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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입춘(4일), 절기를 의식해서 일까. 유리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유난히 따갑고 눈이 부시다. 이런 날이 며칠만 지속된다면 금방이라도 봄소식이 들려 올 것만 같다.

 

필자는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기에 우리 집 베란다엔 갖가지 화초가 심어진 화분들로 가득하다. 지난해, 겨울 채비를 할 때 상태가 좋지 않은 화초들은 베란다 한 쪽에 치워 놓았었는데 며칠 전 남편이 꽃대가 올라왔다며 난 화분 하나를 거실에 들여 놓았다.

 

 

들여 놓은 지 2~3일이 되었어도 무심했는데 오늘 아침 청소를 하느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디선가 그윽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명품 향수라 해도 흉내 낼 수 없는 향기, 마치 강아지가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쫓듯 집안을 두리번거리며 향기의 근원지를 찾으려 애썼다. 그러기를 몇 분 시선이 멈춘 곳은 다름 아닌 며칠 전 남편이 들여 놓은 난 화분이었다.

 

'설마~' 하며 다가갈수록 매혹적인 향기는 더욱 나를 감쌌다. 코를 바짝 대고 맡아보고 가까이서 관찰도 해 보고 그것도 모자라 카메라에 담았다. 아~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인공적으론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향, 천덕꾸러기처럼 추운 베란다 구석진 곳에 버려뒀었는데….

 

 

어찌하여 주인의 마음과는 달리 꽃을 피우고 향기를 선물하는 것일까~ 한동안 혼자 중얼거리며 향기에 취해 꽃을 들여다봤다. 아무리 뜯어봐도 예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데 어디서 이런 향기를 뿜어내는 것일까? 그저 볼수록 신비하기만 했다.

 

인간도 저렇듯 외모로 판단을 한다면 큰 실수를 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다 할 색깔도 없는 너무도 수수한 꽃, 그 앞에서 난 고매한 인격의 선비를 대하듯 마음까지 겸허해 지는 것 같았다.

 

집안 가득 입춘의 따사로운 햇살이 드리운 오후, 한참을 난향에 취해 있다가 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첫 번째 절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고작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입춘이 되면 대문이나 기둥에 입춘대길이란 글을 써 붙여 봄을 맞는다는 정도였는데….

 

예전엔 입춘이 되면 춘축(春祝)이라 하여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여기저기 붙여 놓고 봄이 옴을 축하했다고 한다. 글귀를 맞춰 두 구절씩 쓴 것을 대련이라 하는데 대련에서 가장 많이 쓰인 글귀는 ‘입춘대길(入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 하여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있고 새해엔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라고 기원을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 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百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길 바랍니다라고 하는 재미있는 글귀를 써 붙이기도 했다니 선조들이 얼마나 멋지고 여유로운 삶을 살았는지 짐작이 간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인들이 '8자'를 좋아해 올림픽 개막식도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로 정한 것처럼 우리 조상들도 '9자'를 좋아해 입춘이 되면 ‘아홉 차리’라 하여 각자 맡은 바에 따라 아홉 번씩 일을 되풀이 하는 풍습이 있었다. 만일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액을 받게 된다고 믿어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해 오고, 노인은 아홉 발의 새끼를 꼬며, 아낙들은 빨래도 아홉 가지를 했고 실을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았다고 한다.

 

그리고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이라 하여 입춘 전날 밤에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해야만이 일 년 내내 무탈하게 지낼 수 있다며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개천에 징검다리를 놓는다거나 밥 한 솥을 지어 다리 밑 거지움막 앞에 놓아두는 등 아름다운 풍습이 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바쁘다는 이유로 웬만한 것은 생략하고 특히나 음력이나 절기 등은 아예 잊고 사는 이들이 많다. 이야기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아름다운 옛 풍습, 다시 되살릴 수는 없다고 해도 언제 어떤 것이 행해졌는지 정도라도 관심을 기울인다며 한결 마음이 넉넉해 질 것 같다. 


태그:#난향, #입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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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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