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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의식 속에 작가 이병주 선생은 권력에 부화뇌동하는 문학인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90년대 언젠가 방송된 MBC 라디오 '격동30년'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들어가기 전, 이병주 선생과 상의 했다는 내용을 말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작품을 썼던 작가가 부도덕한 권력자와 가깝게 지냈다는 것은 나의 상식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문학이나 지식이 권력과 결탁하게 될 때 권력자에게는 지배의 정당성을, 인민 대중에게는 피지배에 대한 순응의 기재로 작동한다. 그래서 권력과 결탁한 지식인보다 우매한 민중이 더 낫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병주 선생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이러한 이유에서 그의 소설에 선듯 마음이 가지 않았다. 지금도 기억난다. <관부연락선>과 <지리산>은 내가 어렸을때 대학을 다니던 동네 형들 집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당시 이병주 선생의 소설은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꽤나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생각의 자유를 억압당했던 그 시기에 공산당을 소설의 주제로 등장 시켰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를 마흔을 넘기고 하다 보니, 나와 타인에 대한 도덕적 판단기준이 관대해 지는 것 같다. 점점 생활인으로서의 삶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필연일까?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이병주 선생의 소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침 한길사에서 이병주전집을 30권으로 정리해서 펴냈다. 그중에서 <지리산>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지리산은 총 7권으로 구성되어있다. 독서습관인지 모르지만 소설은 장편대하 소설이 더 읽기 편하다.

 

꽉 짜여진 단편의 이야기 줄거리를 하나하나 잡아 나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장편대하소설은 이야기의 전개와 구성이 장대한 반면 느슨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나는 무엇보다도 지리산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어떻게 엮어내는지 그 방식이 궁금했다.

 

남북 모두 현대사에서 지리산은 잃어버린 역사요, 우리 모두가 외면해 버린 역사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지리산 파르티잔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는 금기시 해왔다. 한데 지금은 참 좋은 세상이다. 웬만해선 글 쓰는 것 때문에 화를 당할 염려가 별로 없다.

 

그런데 지난날 자유로운 생각을 옥죄던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 민중이 아직도 검은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진 긴 터널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지 못했다는 증거다.

 

소설 <지리산>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불안하다. 파르티잔들의 영웅적인 투쟁에 대한 이야기 보다 금방이라도 산산조각 날 것 같고,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먹구름이 낀 것 같은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소설의 주인공 박태영에게 희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소설 <지리산>은 한국전쟁을 기준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작품의 전반부는 일본제국주의 말기 강제징병을 피해 일본 유학중에 귀국하여 지리산에 은거하면서 벌이는 소극적인 항일투쟁에 관한 이야기다. 후반부는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박태영이 다시 지리산으로 들어가 파르티잔이 되는 이야기이다.

 

지리산 유격대의 투쟁이 러시아, 중국공산당의 투쟁행태를 원용한 것으로 흔히 알고 있는데 필자가 생각하기에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폭압에 대한 소극적인 투쟁의 한 수단으로 채택되었던 것 같다.

 

전라도와 경상도에 걸쳐있는 지리산은 지배자들을 피하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 지리산에서는 오래 전부터 몇몇 이들이 이미 화전으로 산을 일궈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다. 전 국토의 65%가 산으로 둘러 싸여있는 지리적인 여건뿐 만 아니라, 폭압적인 일본제국주의의 압제를 피해 자연적으로 깊은 산속으로 은거하면서 부랑민이 되었던 것이다. 

 

빨치산 투쟁의 기원

 

<지리산>을 읽으면 빨치산의 기원에 대하여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구빨치와 신빨치의  경계가 바로 한국전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박태영은 일본제국주의의 강제징병을 거부하고 지리산에 은신하게 된다. 소문은 바람처럼 번져 같은 처지의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여 들고 하다 보니 소규모 집단이 생겨나고, 이 집단이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산악지역에서 공동생존하기 위하여 규칙을 정하게 되고 결국에는 보광당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었던 것이다.   

 

폭압적인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기습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스스로 무술도 연마하고, 맨몸으로 무장 경찰과의 대결이 무모한 행동임을 자각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결국에는 진주의 갑부 하영근에게 부탁하여 엽총을 구하게 되고, 나중에는 경찰서를 습격하여 무기를 빼앗아 무장하게 된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자 파르티잔들은 자연스럽게 단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로 고민할 때 그 유명한 이현상 선생을 만나게 되고, 박태영을 비롯하여 보광당 간부들 대부분이 후일 공산당 조직원으로 활동 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구빨치산 들이다.

