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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육에 대한 열풍이 거세게 불어 나라가 온통 몸살을 앓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섣부른 정책을 성급하게 내놓았다가 철회하는 웃기는 일이 일어나고, 학원에서는 개구리 제철을 만났다고 울어댄다.

 

이런 와중에 국어교육은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어 논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영어교육만 잘하면 금방 선진국에 진입할 것처럼 요란을 떠니, 제 방의 물건 이름을 우리말로 익혀야 할 유아들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난리다.

 

"국어 교육을 어떻게 했던가"

 

1월 27일, 경춘선 기차표를 사서, 내 좌석을 찾아 갔다. 내 기차표의 자리에는 웬 대학생이 앉아 있고, 옆에 있는 여학생과 재미있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기차표를 대학생에게 내보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하고 바꾸어 앉으시면 안 돼요?"

 

내가 가진 표는 6호차 23번, 그가 가진 표는 2호차 16번이었다. 그의 말을 들어주려면 늙은이가 흔들리는 기차 네 칸을 걸어가야 했다. 자리 바꾸기를 요구하는 말을 이렇게 간단하게 하는 그의 우리말 말하기 능력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편, 내가 중고교에서 40년 넘게 국어를 가르친 퇴직 교사인데 국어 교육을 어떻게 했던가 하는 반성도 해보았다.

 

학교의 국어 교육이 주로 시험지 문제 잘 푸는 데에 역점을 두고, 세상살이에 필요한 인사말 하나 제대로 말하는 생활교육을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세계화시대에 경쟁력이 강한 인재를 육성한다고 영어몰입식 교육을 하자는 발상도, 집토끼는 놓치고 산토기를 잡자는 발상이 아닐까?

 

"기사 아저씨! 여기서 좀 내려 주면 안 돼요?"

 

버스에서 자주 듣는 청소년들의 말이다. 말하기의 기술이 너무 부족하다. 약간 애교 있는 음성으로 정감있게 말을 붙이면 기사님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기사 아저씨! 여기서 내려 주시면 좋겠는데요…."

 

비참한 우리말의 모습, 굳어 있는 언어환경

 

버스나 지하철 등의 안내 방송도 기가 막힌다. 우리말로 도봉역이라 안내 해놓고 영어로는 '또봉'이라 하고 의정부역은 '위이정부'이라 한다. 정확한 우리말 발음으로 안내 방송을 해서 외국인들이 따라 하도록 해야 하는데, 서투른 외국인의 말을 우리가 흉내 내서 안내 하다니! 무의식 중에 우리는 언어 사대주의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니, 우리말의 모습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버스 기사들 중에 타는 손님에게는 "어서 오십시오!", 내리는 손님에게는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일일이 다정하게 인사를 하는 분이 있다. 그런데 손님들은 대개가 묵묵부답 그냥 오르내린다. 기사와 승객 사이에 인간적인 교감이 안 통한다. 정작 인사를 해야 하는 쪽은 승객 쪽일 터인데, 너무나 굳어 있는 언어환경이 아닌가?

 

혼자 사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가끔 전화를 건다. "○○야  감기 안 걸렸느냐, 방학 동안 재미있게 지내느냐, 동생하고 싸우면 안 된다,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맛있는 것 많이 해줄게"  하면, 손자 녀석은  "네, 아니요, 그래요, 몰라요, 안녕히 계세요!"라고 단답형으로 대답만 한다. 할머니가 혼자 어떻게 지내시는지, 복지관에는 잘 나가시는지, 빙판에 넘어지지 않도록 지팡이를 짚고 다니셔야 한다와 같은 배려 있는 인사 한마디 할 줄 모른다.

 

어른이나 젊은이나 대화의 자리에 나가 보면, 남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고, 제 생각, 제 주장만 세우는 분을 자주 본다. 제 생각과 다른 사람의 주장은 다 틀리고, 내 말만 옳다고 우기다가 끝내는 말싸움도 된다. '말하기-듣기'와 같은 언어 생활의 균형 있는 훈련과 습관화가 안된 것이다. 대화의 기술, 언어문화가 저급한 사회를 의미한다.

 

기업체 입사시험에서도 우리말을 유능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조직문화에서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고, 남을 잘 설득하고, 통합하고, 상담도 잘한다는 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영어만이 경쟁력을 높인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학교교육에서 영어교육에 기울이는 관심 못지않게 국어교육 방법을 다양하게 개발할 일이다.

 

영어 쓰나미 공격에 상처 받은 우리말

 

지식 정보화와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영어가 쓰나미처럼 공격해 오고 있다. 우리말은 이 쓰나미에 할퀴고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른다. 우리말은 우리 민족의 혼을 담는 육체와 같다. '김과 장'이라고 해도 괜찮을 사무소 이름을 굳이 영어식으로 써야 멋있어 보이고, 대부분의 시민이 읽을 수도 없고 뜻도 모르는 영문 간판을 달아야 장사가 잘된다고 생각하는 그 의식이 걱정이다.

 

급조된 알파벳 약자로 된 단어가 날로 넘쳐난다. 많은 시민은 말의 뜻도 확실히 모르면서 마치 안갯속을 걸어가듯 살아가고 있다. 언어는 우리가 사고하고, 의식하고, 사물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도구다. 이렇게 모호한 도구로 사고하고, 의식하고, 사물에 의미부여를 하는 생활을 오래 하면 주체성이 없고 혼이 빠진 허수아비가 된다.

 

언론에서는 제발 새로 만든 알파벳 약어에 대해 괄호 안이나 주석란이라도 만들어 번역한 우리말을 병용하기 바란다. 국어교육을 제대로 하면서 영어교육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외국에서 3년간 국제학교에 다닌 손자(12)가 쓴 편지를 보내왔다. "할아버지 길게 좋게 사세요."('할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를 영어식으로 표현한 듯하다.) 귀국해서 국내 학교에 편입하면 뒤떨어진 국어 공부를 어떻게 할지 걱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의협 기자는 올해 만 75세로 지난 1956년 국어교사를 시작해 1997년까지 41년동안 교직 생활을 했다.


태그:#국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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