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잘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무엇을 기준으로 잘 살았다고 판단들을 할까? 돈, 명예, 사랑일까? 이 물음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1년을 사계절로 나누었듯이 우리들에게도 구분은 있으리라고 본다. 그것은 태어나면 자라 죽게 되는 인생이라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자연을 닮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한주가 엄청 짧게 느껴지는 주였다. 그것은 하얗게 쌓인 눈 덮인 설악산이 보고 싶어서였다. 종중이와 둘이 2008년 1월 25일 금요일 저녁 늦게 서울을 출발해 비선대에 도착하니 자정이 다 되었다. 비선대까지 올라가는 길 양 옆은 눈이 수북이 쌓여 내 키를 훨씬 넘기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이 달빛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변한 모습은 그야말로 천상 같았다. 그리고 그 은빛이 연출하는 그림은 뭐라고 표현이 어려웠다. 그 만큼 우리들 혼을 빼 갈 정도로 눈빛에 반사된 풍광들이 아름다웠다. 거기에 앙상한 나무들이 달빛을 받아 실루엣으로 연출하는 풍광은 환상 그 자체였다. 그러니 잠도 오지 않았다.

 

토요일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토막골로 들어서자마자 눈이 많아 걷기가 어려웠다. 그런 기분도 잠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눈들이 연출하는 모양에 감동되어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토막골 자체를 온통 하얗게 물들인 눈들은 나무 가지마다 자기가 원하는 모양들을 만들어 뽐내고 있었다. 다만 이런 모양들은 키 작은 나무들이 연출을 하고 키 큰 나무들은 자기들이 먼저 그런 모양을 들을 했다는 표시만 내고 있었다. 계곡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눈들이 많아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먼저 러셀을 하신 분들이 있었지만 우리들은 그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그런 길을 따라 산을 넘고 넘자 형제폭이 나타났다.

 

웅장했다. 그리고 작년보다 얼음이 더 잘 얼어있었다. 먼저 도착한 충주대 산악부와 강원대 산악부 그리고 서울 산업대 산악부들이 있었다. 우리들은 그들과 다 안면이 있는 사이라 반갑게 인사들을 하고 등반을 시작했다. 종중이의 날렵한 몸짓으로 첫피치 올라가 빌레이를 봐 나도 금방 올라갔다. 그리고 상단 직각에 오버다. 신중한 종중이가 올라가 확보를 한다음 나도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가니 멀리 속초 앞 바다가 보이고 그 앞으로 울산바위 그리고 토막골 만이 간직한 기묘한 형상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풍광에 흠뻑 젖고 난 후 비선대 상장에 도착하니 오후 4시였다.

 

2008년 1월 27일 일요일 일찍 잦은 바위골로 들어가니 토막골 과는 또 다른 눈 풍광을 이루고 있었다. 토막골은 아기자기하다면 잦은 바위골은 웅장했다. 그리고 길도 위험했다. 그런 멋진 눈 풍경에 다들 환성들을 지른다. 그 소리에 놀라 달아난 토끼 발자국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50m 폭포다. 어제 명지대 산악부와 익스트림라이더는 이곳에서 야영을 했단다. 눈 속에 들어가서 말이다.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 야영이었는데….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누었다. 운종과 기훈, 나  종중에 홍엽, 동철이가 한 조가 되어 올라가기 시작을 했다. 50m 폭포라 선등이 올라가 빌레이를 보고 세칸이 올라가 빌레이를 보면 자일이 딱 맞았다. 오십미 폭포를 올라가서 약 200m 걸어서 올라가면 100m 폭포가 나타난다. 그 모습이 웅장했다.

 

선등자들이 올라가는 모습들이 한폭의 동양화 그림이 되어 올라가고 있었다. 종중이는 중간에 끊어서 빌레이를 보았다. 운종인 100m를 바로 직상해 픽스 시켜 놓은 자일에 기훈이 베이직을 이용해 올라갔다. 그리고 바로 빌레이를 봐서 내가 올라갔다. 100m를 바로 올라가는 재미도 참 좋았다.

정상은 환상 그 자체였다. 그런 좋은 풍광을 카메라에 담지를 못했다. 그래서 종중이 핸드폰으로 그 그림을 잡았단다. 100m 하강 스릴 만점이었다. 그런데 100m 하강을 두 줄로 하니 팔에 펌핑이 올 정도로 어려웠다.

 

하산은 개구쟁이가 되어 눈썰매를 타고 내려가기도 하고 눈 속에 빠져 보기도 하면서 즐겁게 하산을 했다. 아마 이런 풍광에 빙벽 등반은 살아가는 동안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본다.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우린 용대리 송어회로 그 즐거움을 마무리했다. 

 

 

 


태그:#형제폭, #100미터 폭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과 사람의 역사는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저도 오마이뉴스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 내 삶의 역사를 만들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