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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공부만으로 대학갈 수 있게 한다고요? 대학들이 벌써 교과서 공부로는 어림도 없는 논술 문제를 내고 있잖아요. 대학에는 입시 자율권 주고, 교과서 공부만으로 대학을 가게 한다니…."

 

'학교 만족 두배, 사교육 절반'을 목표로 교육 정책을 내놓은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인 한 네티즌의 냉담한 반응이다. 아이디 'kychoi7476'은 지난 13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댓글을 통해 "이 당선인의 교육 정책은 목표와 수단이 잘못됐다"며 "교육이 불도저로 땅파는 일인 줄 아느냐"라고 꼬집었다.

 

이 당선인은 "교과서 공부만으로 대학 갈 수 있게 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지만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차기 정부의 교육정책 방향을 미리 내다본 대학별 논술 강화 조짐으로 고교생들은 벌써부터 사교육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 100개 신설 방침도 그 의도와 상관없이 결국 입시경쟁의 출발 시점을 앞당길 뿐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14일 이 당선인의 신년 기자회견을 지켜본 교육 당사자들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입을 모았다.

 

이명박 당선인 일성 "학생, 학부모 부담 줄이겠다"

 

이명박 당선인은 연일 교육 정책에 대한 확고함을 내비쳤다. 이 당선인은 1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학부모가 무릎을 칠만 한 정책을 만들라"고 주문했고,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학생과 학부모들을 향해 "과거보다 수월한 제도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이 당선인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이 입시 고통을 줄이고, 공교육을 살려서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대학은 잠재 능력을 가진 학생을 뽑도록 하겠다"며 "믿어도 된다"고 호소했다.

 

이 당선인은 최근 대학들의 본고사 부활 움직임에 대해 "입시자율을 줘도 대학들이 스스로 본고사를 치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수능 등급제를 취소하면 변별력이 생기고, 내신과 수능을 반영해서 굳이 논술을 어렵게 할 필요가 없다"며 "대학에 자율을 주면 학생들 부담은 오히려 줄어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사교육비 폭등 우려에 대해서는 "다양한 교육을 제대로 받겠다는 교육 수요자가 있음에도 정부가 이를 막아서 생긴 것"이라고 반박했다.

 

'자율형 사립고' 계획을 두고 "전국 사립학교 중 6개를 자립형 사립고로 만들었고, 거기에 들어가려다 보니 수많은 학생들이 과외를 받았다"며 "자율형 사립학교는 농촌 지역이나 중소도시에 설립해서 그 지역 학생을 우선 뽑고, 모자라면 다른 지역에서 학생을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전날 있었던 인수위의 1차 국정과제 업무보고에서도 "막연하게 본고사를 폐지한다는 식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봤을 때 '교과서만 봐도,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도 대학을 갈 수 있겠다'고 무릎을 칠 수 있는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 달라"고 강조한 바 있다.

 

교육 현장의 원성 "사교육비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하지만 이 당선인의 '확신'과 반대로 교육 현장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2008년 대입에서 서울대·고대 등 주요 대학들이 사실상 '본고사' 수준에 가까운, 대폭 강화된 논술문제를 출제한 것이 알려지자 고2 이하 고교생들은 '논술 과외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 등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현장 전문가들은 "계층 간 갈등만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서강대, 이화여대 등이 이날 "수능 등급제를 폐지하면 논술을 보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수능 등급제가 도입되기 이전에도 고교 등급제, 수능 비교 내신제 등으로 정부의 입시 가이드 라인을 흔들었던 대학들에 대해 "수능 점수만으로 학생을 뽑지 않을 것"이라는 교육 당사자들의 불신은 크다.   

 

게다가 인수위는 "대입 3단계 자율화를 전제로 2월초 수능 등급제 개선과 대입 업무의 대학협의체로의 이관을 위한 제도정비에 본격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고, 차기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인 손병두 서강대 총장 또한 "논술 가이드라인부터 없애겠다"고 천명한 상태. 

 

김정명신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회장은 "대학 자율로 하면 사교육이 준다고 생각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교육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진단과 해법이 다르다"고 말했다.

 

김정 회장은 "논술 시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강남 학원들은 리모델링까지 하면서 늘어난 수강생을 받는 등 '이명박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현장 교사가 '서울대 논술 시험에 50점을 맞았다'고 말할 정도로 학교에서 논술 대비가 안 되는 상황인데, 어떻게 학교 공부만으로 논술을 준비하라는 것이냐"고 질타했다.

 

김정 회장은 "교육 문제를 입시제도를 손보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는 틀렸다"며 "정책과 함께 학벌, 학력 등을 철폐하고 중고교 입시 완화를 위한 정책의 목표가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만중 전국교원노동조합 정책실장은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의 실효성을 지적했다. 한 실장은 "자율형 사립고, 기숙형 공립고 등 전국에 300여 개 특성화 고교 설립으로 사교육 과열이 해결될 것으로 보면 안 된다"며 "비싼 교육비 등으로 인해 계층 간 갈등만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당 지역 학생을 우선으로 뽑고, 학생 중 30%에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교육 복지 정책에 대해서 한 실장은 "현행 '자립형 사립고'의 법인 전입금을 낮추는 대신에 그 차액을 정부의 세금으로 일부 계층의 귀족학교를 운영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끼워넣기' 식으로 입학하게 된 농어촌 지역과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도 위화감을 조성해 되레 '고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태그:#교육 정책 ,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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