작은 묘까지 천차만별인 묘지를 보며, 사회주의 베트남도 죽음에는 미치지 못한 듯합니다.

아침 9시 30분경에 빈시를 출발한 버스가 하노이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30분경입니다.
호치민시가 메콩강을 곁에 두고 있다면,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시는 홍강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강의 안쪽(河內)라는 뜻의 하노이는 홍강이 실어와 쌓아 놓은 땅으로 이루어진 도시로, 지금도 중심 도로를 가운데 두고 강쪽으로는 지면이 낮아 수십 년마다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기고 만답니다. 그래서 불과 몇 발 차이지만, 두 지역은 땅값이 세 배 이상 차이가 난답니다. 한강 유역을 개발한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홍강의 범람을 막는 개발공사를 얼마 전부터 한국업체가 맡았다고 합니다.

호치민시에 비해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준다는 하노이는 약 70만 명의 인구가 모여 살고, 150만대의 오토바이가 굴러다닌답니다. 중심가의 오페라 극장 부근의 야경은 아름다운데, 무엇보다 이곳에서 씨클로를 타 보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사람이 앉는 수레를 앞에 매단 자전거를 사람이 움직이는 씨클로는 남국의 여유를 느끼게 합니다. 비록 매연으로 가득 차고, 바로 곁에서 끝없이 울어대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귀를 깨물지만 이국의 시내거리를 한가로이 거닐 수 있는 것은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경적 대신에 울리는 종소리가 참 낭만적이었습니다.

하노이 시내
▲ 씨클로 하노이 시내
ⓒ 이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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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얼마쯤 지나면서, 뒤에서 자전거 패달을 힘을 다해 밟아대는 이를 생각하자니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한때는 나라를 지키겠다고 외세에 맞서 총을 들고 사력을 다해 싸우던 이들이 결국은 달러를 벌기 위해 외국의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현실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체로 평지에 가깝긴 해도 경사진 곳에 이르러서는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어올리게 됩니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하여 그만 도중에 내리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일로 푼돈을 버는 여자가 사진기를 들이대며 ‘스마일!’ 외치는 소리에 어쩔 줄 모르다가 쓴웃음이 되고 말았을 기이한 웃음을 짓고 말았습니다.

섬과 배들
▲ 하롱베이 섬과 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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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같은 섬들의 하롱베이

[1월 19일]

밤 늦게 하노이를 출발하여 하롱베이로 향했습니다. ‘진주’라는 뜻의 하롱베이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태국 관광에 물린 한국 단체관광객들이 으레 들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롱베이에는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식당에서 새치기해서 달걀부침을 두 개씩이나 받아가던 아저씨며, 티톱섬 노점 앞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떼를 지어 춤을 추던 아줌마며, 노무현 때문에 경기 나빠졌다고 연신 투덜거리며 전망대를 오르던 중년 사내들로 왁자지껄합니다. 낯선 이국의 풍경만 아니라면 거의 동네 약수터에 온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층 집 모양으로 된 유람선 주변으로 과일들을 팔려는 장사꾼들의 나룻배가 끈기 있게 따라다닙니다. ‘완 딸라!’를 외치며 유람선 난간에 매달려 매미채 같은 자루 막대에 과일을 달아 올려 줍니다.

하롱베이의 바다에는 파도가 없습니다.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 가운데 꿈처럼 몽롱한 섬들이 도란도란 모여 있습니다. 두 어 시간쯤 배가 나아가니 안개에 휩싸인 크고 작은 섬들이 아스라한 윤곽을 드러내며 뱃전 가까이 다가옵니다. 밥 공기를 엎어 놓은 듯한 크고 작은 섬들이 첩첩이 이어지며 진주처럼 고운 자태를 드러냅니다. 

과일 장사
▲ 나룻배 과일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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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는 가두리 양식장도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다금바리 회를 즉석에서 판답니다. 유람선이 닿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색색의 과일들을 실은 나룻배들이 순식간에 모여듭니다. 그 배들을 내려다보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나룻배마다 어린 아이들을 함께 태우고 있었습니다. 관광객의 동정심을 구하려는 의도라는 의심도 들었지만, 우연의 일치이기를 바랐습니다.

티톱섬에서 내려다본 풍경
▲ 하롱베이 티톱섬에서 내려다본 풍경
ⓒ 이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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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어느 섬에 도착했습니다. 호치민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는 티톱이라는 사람이 섬의 아름다움에 반해, 호치민에게 이 섬을 자신에게 줄 것을 요청했답니다. 호치민은 이 섬은 인민의 것이기 때문에 줄 수는 없고, 그 대신 친구의 이름을 이 섬에 붙여 오래 기억하도록 했답니다. 그래서 ‘티톱’ 섬이라 불린답니다. 티톱 섬은 하롱베이 섬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를 봉우리에 얹고 있습니다.

하노이시내의 극장
▲ 수중인형극 하노이시내의 극장
ⓒ 이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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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하노이로 돌아왔습니다. 자정을 넘어 출발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하노이 시내의 수중인형극장을 찾았습니다. 물 속에 만들어진 무대에서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인형들이 교묘한 놀림으로 움직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1월 20일 자정을 넘긴 시간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빠듯한 일정에 쫓겨 주로 차창 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이 고작이었지만, 호치민시에서 하롱베이까지 이어지는 베트남 남북 종주의 5박 7일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칩니다.

어디론가 끊임없이 줄을 지어 달려가는 거리의 사람들과, 도처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공사 현장들을 보며 베트남은 이제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활기찬 미래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리를 메운 오토바이의 둥둥거리는 엔진 소리처럼 베트남이 달려나가는 곳이 부디 풍요와 평화의 길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제 시작한 양국의 청소년 교류가 지난날 어른들이 남긴 상처들을 넘어 서로를 감싸고 이해하는 작은 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끝없는 홍강의 범람으로 피해를 겪을 때마다 힘을 모아 홍수를 막던 저력이 역사적으로 외세에 끈질기게 맞서 지금의 베트남을 지켜왔다는 말이 여행 말미에 가슴에 남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양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베트남, #하노이시, #하롱베이, #남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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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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