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서울이 고향이지만, 경상도 사투리를, 경상도 사람보다 잘 쓴다. 초등학교시절부터 경상도 지방에 내려와 살았다. '서울내기, 다마내기!'하고 놀려대는 아이들에게 '서울내기 고래 심줄보다 질기니까 씹고 또 씹어 먹자…' 등 '서울은 눈만 감아도 코를 베어 가는 무서운 사람들만 사는 기라…' 등 해서 놀림을 상당히 받았다. 
 
어린 나는 서울내기라서 시쳇말로 '왕따'였다. 해서 요즘 아이들이 영어를 열심히 배우듯이, 경상도 사투리를 배워서, 경상도 토박이 아이보다, 경상도 사투리 구사를 잘했다. 그래서 얻은 '보리 문둥이 서울 가시나야!'란 별명으로 소꿉 친구들에게 불린다. 
 
이제 그 친구들이 모두 서울에 산다. 나보다 '서울 가시나'처럼 서울 토박이 사투리를 잘 구사한다.
  
이 경상도 소꿉 친구들과 가끔 서울역에서 만나자고 약속한다. "왜 하필 서울역에서 만나니?"하고 물으면, "보리 문둥이 서울 가시나가 복잡한 서울 지하철 타고 고생할까 싶어서 그런다" 하며 웃는다.
 
난 서울을 떠나 산 지가 얼마나 된 것일까? 사실 서울을 찾게 되면, 서울은 정말 고향땅이라도 정이 가지 않는 고장이다. 미로보다 복잡한 지하철을 타면, 이 속은 소꿉 친구들이 놀리던 '양파 속 같은 서울'이란 생각이 든다. 서울은 내게는 그리운 곳이 분명하지만,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그리운 곳일수록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 고향이 된 것이다.
 
 
서울이란 곳은 우리나라의 '중앙'을 이르기도 한다. 옛말에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에 보내고, 사람이 태어나면 한양으로 보내라'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변방에 사는 지방 사람들이 그 서러움을 면하기 위해서 후손만큼은 서울 사람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서울은 이래도 저래도 고향이 없는 고장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 대부분은 '서울토박이'가 아니다. 서울 토박이로 서울을 한 번도 떠난 본 적이 없어도, 서울에서 고향의 냄새, 흙냄새, 사람 냄새를 맡기는 어렵다. 나는 가끔 서울이 내 고향이 분명하지만, 나는 고향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서울은 그래서 항상 내게 '슬픈 모가지를 한 짐승' 같다.
 
서울역에서 커피자판기 보셨나요?
 
'월조소남지(越鳥巢南枝 : 남쪽에서 찾아온 새는 언제나 고향에 가까운 가지에 앉아 있다는 뜻)'라는 옛말처럼, '태어난 고향은 설사 묘지일지라도 즐겁다'는 아라비아 속담처럼, 고향에 눈이 펑펑 내리니 기분은 좋다.

그런데 서울로 오는 KTX에서 3000원이나 하는 비싼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나니, 자판기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서울 대합실 구석구석을 살폈다. 이상했다. 부산역 대합실에는 너무 많은데…. 
 
"저어, 아저씨, 커피자판기가 어디 있죠?"

노숙자 같아 보이는 허름한 잠바 입은 아저씨에게 물으니, 아예 대답하지를 않았다. 마침 대합실 가운데에서 서성거리는 한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아주머니, 커피자판기 못 보셨나요?"
"아이고, 시상에나 세울 사람들은 슝악하다카더니 진짜 감네요. 그라니까 우리보고 저 비싼 코피샵에 가서 커피 팔아 달란 말 아닝교? 아이고, 세울 사람들 눈만 감으면 코 베어 가는 곳이라카더니…."
 
"이상해요. 분명히 이 자리에 커피 자판기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희안(이상하다 뜻)한 세울 보리 문둥이들…, 진짜 희안하다카이…."

 
결국 심한 지방사투리를 쓰는 아주머니는 커피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친구와의 약속 시간이 아직 남아서 서울 신역의 위층 아래층을 부산히 돌아다니며 커피자판기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내 눈에는 띄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친구와 만난 약속 장소로 들어갔다.
 
화려한 인테리어의 치장과 눈부신 조명이 반짝이는 서울역 4층 음식점에 앉아서 서울 가시나들이 다 된 소꿉친구들 만나 떠들고, 에스컬레이터 타고 내려오는 데서 그렇게 찾던 숨은 그림 같은 '커피 자판기' 두어 대를 찾았다.
 
"어머, 여기 있었네."
"뭐 말이니?"
"아, 아까 너희들 만나기 전에 커피자판기 찾았는데 진짜 안 보이더라."
"하하 호호…. 니 진짜 보리 문둥이 촌 가시나 다 됐다! 하하 호호."
 
친구들의 말은 누가 요즘 '프림 섞인 몸에 안 좋은 자판기 커피를 마시느냐'는 그런 말뜻이었다. 내 친구들은 모두 경상도 토박이지만, 서울에서 모두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토박이 남편들 만나 서울에서 그 아파트 이름만 대면 '아!' 하는 고급 아파트에서 산다. 
 
서울 사람들이 가만히 눈만 감으면 코 베여 간다고 놀려 대던 친구들이 진짜 서울에 와서 무서운 서울 사람이 된 것인가? 어쨌든 요즘 세상에 능력이 없는 친구보다, 능력이 있는 친구가 좋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꿈의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닐까
 
소꿉친구들이 나를 굳이 배웅하겠다지만, 먼저 돌려보내고 서울 대합실의 벤치에 앉으니 유난히 노숙자, 걸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일까. 기다려도 오지 않는 꿈의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닐까.
 
그 옛날 젊은 엄마는 서울 토박이는 아니었지만, 싹싹하고 상냥한 서울 말씨를 구사하듯이 마음씨가 너무 비단처럼 좋으셔서,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라도 아침마다 찾아오는 걸인들에게 우리 가족 상보다 더 잘 차려 대접하셨다.
 
늬엿늬엿 어둠이 깔려 눈이 내리는 서울…. 역 대합실 벤치에 앉은 노숙자 두어 명이 빵 배급이 시작됐다고, 재촉하는 소리를 듣는다.
 
서울은 정말 사람이 살만한 곳일까. 내 유년의 서울과 내 친구들이 살아가는 그 서울은 두 가닥의 평행선을 가지고, 서울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간다. 뒤로 뒤로 달리는 KTX. 그 종점에는 '병주지정(제2의 고향)'의 부산 바다가 나를 반길 것이다.
 
그러나 '수구초심'이라는 말처럼 나는 분명히 죽을 때는 내 머리를 그리운 서울을 향해 돌릴 것이다.
 
"서울아, 안녕. 진짜 '보리 문둥이, 서울 가시나들아!' 안녕!" 

덧붙이는 글 | 지난 화요일(22일)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서울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