 

도올 선생은 말한다. “이 지구상에서 이데올로기라는 이름하에 우리민족만큼 악랄한 피해를 당한 곳은 없다.” 저 유럽, 게르만족 출신의 카를 맑스와 그의 친구 엥겔스가 발표한 공산당선언으로 출발한 사상이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친 예를 찾아 볼 수 있을까? 아마도 성경을 빼고는 없을 것이다.

 

박태영은 영원한 공산주의자였다. 김숙자와의 사랑도, 가족도 박태영의 사상을 넘어 설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그토록 철두철미한 공산주의 사상을 갖게 한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공산당 내부적으로 그는 반탁과 찬탁의 문제로 견책 처분을 받았으며, 세포조직의 상위자에게 인간적인 모멸을 당하면서도 공산당원이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고통 속에서 다른 당원들보다 더 철저한 공산주의 이론가로, 혁명의 열기로 불타는 전사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이다.

 

박태영은 전쟁과 동시에 전주로 내려가 공산당의 종군기자 신분으로 이태와 만나게 된다. 낙동강 전선에서 더 이상 진전이 없을 때 맥아드가 지휘하는 미군이 주축이된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급격히 반전되자 박태영과 이태는 자연스럽게 지리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박태영에게 공산주의는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신념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박태영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남부군 소속 부대원 모두가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공산주의를 신봉했다. 죽음으로써 신념을 지켰고 그래서 그는 영원한 공산주의자였다.

 

박태영이 그 토록 신봉했던 공산주의는 박태영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 시대의 아픔이요, 또 한편으로 거역할 수 없는 세계사적 흐름이었다. 20세기 초반 중국과 동유럽, 그리고 러시아를 거처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휩쓸었던 공산당 혁명은 요즘 흔히 말하는 시대정신이었던 것이다. 맑스주의는 약소국 민중들에게 열강의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 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박태영은 개인사적으로 보면 불행했다. 그러나 개인은 사회를 떠나서 존재 할 수 없는 법. 세계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 있을 때만이 존재의 가치가 발현되는 것이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수재로 소문나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출세의 길이 보장된 삶을 선택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박태영은 그의 절친한 친구 이규와 대조적인 길을 걸었다. 이규가 진주의 갑부 하영근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그의 딸과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반면, 박태영은 '모든 유학비용을 대 줄 테니 시국이 어수선한 몇 년 동안 외국으로 유학하라'는 하영근의 권유를 뿌리치고 공산당원의 길을 걸은 것이다.

 

개인의 가치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상과 가치, 공산당원으로서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조직의 이상과 가치를 지키는 일은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오늘 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극히 평범한 개인의 희생위에 세워진 역사다.

 

혹자들은 말한다. 이념의 시대는 갔다고. 배불리 먹고사는 문제가 이 시대 최고의 가치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념=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역사적, 사회적 입장을 반영한 사상이나 의식의 체계(금성판 국어대사전)를 말한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선 끊임없이 그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고민하고 그 문제를 극복해 나가고자하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한 사회의 특정한 시점, 그 시대를 대표적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생각의 틀이 필요하고, 형이상학적 가치체계를 끊임없이 생산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념의 논쟁 없이 보다 발전된 사회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인간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 수준만큼 도달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활발한 이념논쟁으로 한 차원 더 높은 이상세계를 구현해야 한다. 이것은 역사발전에 있어서 필연이다.   

 

새로운 이상과 가치의 창출이 없는 사회를 사람다운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먹고 사는 것으로만 만족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고등 동물이기 때문이다.

 

작품속에서 박태영과 그 소속 부대원들의 일상적 삶이란 현상적으로는 비참함 그 자체였다. 전투 중에 현장에서 죽은 군경의 주검에 잽싸게 달려들어 전투복에서부터 내의, 신발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죽은 동료의 입속에 얼어붙은 밥 한 톨 까지 빼앗아 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의 의식은 현현한 도덕성, 불의에 대한 정의감,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무장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면의식은 항상 시퍼런 칼날같이 빛났던 것이다. 지리산이란 작품이 오늘 나에게 깊이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대선 이후 여야의 정치권은 실용을 강조한다. 여기서 실용이란 경제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즉, 편히 잘 먹고 잘사는 사회를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별 없이 국민 누구든지 편안히 잘 먹고 잘사는 사회를 만든 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미 불가능한 전제를 두고 가능할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다시 한번 속이는 일이 될 것이다.

 

오늘날 승자독식의 사회구조, 타인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시대. 온갖 개인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이때. 그리고 돈이 최고의 가치요 수단이 되어 버린 물신풍조가 만연하는 오늘 날. 박태영은 신선하다.


지리산 전7권 세트

이병주 지음, 한길사(2006)


태그:#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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