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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달력들이 변했다. 우리가 지금껏 사용하던 달력은 일요일이 맨 앞에 놓여져 있으나 올해 나온 몇몇 달력은 월요일이 맨 앞에 위치해 있다. 그리곤 토요일과 일요일을 한 칸에 묶어 놓았다. 달력을 어떻게 만들든 사용하는 사람이 알아서 쓸 일이겠지만, 월요일이 맨 앞에 와 있는 달력은 오랜 관습에 젖어 있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어라? 달력이 이상하네

알고 보니 월요일이 맨 앞에 있는 달력이 집에 2개나 되었다. 하나는 책상 위에 놓는 달력이고, 또 하나는 일기장 역할을 하는 달력이다. 처음엔 요일 배치가 변경된 것도 몰랐다. 일요일이 맨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 머리는 월요일이 맨 앞에 위치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엔 이런 '스트레스 용' 달력이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금방 풀어졌다. 생각컨대 월요일이 앞에 있는 달력은 주 5일제 근무를 하고 있는 직장인들의 생활에 맞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만들어진 달력은 철저하게 직장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을 위한 달력인 셈이다.

달력이 만들어지면서부터 사용하던 것이다.
▲ 기존의 달력. 달력이 만들어지면서부터 사용하던 것이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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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사람 바보 만드는 새로운 달력. 위의 달력과 비교하면 1월 1일의 위치가 다르다.
▲ 월요일이 앞에 위치한 달력. 촌사람 바보 만드는 새로운 달력. 위의 달력과 비교하면 1월 1일의 위치가 다르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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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이 앞에 있는 달력은 나 같이 출근할 곳이 없는 사람이나 주 5일제를 실시하지 않는 중소기업 노동자, 요일이 따로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 건설 잡부, 파트타임 노동장 등은 사용할 이유가 없는 달력인 것이다. 월요일이 앞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였다. 어제 아침의 일이다.

"어머이, 오늘 날도 추운데 장터에 나가지 말지."

한파주의보까지 내렸다는 소식에 어머니가 걱정된 아들이 한 말이다.

"오늘이 장날이냐?"
"응, 오늘이 수요일(17일)이던데."
"그래? 난 장날이 내일인 줄 알고 준비도 안했는데."

어머니께서 손을 펴 음력 날짜를 꼽아보더니 "뭔 장이 나흘만에 돌아오냐?" 했다. 아들은 "나흘?"하며 달력을 다시 살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수요일에다 17일이니 정선 장날이 맞았다.

"어머이, 장날 맞는데?"
"그래? 그러면 나가봐야지."
"아이참, 오늘은 장에 나가지 말라니까."
"지난 번 장에도 눈 때문에 못 나갔는데 또 쉬면 어쩌냐."
"길이 빙판이라 차도 못 댕겨."

아들은 장터에 나가겠다는 어머니와 잠시 옥신각신 했다. 그리곤 "정 가겠다면 택시라도 타고 가던지"하고는 방으로 왔다. 집에서 장터까지는 택시비 1만원. 추위에 떨며 하루를 꼬박 장터에 있다 해도 만원 벌이를 못하는 요즘이고 보면 어머니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촌사람 바보 만드는 새로운 달력

장날이라고 우기긴 했지만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아들은 다시 달력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오늘은 수요일이 맞았다. 달력을 자세히 살피던 아들의 눈에 수요일이라고 알았던 날에 나무 목(木)이라는 한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무슨 달력이 월요일이 맨 앞에 있담. 그렇다면 장날은 내일?'

아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머니께 오늘이 장날이 아니고 내일이 장날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일이 장날인 것 같은데 자꾸만 우기니. 배웠다는 놈이 어찌 저모양일까."
"거참, 이상한 달력 때문에 졸지에 바보되네."

어제 아침, 월요일이 앞 자리에 있는 달력 때문에 아들은 어머니께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새삼 평생 달력 한 번 보지 않고도 장날이나 제사날, 손자들 생일까지 알아내는 어머니의 능력에 놀라워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달력 하나를 아궁이에 집어 넣었다.

촌사람에게 주말과 휴일이 어디 있으며 주 5일제 근무는 가당치도 않다. 그러하니 나 같은 사람에겐 그저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달력이 제격이다. 쉬는 날이 따로 만들어지지 않는 사람에게 월요일로 시작되는 달력을 보는 것은 화요일을 월요일로 착각하게 만드는 일밖엔 하지 않는다.


태그:#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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