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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   

 

서울대 법대 건물 뒤편에 있는 '정의의 종' 바로 아래 나무팻말에 붙어있는 문구다. 바로 위쪽에 위치한 100주년 기념관으로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이 강렬한 글귀가 말해주고 있었다.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 모임'이 발족한 취지가 무엇인지를….

 

불과 3-4일만에 80여명의 서울대 교수가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학과 불문, 모든 단과대학의 교수들이 참여했다. 서명을 한 교수를 포함하면 150여명이 넘는다. 서울대 교원은 총 1450여명. 방학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교수 10명중 1명의 교수가 서명을 했다는 것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만하다. 교수모임측은 오는 2월중순까지 300여명의 인사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수-진보-중도 인사들이 광범위하게 참여"

 

교수모임이 주최한 '한반도 대운하, 무엇이 문제인가?' 제하의 토론회가 열리는 대강당의 200여 좌석이 꽉찼다. 계단 복도에도 사람들이 주저앉았고, 많은 사람들이 강당 뒤쪽에 서서 토론회를 지켜봤다. 

 

30여명의 취재진도 몰렸다. 얼마전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명박 운하'를 반대하는 장문의 격문을 써서 파문을 일으켰던 이준구 경제학과 교수도 밝은 표정으로 토론회장으로 들어섰다. 그는 교수모임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재임용에서 탈락했다가 복직한 김민수 미대 교수도 "예상되는 재앙의 수준이 너무 심각해서 발기인으로 참여했다"면서 "말로는 경제살리기라고 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부동산 투기, 또는 개발 목적 이외로는 설명이 안된다"고 개탄했다. 

 

"진보, 보수, 중도를 포괄하고 있다. 이중 많은 교수들은 이 당선자에게 표를 줬다. 그렇지만 대운하는 반대한다고 한다. 이런 분들이 모였다."

 

이날 토론의 사회를 맡은 이현숙 교수(서울대 생명공학부)가 토론회 중간에 마이크를 잡고 한 말이다. 어떤 교수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최영찬 교수(농경제사회학부)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오랫동안 경청하는 모습은 우리학교 행사에서 처음인 것 같다"고 경탄하면서 모임 결성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운하에 대해 국민들은 궁금해한다. 그리고 혼란스러워 한다. 건설, 환경, 문화 등 비교적 전문적인 영역에 대해 국민들이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 그런데 정치권은 무조건 밀어붙이기 하고 있다. 걱정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기 위해 토론부터 하자고 했다. 학자적 양심을 걸고 찬성할지, 반대할지 등에 대해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대운하 문제는 진실과 거짓, 과학과 허구를 가르는 일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교수들의 이런 움직임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운하는 정치적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진실과 거짓의 문제이다. 과학과 허구의 문제이다. 그리고 진정한 국익의 문제이다. 다른 대학들에서도 이런 토론회가 계속 열릴 것이다. 우리는 그 분들과 함께 할 것이다."

 

토론회는 이명박 운하 찬성론자들이 해 온 그간의 거짓말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했다. 첫 발제자는 홍종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홍 교수는 우선 "(이명박운하) 찬성 측 전문가들이 했던 입을 다물기 힘든 발언 소개해드리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홍 교수는 이어 "비난 논리가 아니라 소위 전문가들 논리가 얼마나 설득력이 없고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경제적으로 안맞는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라며 "가령 사업비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유지관리비를 제외한 것은 경제적 논리를 모르는 발언이다, KDI가 발간한 예비타당성 지침서를 보면 항만사업의 경우 통상적으로 공사비의 1.5%를 연간유지관리비로 산정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불과 3년전만해도 운하를 통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려면 1주일에서 열흘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하던 학자가 이제는 말을 바꿔 경부운하를 통해 24시간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서 "이제는 서울에서 바지선을 띄우면 부산항으로 직접가서 '배에서 배(vessel to vessel)' 방식으로 대륙노선을 오가는 대형화물선에 컨테이너를 옮겨실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해운업계의 한 CEO는 이 말을 전하자 '미친 X'라고 말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용효과가 요술방망이?

