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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미사일방어체제(MD)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논란의 계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국방부가 지난 8일 인수위의 요구로 MD를 보고한 것이 알려지면서 '차기 정부가 MD 참여를 검토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 해군이 세종대왕함 등 이지스함에 북한의 탄도미사일 요격이 가능한 스탠다드 미사일-6(SM-6)을 도입해 장착하는 것을 검토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MD는 적의 미사일을 미사일이나 레이저를 사용해 요격하는 것으로, 미국의 21세기 패권전략의 '키워드'처럼 인식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미국이 상대방의 미사일 보복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패까지 갖게 된다면,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는 더욱 공고해지고 선제공격도 용이해질 수 있다.

 

북한과 이란 등 미국이 공식적인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나라들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등 미국과 잠재적 경쟁 관계에 있는 나라들까지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기 막바지, 서두르는 부시

 

실제로 러시아는 미국의 동유럽 MD 배치 계획 및 미일동맹의 MD 협력 강화에 잇따른 경고를 내보내면서 핵미사일 전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MD를 21세기 최대 위협으로 인식해온 중국은 외교적 반발은 자제하면서도 핵전력 증강 및 위성파괴무기 개발에 나선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구촌에는 '제2의 냉전'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이마에 MD를 새긴 정권"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정도로 MD 구축에 열성을 보여온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고, 중국, 러시아와 인접한 한국에게도 참여를 요구해왔다.

 

김대중 정부 때에는 노골적으로 MD 참여를 요구하고 나서 한미간의 외교적 재앙을 야기한 바 있고, 노무현 정부 때에는 공개적인 참여 요구 수위를 낮추면서도 수원-평택(오산공군기지)-군산에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를 배치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에 MD 작전을 포함시키는 등 그 물적 토대를 구축해왔다.

 

그리고 작년 대선에서 보수 성향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미국 내에서는 한국이 MD에 참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국장을 역임한 빅터 차 등 보수적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이명박 정부가 MD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3월경으로 예정된 이명박-부시 정상회담에서 MD 참여 문제가 핵심 의제가 될 공산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내세울만한 업적이 없는 부시 행정부는 임기 내에 동유럽 MD 배치 결정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미국-일본-한국을 잇는 MD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이를 자신의 업적으로 삼고자 할 것이다. MD 구축은 부시 행정부의 최대 공약 가운데 하나였고, '절대안보'에 한걸음 다가섬으로써 미국 내 보수파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와 <연합뉴스>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수위는 국방부에게 MD 보고를 요청하고, 합참으로부터 추가적인 설명도 들었다고 한다. 이에 앞서 이명박 당선자의 핵심 브레인인 김우상 연세대 교수는 12월말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굳이 MD체제 참여에 문을 닿아 놓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이명박 당선인측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 MD 참여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논란에 이어 MD 문제까지 불거지자, 인수위는 진화에 나섰다. 이동관 대변인이 "남북관계뿐 아니라 이해당사국 관계까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대규모 자원이 소모되기 때문에 충분히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는 게 인수위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성급한 인수위, 한미동맹 남발 부작용 가져올 것

 

잘 알려진 것처럼, 이명박 당선인은 노무현 정부 때 한미동맹이 약화되었다며 한미동맹 강화를 차기 정부의 핵심적인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 기지 재배치 수용 및 이전비용 부담,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곤 세계 최대 규모로 이뤄진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원칙적 수용, 반환기지 환경치유 비용 사실상 부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노무현 정부 때 한미동맹이 약화되었다는 것은 정치적 공세의 성격이 짙다.

 

문제는 이명박 당선인의 '한미동맹 강화론'이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갈 경우,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감당하기 힘든 부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적, 자주적 발언을 즐겨 사용했는데, 이는 한미 양국의 보수진영으로부터 '반미 혐의'를 야기했고, 노 정부가 이러한 혐의를 씻으려다 보니 미국의 요구에 더욱 취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종의 반미적 발언의 '부메랑 효과'인 셈이다.

 

이명박 정부 때에도 맥락은 다르지만 그 결과는 마찬가지로 나타날 우려가 있다. 미국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동기에서 나온 것이든, 국내 보수여론에 호소하기 위한 것이든, '한미동맹 강화'를 자꾸 외치다보면,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미동맹 강화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달라'며, 대북정책 공조 강화, PSI 및 MD 참여, 방위 분담금 증액 등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명박 정부는 좋고 싫음을 떠나 난처한 입장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한미동맹 강화는 립서비스였냐'는 힐난이 나올 수 있고,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 엄청난 국론분열과 국익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선인을 포함한 외교안보정책 담당자들이 '한미동맹 강화'를 남발해선 안되는 이유이다.

 

 

미 대선 앞둔 시점... MD 참여 검토할 필요 없어

 

당연히 한국의 국익은 '돈 먹는 하마'이면서 그 효과는 의심스럽고 대북·대중·대러 관계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MD에 있지 않다.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지속해 전쟁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중국과 러시아와도 우호협력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한국의 핵심적인 국익이다.

 

MD에 참여하게 되면, 그 파장은 외교적, 안보적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반도 안팎에서 군비경쟁이 가열되고 긴장이 고조되면, 막대한 예산 낭비와 함께 '코리아 리스크'는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는 이명박 당선인이 국민에게 약속한 '경제살리기'에도 치명타를 가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MD에 대한 이명박 당선인의 선택은 이른바 '실용 외교'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한미동맹 강화'라는 이념에 포섭되어 MD 참여를 결정하게 되면, 이는 '실용적 수사'를 가장한 '국익 상실의 외교'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미국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차이는 있지만, 누가 되든 부시 행정부만큼 MD에 열성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서둘러 MD 참여를 검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강경파의 입장에서 한국의 MD 불참은 불만스러운 일이겠지만, 미국의 사활적인 이해에 손실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반면, 한국이 MD에 참여하는 것은 한국의 사활적인 이해를 크게 침해하게 된다. 이명박 당선인이 MD 문제를 검토할 때 출발점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덧붙이는 글 | MD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 www.peacekorea.org 참조.
이어질 기사: [심층진단-(하)] 한국형 MD, 정말 미국과 무관할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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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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