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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양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이 '이명박 운허'와 관련한 글을 보내와 전재합니다. 이 연구원은 최근 다산연구소(소장 박석무)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실학산책'에서 정조때 논란을 빚었던 운하와 관련된 글을 쓴 바 있습니다. [편집자말]
한반도가 생긴 이래  한강-남한강-섬강-달래강-낙동강으로 이어지는 물길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수도 서울에는 한강이, 한반도 곳곳마다 지혜로운 토끼의 배를 관통하는 '생수의 강'이 있어서, 이 땅의 모든 생명이 살아왔던 것이다.

인류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강가였고, 치수(治水) 사업은 언제나 그 땅의 명운을 가르는 중대사업이었다. 그러니 처음에 막연히 한반도 대운하 소식을 들을 때는 치수(治水) 사업의 하나이겠거니 싶어서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도 얼핏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홍수가 져서 수해를 입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가뭄에 물 걱정으로 애가 마르고, 호남과 영동에는 폭설이지고 그 피해로 생계가 막막해지는 일을 연례 행사처럼 되풀이하는 일을 이제 청산하게 되는가 싶었다. 

물이 넘실대는 강줄기... 마음의 기쁨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한복음:7장 38절)

필자는 신앙인은 아니지만 종교 서적 읽기는 좋아하다보니, 기독교 신앙이 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절들도 알게 되고, 그들 가운데는 요한복음 7장 38절 말씀을 이 땅에 대한 축복처럼 여기며 감사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알게 되었다. 필자도 저 구절이 기쁘게 읽힌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이 땅의 유구한 물길이 그려지며, 풍부하고 깨끗한 물이 넘실대는 강줄기가 보이는 듯, 마음에 기쁨이 솟는 것 같았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완벽하게 보완할 기회로 만들지 못하고, 발생한 문제는 외면한 채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키는 이벤트에 골몰하는 지금까지의 우리들. 더 이상 그런 우리들이 아니기를 빌면서, 이제 만성적 홍수와 느닷없는 가뭄에서 벗어나 이 땅의 만년 대계를 이루게 되는 것인가, 21세기에도 물 걱정 없는 나라로 승격되는 것인가, 치수(治水)에 한 단계 상승된 꿈을 실천하는 것인가 싶어 기대감으로 설렜다. 

역사적으로 수로 대신 육로를 선택해왔다, 안전문제 때문에

그런데 지금까지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가 언급한 내용들을 보면서는 오히려 냉담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정권 이벤트를 찾고 있어 보인다. 그들이 진심으로 이 땅의 만년 대계를 기획한다면, 저렇게 조심성 없이 저렇게 사소한 욕심으로 접근할 리가 있는가. 계획도, 점검도 불충분한 채로 무조건 찬성과 반대를 일삼는 것 자체가 한심하지 않은가.

고려조, 조선조, 모두 이 땅의 지형상 물길이 유용함을 잘 알았으면서도 결국은 물길은 물길로 두고, 육로를 선택했다. 고려 때부터 전라도의 조세 물자 수송은 해운(海運), 충청도와 경상도의 물자 수송은 강운(江運)을 해왔다. 고려 때부터 거의 변화가 없었던 그 수로를, 세곡(稅穀)을 집적했던 주요 창고들의 위치를 표시하여 파악해본다. 서울 이남의 경로만 보자.

옛날 조운 경로
 옛날 조운 경로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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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 호남운하 구상도
 경부, 호남운하 구상도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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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쪽 : 강운(江運) : 한양 마포나루-광흥창(황해 전라 충청 경기의 조운선 집결)→동호-용산나루(경상 강원 충청 경기상류 조운선 집결)→행주-염창항(수량이 없어 종종 큰 배가 못다님)→원주 흥원창→충주 덕흥창(후에 가흥창)

조령-문경-상주-대구는 육로 운송

밀양 후조창(후에 삼랑창)→양산 감동창→창원 마산창→사천 통양창(후에 장암창)→진주 가산창

충청․전라 쪽 : 해운(海運) : 전라 남도에서 출발한 배가 서해안으로 태안의 안흥량에 이르러 종종 난파, 침몰함.