 

경부운하로 인한 일자리 창출 문제도 곡학아세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홍 교수는 "찬성학자들은 경부운하 통해 삼성의 두배의 고용효과를 나타낼 것 말하는 데 고용유발효과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실제 건설기간 중에만 발생하는 것이기에 삼성그룹의 일자리 창출과 직접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이어 "(고용효과를) 요술방망이처럼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발생하는 효과"라면서 "그 정도의 돈을 투자하면 대동소이하게 다른 사업에서도 나오는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찬성론자들은 경부운하의 비용편익분석에서 건설비 14조원, 즉 100원을 투자하면 230원을 건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유지관리비, 교량 재시공비용, 취수원 이전비, 간접취수비 등을 합치면 40조-50조원의 사업비가 들 것"이라면서 "부풀린 항목과 적게 계산된 비용을 적용하면 100원 투자해서 많으면 28원, 적으면 5원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 비경제적인 사업"이라고 분석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도 '실체가 없는 한반도 대운하' 제하의 발제를 통해 찬성론자들의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성토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찬성론자들은 당초 9m의 수심을 유지하겠다고 하면서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10억 톤의 물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수심을 6m로 하겠다고 바꿨다. 수심이 3m 줄어들었으면 저장할 수 있는 물의 양도 줄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수심을 줄이면서도 여전히 저장할 수 있는 물의 양은 10억톤이라고 우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이다."

 

박 교수는 이어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대기질 개선편익으로 7조원의 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이는 트럭 등 도로운송수단과 비교한 계산"이라면서 "하지만 운하와 대비되는 것은 철도이고 운하는 대기질 개선 측면에서 철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실체없는 운하'를 강조했다. 

 

"경부운하는 실체가 없다.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터널과 SKY라인 사이에서 아직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운하수심도 6m, 9m 오락가락, 아직도 검토 중인 것 같다. 한강과 낙동강 150km구간에 홍수 위험이 엄연히 존재하는 데도 없다고 한다. 운하를 만드면 수질도 더 깨끗해진다고 하고 있다. 10년동안 연구한 100명의 전문가가 있다고 주장하는 데 그들은 말이 없고 정치가들만 나와서 말을 한다."

 

영혼이 없는 자들이 운하를 기획했다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불도저 운하 앞에 무력한 '영혼을 상실한 전문가'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하기도 했다.

 

"영혼을 상실한 전문가라고 말하고 싶다. 정치권에서 ‘운하 시간표’를 짜놓고 공학자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엄금하고 있다. 밀실작업 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형식적 토론이 진행될 것이다. 이렇게 뒀다가는 두고두고 혼란을 맞을 것이고 얼마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영혼이 없는 자들이 운하를 기획했다."

 

박 교수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발제자는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교수모임의 공동대표이기도 한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그는 먼저 "저는 앞에서 발제하신 분들보다 많이 거칠겁니다"라고 말하면서 작심한 듯 포문을 열어 좌중을 휘어잡았다.

 

"(독일의 운하에서 물동량이 급격히 하락하는 도표를 보여주며) 운하의 물동량이 내려가는 것이 다들 보이지요? 경부운하에 실어나를 물건이 있나? (표를 보여주며) 서울에서 나가는 물동량의 87%는 경기도로 향한다. 부산쪽도 경남과 울산으로 82%가 이동한다. 서울과 부산사이에 주고받은 물건이 없다."

 

김 교수는 미국의 예를 들기도 했다.

 

"미국의 운하도시 세인트루이스는 19세기 말까지 제일 큰 중서부 도시였다. 그래서 올림픽도 개최하고 박람회도 개최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없다. 심심한 도시로 전락했다. 대신 시카고는 기차놓고 공항을 만든 뒤 세계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플로리다는 전 반도를 운하로 연결했다. 배가 다닐 수 있도록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습지를 오렌지밭으로 만들었다. 28년동안 공사를 했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자마자 홍수가 나서 2000명이 죽었다. 플로리다의 운하 물은 갈색이다. 비린내가 난다. 지하수를 먹어도 그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복원공사 중이다. 운하를 만드는데 3000억달러를 들였는데, 복원하는 데 10배인 3조달러가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제대로된 복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낙동강과 한강의 모래가 대통령 것인가

 

김 교수는 운하가 홍수를 조절할 수 있다는 찬성론자들의 주장 등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독일의 운하를 보니 너무 아름답게 보이지요. 그런데 미시시피에 가보면 세인트루이스의 경우 도로에 운하벽을 15미터나 쌓아두었다. 이게 몇해 전에 범람했다. 우리는 하상계수가 높아 홍수기에는 엄청나게 수위가 올라간다. 또 갑문의 물을 빼면 홍수가 조절된다고 하는데, 운하의 물은 뺄 수 있는 물이 아니다. 한쪽의 수문을 열어 비우면, 그 위쪽 수문에서 내려온 물이 그대로 채워진다. 계단식이다. 그 물을 다 빼려면 1달이 걸린다. 어떻게 저런 거짓말을 하나. 배의 스크류가 산소공급해서 수질개선된다? 기가 막혀서... 독일에 가니까, 스크류 때문에 밑에 있던 것들이 다 올라와서 구정물이 됩디다.(웃음)"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면 장관쯤 한다, 대통령쯤 되면 엄숙한 거짓말을 한다, 차원 높은 일자리를 만들어야지 일용직 건설업으로 젊은이들을 내몰지 말라"면서 다음과 같이 엄중 경고했다.

