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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좀 더 친해지고 또 아들과 나의 자신감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 아들과 칼싸움을 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가끔씩 부자간 칼싸움(?)을 해왔지만 이번부터는 좀 다르게 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아들 녀석이 놀아달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칼을 들고서 칼싸움을 하는 척 했다. 몸은 아들과 칼싸움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으니 칼싸움에 열의가 없게 마련이고 아빠의 이런 무성의한 태도에 실망한 아들은 얼마 되지 않아 칼싸움을 그치고 혼자 놀게 된다.

 

그런데 이번부터는 태도를 확 바꾸기로 했다. 정말로 진지하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칼싸움을 하기고 했다. 진심으로 아들과 하나가 되어 놀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칼을 휘두를 때도 우렁찬 기합소리를 넣기로 했다. 마치 옛날에 무사들이 실전을 치르던 것처럼 진지한 자세로 힘껏 고함을 지르면서 칼싸움을 하기로 했다.

 

이렇듯 아들과의 칼싸움 자세를 바꾸기로 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선 아들과 의 칼싸움에 온 정성을 다함으로써 아들과 그 만큼 더 친해지는 효과를 얻고자 함이었다. 내가 칼싸움에 정성을 쏟은 만큼, 내가 칼싸움에 몰입한 만큼 아들과의 거리가 좁혀질 것 같았다.

 

또한 칼을 내리칠 때 힘껏 고함을 지름으로써 마음속의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자신감도 길러보자는 생각이었다. 아들이나 나나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한 번 큰 소리 쳐볼 기회가 없다. 밖에서는 물론 집안에서도 큰 소리 칠 만한 입장이 못 되는 아들과 나. 우리 부자가 마음 놓고 큰 소리 쳐볼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이 때 뿐이다.


이러한 때 마음껏 소리를 지름으로써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또 그간 억눌렸던 마음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회복해 보자는 계산이다. 그래서 나는 칼을 휘두를 때 마다 의식적으로 ‘이얍, 이얍’ 하고 고함을 내 지른다. 그리고 아들에게도 기얍을 지르라고 주문한다.

 

아들 녀석은 칼싸움을 곧잘 한다. 태권도학원에 다니면서 배운 태권도 실력을 칼싸움에 응용한 것인지 아니면 어린이집에서 친구들하고 칼싸움을 많이 하는 것인지 실력이 상당하다. 칼을 위에서 아래로 계속 내리지르면서 머리와 몸통을 공격하다가 어느 새 다리를 공격해 온다. 그러면 나는 손 한 번 제대로 못 써보고 당하고 만다. 일부러 져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실력 차이로 아들에게 지고 만다. 어제 저녁에는 아들에게 완패를 당했다.

 

오늘 저녁에는 내가 먼저 아들에게 칼싸움을 하자고 했다. 낮부터 줄곧 이 시간을 기다려왔다. 내가 목에 힘주어 큰 소리 낼 수 있는 시간. 이 시간이 어서 오기를 기다려왔다. 아들의 칼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칼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파워레인져’ 칼이다.

 

아빠인 나의 칼은 신문지를 둘둘 말아서 만든 종이칼이다. 신문지를 둥글게 만 다음 박스테이프로 고정시켜서 만든 칼이다.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들과 나는 각자의 칼을 들고 비좁은 거실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검무를 펼친다. 오늘은 내가 작심하고 덤빈 결과 내가 근소한 차이로 아들을 이겼다.

 

저녁 먹으라는 아내의 말에 칼을 내려놓으면서 아들에게 한 마디 했다.

 

“강민아, 오늘은 아빠가 이겼네. 내일은 더 힘내서 강민이가 아빠를 이겨야 해.”

“응, 알았어.”


아들과 함께 밥상에 앉으면서 다짐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억눌린 마음상태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회복하겠노라고. 그리고 내 아들은 반드시 자신감 있는 남자로 키우겠노라고.


태그:#칼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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