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10월 29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6자회담 경제-에너지협력 실무그룹회의를 시작하기 앞서 각국 수석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국 차석대표 한충희 북핵기획단 심의관, 러시아 올렉 다비도프 외무부 아주1국 선임참사관, 북한 현학봉 외무성 미주국 부국장, 한국 임성남 북핵기획단장, 중국 천나이칭 외교부 한반도담당대사, 미국 커트 통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경제담당관, 일본 아카호리 다케시 외무성 한일경협과장.
 지난해 10월 29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6자회담 경제-에너지협력 실무그룹회의를 시작하기 앞서 각국 수석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국 차석대표 한충희 북핵기획단 심의관, 러시아 올렉 다비도프 외무부 아주1국 선임참사관, 북한 현학봉 외무성 미주국 부국장, 한국 임성남 북핵기획단장, 중국 천나이칭 외교부 한반도담당대사, 미국 커트 통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경제담당관, 일본 아카호리 다케시 외무성 한일경협과장.
ⓒ 오마이뉴스 이병선

관련사진보기


북핵 신고와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 제공이 시한을 넘기면서 미국 내에서는 다시 강경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화를 통한 협상이 한계에 봉착한 이상, 다시 미국은 대북 제재와 봉쇄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동북아 전문가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 연구원이 쓴 최근 글은 이러한 기류를 잘 보여준다. 그는 1월 10일 헤리티지 재단의 웹 메모에 게재한 글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대북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링너는 북한이 6자회담 합의를 통해 핵무기 프로그램을 단념·신고·불능화·폐기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인·기만·지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도 6자회담을 보호하기 위해 북한의 부적절한 신고를 은폐하고 있다고 북한과 미국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면서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이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하고 검증을 허용할 때까지 북한에 대한 경제적·외교적 상응 조치 제공을 유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링너는 북한의 비협조가 몸값을 올리기 위한 협상 전술일 수도 있고, 추가적인 핵무기 생산 능력만 포기하고 현재 보유한 핵무기는 계속 갖겠다는 목표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며, 자신은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클링너는 ▲테러지원국 해제 유보 ▲북한에 적절하고 강력한 검증 요구 ▲한국 및 중국에게 대북 지원 및 경제협력을 북핵 문제와 연계시킬 것 요구 ▲한국에게 PSI 참여 요구 ▲한미일 삼각 협력체제 구축 및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호에 따른 대북 제재 부과 ▲2개월 이내에 북한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북핵 문제 유엔 안보리 회부 등을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클링너는 미국이 이러한 정책을 채택해 "불법활동을 통한 북한의 재정 조달을 막고 무조건적인 지원과 기업 활동을 차단하면, 북한은 고립과 경제적 곤궁이냐 아니면 합의이행을 통한 혜택이냐는 근본적인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패한 정책으로의 회귀?

클링너를 비롯한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의 주문은 과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거의 같다. 사진은 부시 미 대통령(자료사진).
 클링너를 비롯한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의 주문은 과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거의 같다. 사진은 부시 미 대통령(자료사진).
ⓒ The Whitehouse

관련사진보기


위와 같은 클링너의 주장은 미국 내 대북 강경 기류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한은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 충족적 예언(self fulfilling prophecy)'에 의해서든, 북한과 미국이 관계정상화를 하는 것 자체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에 의해서든, 북미 및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불만은 북핵 신고가 지연되면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클링너를 비롯한 대북 강경파들의 주문은 과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거의 같다. 그리고 그러한 대북정책은 철저한 실패로 돌아갔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등으로 지목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무시'(malign neglect)로 일관하는 사이에, 북한은 플루토늄 핵 프로그램을 재가동했고, 2006년 10월에는 핵실험까지 단행했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에게 실패한 대북정책으로 되돌아가라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

대북 강경파들은 한국의 정권교체를 기회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대한 오판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 국민이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것은 '경제살리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지, 햇볕정책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대선 이후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명박 당선인이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반수를 넘는다.

더구나 대북 강경파의 주문처럼, 한국이 PSI에 참여하고 대북 지원과 경제협력을 유보하는 등 대북강경책으로 선회하면,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이명박 당선인이 자신의 발등을 찍는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은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휴전선을 사이에 둔 남한, 두만강을 사이에 둔 중국, 압록강을 사이에 둔 러시아 등 세 나라의 입장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북 제재와 봉쇄로 인해 북한에서 급변 사태가 발생하면, 미국은 크게 손해 볼 것이 없지만, 북한과 국경을 맞댄 나라들은 엄청난 안보적, 경제적, 정치적 불안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 중국, 러시아의 불안은 미국 경제와 안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미국의 대북강경파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고난의 행군'에 익숙해 있다. 아무리 미국 주도의 제재와 봉쇄가 강해져도 이에 굴복할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그럭저럭 버티기(muddling through)와 벼랑 끝 전술을 혼합하면서 미국 주도의 대북강경책에 맞서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자료사진).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거듭 강조하지만 클링너를 비롯한 대북강경파들의 새로운 정책 제안은 실패한 정책으로 되돌아가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중대한 목표를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 아니며,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동북아 평화의 중요한 파트너인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일단 전제되어야 할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핵 신고 단계에서 걸림돌이 되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과 시리아 핵개발 지원설은 확인되지 않은 '의혹'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적절한 검증을 통해 확인해야 할 대상이지, 북한이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서 북한과의 핵 협상을 중단해야 할 사유가 되지 않는다.

또 하나는 비록 만족스럽지는 않을 수 있지만, 전환된 부시의 대북정책이 과거의 정책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거 부시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핵 능력 강화와 핵실험을 야기한 중대 이유이다. 반면 부시 행정부가 2007년 들어 북한과의 직접 대화와 '행동 대 행동' 차원에서 주고받기식 협상에 나서면서 영변 핵시설의 폐쇄 및 봉인, 그리고 불능화라는 성과를 낳았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대북강경책을 고수했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중요한 성과이다. 북한에 핵무기가 7~8개 있는 것과 수십 개 있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핵물질도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핵 신고 단계를 슬기롭게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대안은 실효가 없는 대북 제재와 봉쇄가 아니라 북한에게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 의정서 서명·비준 등 강력한 검증체제 수용을 조건으로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를 수용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단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검증이 끝난 다음에 테러지원국 해제, 적성국 교역법 종료, 추가적인 에너지 지원 등 상응 조치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 신고가 접수되는 즉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등 최고위급 관료가 평양을 방문해 이러한 중재안을 협상해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기사 참조)

클링너는 북한을 '말 안 듣는 학생(errant student)'으로 미국을 선생님으로 비유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오늘날의 미국을 선생님이 아니라 '힘센 깡패 학생'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은 뒤늦게나마 북한을 당근과 채찍으로 길들여야 할 말이나 학생이 아닌 동등한 협상 상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미국이 또다시 과거의 오류로 되돌아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북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