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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과 금오산 그리고 고위산의 관계

남산 일원이 세계유산임을 알리는 설명판
 남산 일원이 세계유산임을 알리는 설명판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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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쪽에는 토함산(土含山: 745m)이 있고 서쪽에는 단석산(斷石山: 827m)이 있으며 남쪽에는 남산(南山: 494m)이 있다. 토함산은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유명하고, 단석산은 김유신이 신묘한 검술로 바위를 잘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남산은 경주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 평범한 이름이 붙은 것 같다. 그러나 남산은 이름처럼 그렇게 평범하지 않으며, 신라 500년 불교유산이 산재한 문화재의 보고다.

용장사 봉우리에서 바라 본 고위산 정상: 멀리 보이는 산
 용장사 봉우리에서 바라 본 고위산 정상: 멀리 보이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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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과 관련해서는 현재 금오산과 고위산이라는 세 가지 이름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이들 세 산을 명확히 구분하자면, 남산은 경주 남쪽에 있는 산 전체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이 남산에 높은 봉우리가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전체 산의 가운데쯤에 솟아있는 금오산이고, 다른 하나가 남쪽의 끝자락에 솟아있는 고위산이다.

그럼 이들 산 이름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김부식의 <삼국사기> 잡지(雜志) 지리편에 보면 박혁거세 거서간이 나라 이름을 서야벌, 사라 또는 사로라 하고 궁성을 쌓은 후 금성(金城)이라 불렀다. 이후 왕들이 추가로 성을 쌓는데, 금성 동남쪽에 월성, 월성 북쪽에 만월성, 월성 동쪽에 명활성, 월성 남쪽에 남산성(南山城)이 축성된다. 바로 여기서 월성 남쪽의 남산에 쌓은 성이 남산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산이라는 명칭이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약수골 입구에서 바라 본 금오산: 아주 평범해 보인다.
 약수골 입구에서 바라 본 금오산: 아주 평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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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금오산이라는 명칭이 나온다.

“금오산(金鰲山)【본부(本府: 경주부)의 남서쪽에 있다. 신라 시조의 궁전(宮殿) 유기(遺基)가 있는데, 후인(後人)이 그 터에 창림사(昌林寺)를 세웠다. 지금은 없어졌다.】”

이 기록에 의하면 금오산에 궁궐터가 있었고 그 터에 창림사가 세워졌다는 것이다.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 나정이고 6부 촌장을 모시는 사당이 양산재이며, 그 남쪽으로 창림사가 위치하고 있으니 금오산은 현재의 남산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더욱이 세종 때부터 성종 때까지 살았던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이곳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 은거하면서 <금오신화(金鰲新話)>라는 한문소설을 쓴 걸 보면 당시 이 산의 이름은 금오산이었을 것이다. 김시습이 이곳 금오산에서 쓴 ‘금오신화’라는 시를 통해 우리는 매월당의 당시 심정을 유추할 수 있다.

부여 무량사에 있는 김시습 영정
 부여 무량사에 있는 김시습 영정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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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題金鰲新話)

나직한 집의 푸른 담요에 따스한 기운 넉넉한데     矮屋靑氈暖有餘
창에 가득한 매화 그림자에 달이 처음 밝았다.       滿窓梅影月明初
등불을 돋우고 긴 밤에 향을 사르고 앉아              挑燈永夜焚香坐
한가히 인간에서 보지 못한 글을 짓는다.              閑著人間不見書
옥당의 붓과 글에는 이미 마음 없거니                  玉堂揮翰已無心
소나무 창 앞에 단정히 앉았는데 밤은 한창 깊었다.端坐松窓夜正深
향관과 동병과 오궤는 고요한데                          香鑵銅甁烏几靜
풍류가 있고 기이한 이야기를 낱낱이 찾아본다.     風流奇話細搜尋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경주와 남산 그리고 금오산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경주와 남산 그리고 금오산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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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는 금오산과 남산이라는 이름이 공존하고 있다. 지도에 보면 옛날 표기 방법에 따라 산줄기를 그리고 왼쪽에는 금오산, 정상에 좀 더 가까운 오른쪽에는 남산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그렇다면 김정호가 살던 1800년대에는 금오산과 남산이 공존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이후 언제부터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산 전체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남산이 사용되고, 중간의 468m 봉우리가 금오봉, 남쪽의 494m 봉우리가 고위봉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고위봉을 수리봉 또는 천룡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리봉이라는 이름은 가장 높고 빼어나다는 뜻에서 붙여졌을 것이고, 천룡산은 정상의 서쪽 사면에 위치한 천룡바위와 천룡사라는 절 때문에 붙여졌을 것이다. 현재 울산에 살고 있는 정일근 시인은 남산을 노래한 ‘사랑의 약속’에서 “경주 남산 수리봉에 올라 하늘을 보라”고 외치고 있다.
    
