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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앙상한 목련이 꽃눈마다 눈꽃을 이고 서 있다.
▲ 목련 눈 오는 날 앙상한 목련이 꽃눈마다 눈꽃을 이고 서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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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온다.

겨울에 눈이 오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닐진대 연 이틀 소복소복 나뭇가지에 쌓이는 눈을 보니 이미 땅에 떨어져 녹아버리는 눈과 대조적이다.

온 세상을 하얗게 순백 세상으로 만들어 주었던 눈, 그렇게 눈 온다고 좋아하다가도 눈이 녹을 때면 저마다 혀를 찬다.

'그렇게 하얗고 예쁘던 눈이 녹을 때는 어쩌면 저럴꼬?'

그런데, 그게 눈이다.

눈의 삶을 닮은 꽃 생각에 사무실 뒤편에 있는 목련을 바라보았다. 목련의 꽃눈에 눈꽃이 피었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 꽃을 피우고 나면 또 뭐 그리 바쁘다고 허겁지겁 꽃을 떨어뜨리고 그 화사했던 모습을 순식간에 벗어버리고 초라한 흙빛으로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신세가 되는지.

4월, 봄이 무르 익으면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피울 것이다.
▲ 목련 4월, 봄이 무르 익으면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피울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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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은 옥처럼 깨끗하고 소중한 나무라 하여 '옥수'라고 불렸다. 그뿐 아니라 옥 같은 꽃에서 난초의 향기가 난다고 하여 '옥란'이라고도 불렀고, 꽃을 피우는 품새가 난초 같다 하여 '목란'이라고도 불렀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목련'은 나무에 피는 크고 탐스러운 연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류시화는 목련을 보면서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자신은 '삶의 허무'를 키웠다고 했다. 그가 어떤 삶의 허무를 키웠는지 나는 모른다.

돌아보니 그것이 '허무'였다고 고백한다면 남들에게 아무리 멋져 보인다 해도 허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시인의 허무가 범인들의 허무와는 자못 다를 것이라 믿는다.

수 많은 시와 노래의 소재가 되고,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 목련 수 많은 시와 노래의 소재가 되고,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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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옥죌 수 있는 것일까?

세상사에 초연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범인이라 한동안 삶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시인이 느꼈던 그런 '삶의 허무'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무능함을 느끼게 되고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목련은 참 성급한 놈이다.

아예 지난 가을이 되기도 전에(어쩌면 꽃을 그렇게 급하게 떨어낸 것도 어서 꽃눈을 만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꽃눈을 만들고 내년 봄에 피울 꽃을 준비하고 있었다.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제법 송송한 솜털 옷을 입는가 싶더니만 누가 '목필'이 아니랄까 봐 꽃봉오리가 영락없이 붓끝을 닮은 꽃봉오리로 앙상한 나무를 치장하고 있다.

나른한 봄햇살에 이파리와 함께 피어난 산목련
▲ 산목련 나른한 봄햇살에 이파리와 함께 피어난 산목련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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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목련보다는 산에서 가끔 만나는 산목련을 더 좋아한다. 그는 단아하다. 꽃잎도 다른 목련에 비해 작아서 떨어진 후에도 추한 모습(?)이 덜하기 때문이다.

하얀 눈이 쌓인 세상을 경이로움으로 감탄하며 바라보다가도 눈이 녹아 질퍽거리면 이내 더럽다고, 더러운 세상을 흰 눈이 하얗게 덮었다고 극찬을 하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을 바꾼다.

목련을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목련이 화들짝 피어나면 봄이 왔구나, 감탄을 하고 그를 노래하다가도 떨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떨어진 꽃을 추하다고 비난한다.

그러고 보니 목련이나 눈이나 권력이나 다르지 않다. 물론 눈이나 목련은 지극히 인간들의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고, 권력은 속성 자체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제 눈에 맞지 않는다고 헐뜯기만 하거나 권력을 잡았다고 하니 다를 수도 있겠다.

그 날, 그렇게 하늘은 맑았다. 이제 곧 하얀 날개를 떨구고 갈 길을 갈 것이다.
▲ 목련 그 날, 그렇게 하늘은 맑았다. 이제 곧 하얀 날개를 떨구고 갈 길을 갈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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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면서도 자연의 무심함에 섭섭하다. 자연은 그저 자기들만의 순환고리를 따라 돌아갈 뿐 사실 누구를 배려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래서 자연을 보고 '자연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 봄이 오지 말아야 할 것만 같다. 세상은 이런데 어쩌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봄이 오냐고 오는 봄에게 야속하다고 할 것만 같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오는 봄 되돌릴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매일매일 화창한 봄날일 수도 없고, 찬바람 부는 겨울일 수도 없는 것이니 어쩌겠는가?

눈이 여전히 내리고 있다.

눈을 닮은 꽃을 피우는 앙상한 목련나무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겨울 새 한 마리가 앉았다 날아가는 그 길에 나목에 쌓였던 눈이 스르르 떨어져 흙에 기대어 쉰다.


태그:#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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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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