 

"낙동강과 한강의 모래가 대통령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반도 운하는 땅값을 올리는 데 수소폭탄급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는 국운 융성의 길이 아니라 국운 쇠퇴의 길이다."

 

홍성태 상지대 문화컨텐츠학과 교수는 '이명박 운하와 문화 대파괴'란 제목으로 발제를 했다.

 

홍 교수는 "굉장히 많은 문제들이 지적이 되었습니다만 이명박 당선인 측에서는 그림을 통해서 홍보를 펼치고 있다"면서 이를 세 단계의 전술로 요약했다.

 

"첫 번째는 그림, 동영상을 제작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아마 당선이 되면 더 심해질 것이다. 청계천 때 참여를 했었는데 말도 안되는 이유로 추진했었다. 취임을 전후해서는 전국을 희한한 그림들로 도배를 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기정사실화 전술인데, 임기 동안 모든 걸 착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당연히 할 것으로 이야기 해 국민들로 하여금 '나라에서 하는 건데 어련하겠냐'며 믿게 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세 번째는 기득권형성 전술이다. 투기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강을 따라 투기꾼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것이 정치와 맞물려서는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새만금에서 이 점을 확인 했는데 이보다 더 큰 돈을 쏟아 부으려고 하고 있다. 호남운하에만 3-4조를 투자하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말도 안되고 망국적인 토건국가 계획이라 할 수 있다."

 

홍 교수는 이어 "운하의 건설은 곧 강의 죽음이고 생명의 죽음"이라면서 "문화적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면 문화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명박 운하는 반문화적인 인식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문화에 대한 몰인식...그게 불도저 운하다

 

"장석효라는 사람은 인수위 운하팀장을 맡고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의 대표를 겸임하고 있는 사람인데 2007년까지는 지하철 본부장을 하고 있던 사람이다. 아주 전형적인 서울시의 토목관료 출신이면서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 많은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말하기를 ‘물 속에 무슨 문화재가 있느냐’라고 이야기 했다. 청계천 때와 똑같은 말을 했다. 청계천 밑의 영조 때 석축을 모두 밀어 없앴다. 이런 식으로 문화재에 대해서, 문화에 대해서 몰인식한 사람들이 마구잡이식으로,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이명박 운하다."

 

이날 토론회는 3시간 30여분에 걸쳐 진행됐다. 대강당에 모인 300여명의 청중들은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숨을 죽이며 전문가들의 발제 내용을 경청했다. 발제 중간중간에 여러 차례에 걸쳐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날 토론의 결론은 이명박 운하란 투기꾼과 개발업자들만을 위한 '카지노 경제'를 만들려는 구상이라는 점, 그래서 학자적 양심을 걸고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수모임은 이런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서울대 학생회관 커피숍에서 토론회를 기사를 쓰다가 나오면서 '정의의 종'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나무 팻말에 적힌 글귀가 법대 건물 뒷켠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듯했다.

 

 

서울대 교수모임 발기인 명단

다음은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모임 발기인 명단이다.

 

공동대표: 김상종(자연대 생명과학부) 김정욱(환경대학원) 송영배(인문대 철학과) 이준구(사회대 경제학부)

 

발기인 : 강명구 계승혁 고철환 구인회 권순만 권태억 김도균 김명환 김민수 김상종 김성희 김세균 김원 김인걸 김정욱 김정희(미대) 김종일 김진수 김춘수 김형숙 노상호 노유선 문중양 박찬욱 박현섭 박흥식 박희병 변창구 변현태 배은경 배철현 백도명 백정화 백창재 송영배 신하순 안삼환 오명석 우희종 유용태 윤순진 윤여창 윤제용 이기영 이돈구 이상찬 이선복 이성중 이애주 이용환(농생명공학부) 이은주 이일하 이준구 이준호 이현숙 이해완 임종태 임현진 임홍배 장경섭 장진성 정근식 정긍식 정용목 정용욱 정원규 조국 조영남 조은수 조흥식 차동하 최갑수 최경호 최권행 최무영 최세영 최영찬 한정숙 홍성욱 황상익 (가나다 순)


태그:#경부운하, #이명박운하, #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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