남산의 현재

뜬바위 아래로 기린천이 보인다.
 뜬바위 아래로 기린천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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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은 해목령(蟹目嶺: 281m)과 금오봉 그리고 고위산을 잇는 남북 능선을 중심으로 동쪽 사면과 서쪽 사면으로 나누어진다. 동쪽 사면과 서쪽 사면에는 각각 16개 정도의 큰 골짜기가 있는데, 이들은 동쪽으로 흘러 문천(蚊川)에 합류하고 서쪽으로 흘러 기린천(麒麟川)에 합류한다. 이들 하천 중 기린천의 폭이 넓고 수량이 많아 형산강으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이들 두 하천은 경주 시내를 서쪽으로 우회한 다음 포항쪽으로 흘러 동해로 빠진다.

남산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려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4가지 코스로 답사를 해야 한다. 이것은 경주시나 경주 남산연구소 등에서 만든 답사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 남산은 동남산과 서남산으로 크게 나누어지고 이틀을 강행군하면 남산의 문화유산 상당부분을 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남산 완전정복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한번 시도해보는 것은 가치가 있다.

동남산 답사 지도
 동남산 답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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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산은 문천가에 있는 부처골에서부터 남산리를 지나 고위산에 이르는 지역이다. 그러나 보통 문화유산 답사는 고위산을 넘어 천룡사까지 이어진다. 서남산은 도상거리가 동남산에 비해 짧지만 문화유산이 좀 더 가까이 오밀조밀 분포되어 있어 답사에서 훨씬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대개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나정에서 시작, 창림사지, 포석정을 거쳐 배리 삼존불과 삼릉을 본 다음 금오산에 오르는 것이 좋다. 특히 삼릉에서 금오산 정상에 오르는 길에는 문화유산이 가장 많아 남산의 최고 관람 코스다.

그리고 금오산 정상에서 남쪽에 있는 용장사지로 내려가면서 세 개의 보물을 한꺼번에 보면 된다. 용장사지는 한 곳에 세 개의 보물이 모여 있는 아주 전망이 좋은 장소이다. 특히 용장사 삼층석탑은 남산 최고의 전망 포인트로 동서남북으로 탁 트인 조망을 보여준다. 남쪽으로 계곡 건너편에 고위산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저 멀리 토함산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 너머 가까이 망산이 보이고 더 멀리 낙남정맥의 한 줄기인 단석산이 보인다.

대연화대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토함산 줄기
 대연화대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토함산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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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산의 서쪽에는 남북으로 흐르는 기린천을 따라 두 개의 도로가 나 있는데, 하나가 기린천 서쪽의 경부고속도로이고 다른 하나가 기린천 동쪽의 35번 국도이다. 35번 국도는 경주에서 언양과 양산을 거쳐 부산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남산의 동쪽에 있는 문천 바깥으로는 경주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와 동해남부선 철도가 지나간다.

더욱이 남산은 남쪽으로 계속 산줄기가 이어져 마석산으로 해서 그 유명한 치술령(765m)까지 이어진다. 치술령은 현재 경주시와 울주군의 경계일 뿐 아니라 경상북도와 울산광역시의 시도간 경계이다.

덧붙이는 글 | 15회로 예정된 경주 남산 연재는 문화유산과 그것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 이곳을 거쳐간 역사 속의 인물들, 현재 남산이 가지고 있는 의미 등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이다. 이번 글은 그 두번째로 남산이 가지는 역사성을 다뤘다.



태그:#남산 , #금오산, #고위산, #토함산, #단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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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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