충청쪽 : 아산 하양창 (공진창)→서산 영풍창→태안 안흥창 (후에 안민창)

전라쪽 : 임피 진성창→나주 해릉창(영산창)→옥구 군산창→영광 부용창(법성창)→함열 덕성창→영암 장흥창→승주(순천) 해룡창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역사적으로는 길이 험하다는 육로 수송이 선택된 것이다. 그 핵심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강의 수량이 일정치 않아 배를 띄우기 어려운 점. 둘째는 날씨, 특히 강우량에 민감하다는 점. 날씨를 고려해 물자를 운송하자면 당시에는 농번기에 물자 운송을 해야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조운(漕運) 시기를 보면, 경기와 충청 및 황해도는 2월 20일 이전에 발선하여 3월 10일 이내에, 전라도는 3월 15일 이전에 발선하여 4월 10일 이내에, 경상도는 3월 25일 이전에 발선하여 5월 13일 이내에 경강에 도착해서 상납하도록 되어 있었다.

셋째는 사고가 나면 피해가 막심하다는 점. 왜구의 침탈을 비롯해, 이런 저런 이유로 배가 난파되어 인명과 물질에 돌이키기 힘든 피해를 입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결국 한마디로 말하면 안전 문제였던 것이다. 갑오경장 이후 세곡을 현금으로 거두게 되어 조운(漕運)은 저절로 쇠퇴했지만, 수로(水路)를 이용하는 것은 언제나 안전문제가 결부되어 노심초사 애를 태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쉽게 수운(水運)을 포기하진 못했다. 태안(泰安)의 갯벌을 파서 운하를 내자, 김포에 운하를 내자는 등의 논의가 종종 되풀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논의만 되풀이 되고 시행되지는 않았다. 조심스럽고 엄숙하게 이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조선조 현종 9년에 다시 이경휘(李慶徽)는 소를 올려 이렇게 말했다.

"옛말에 '한 가지 이(利)를 일으키는 것은 한 가지 해(害)를 제거하는 것만 못하고, 한 가지 일을 벌이는 것은 한 가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일을 벌여 이익이 있을지라도 오히려 섣불리 벌여서는 안 되는 법인데, 하물며 이로울지 해로울지 자세하지도 않은 마당에 섣불리 여러 사람들을 동원하여 조종(祖宗)이 아직껏 성취하지 못한 공을 노려서야 되겠습니까."

현대 기술이 강우량도 조절한단 말인가?

이경휘의 상소문은 지금도 유효한 것이 아닐까. 강물의 수량도 맘대로 조절할 수 있고, 강우량도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을 기획하든 무슨 걱정일까. 바야흐로 전 지구가, 수자원이 21세기의 핵심 자원임을 명심하고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제방 하나 제대로 보완하지 않아 매년 되풀이하여 수재민을 발생시키고, 홍수 피해가 같은 곳에 되풀이되는 현실에서 조령을 뚫어 운하를 만들고 물자 수송을 기획한다니….

있는 물길도 제대로 관리 못해 홍수를 겪으면서 조령과 문경새재만 뚫어 파면 국가가 발전하는가? 국민과 정치인은 모두 바른 정신일까. 전 국민의 안전 불감증이 말기증세란 말일까. 태안의 유조선 사고로도 아직 자연환경의 문제를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부디 그 누구라도 야심과 욕심으로 일하지 말기를 바란다.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도박하듯 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운하사업이 치수사업의 본질에 충실한다면, 반대하고 싶지 않다. 왜 반대하겠는가? 그것은 이 땅의 새로운 만년 대계를 세우는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치수사업은 안중에 없고 운하 이벤트처럼 되어 전국의 부동산 값이나 들먹이고, 부실 공사로 해마다 엄청난 피해를 증폭시킨다면 누가 반대하지 않겠는가.

왜 시작도 전에 그런 의심부터 하는가 싶지만, 국민은 안다. 온 나라가 부도나는 듯이 휘청대던 IMF 때 당신들이 IT산업 육성해서 나라를 살린다고 퍼돌린 공적 자금, 그 중에 회수 불가능한 공적자금이 몇 십조라고 보도된 충격을 국민이 어찌 잊겠는가. 나라가 위기라고 외치면서 국민들이 금가락지 모아 국채 보상한다고 할 때 정치인들과 행정부가 공적 자금 퍼 돌려서 키운 IT 산업이란 것이 다시금 게임장이 되지 않았던가.

경마, 경륜, 카지노, 로또, 바다이야기…. 소름이 끼친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대표랍시고 국민에게 저지른 그런 상처들을 어찌 쉽게 잊으랴. 그 정치인들이 지금의 정치인들 그대로 아닌가. 부디 권력의 하루살이가 아니라 불나비의 순정만큼이라도 진심을 가지고 있는 당신들이기를 바란다. 최소한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물길은 자손만대의 생명 길임을 잊지 말고, 이제쯤은 부디 국민들을 제대로 무서워하며 의견을 수렴해다오.


태그:#경부운하, #이명박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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