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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책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책이 나왔나?' 슬그머니 김주완 부장 옆자리로 갔다. "부장님! 저도 한 권 주이소!" "응, 알았다."

 

책 앞날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메모! '민병욱 후배님께. 근성 있는 기자 정의로운 기자! 2007. 12. 6 김주완 드림'. 공짜로 그렇게 또 한 권의 책을 얻는가 싶었다. 그런데 느닷없는 문자메시지! '그냥 주는 거 아니다. 읽고 서평 써라!'

 

'에잇, 선배가 책을 냈는데, 서평쯤이야.' "뭐, 올해 안에는 쓰도록 할게요"라고 받았다.


한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지난 4일 저녁, '일주일 마감 연장'을 요청해야 했다. 연말이라 이런저런 술자리가 많았다. 노동조합 회보 마감 등 '결산'할 일도 밀려 있었고. 솔직히 '여태껏 한 번쯤 읽어본 글이니 뭐 쉽게 읽히겠지'라는 건방진 마음도 없지 않았다.

 

애초 새해에는 <녹색평론사>(2006년 7월부터 후원회원이다)에서 나온 여러 단행본을 읽을 참이었다. 내 비록 생태주의자는 아닐지언정 유일하게 지구를 마음대로 파괴하는 한 사람으로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려 했던 것이다. 하여간 계획이 어긋난 건 전적으로 내가 게으른 탓이다.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6일은 모처럼 일요일 휴무였다. 작정하고 경남대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반드시 다 읽고 도서관을 빠져나오리라!' 거듭 다짐을 하면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쉽게 읽혔다. 쉬엄쉬엄, 8시간 만에 다 읽었다. 책을 넘겨받은 지 꼭 한 달만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한 번 정도는 본 내용이었고, 더구나 밥 자리, 술자리에서 주로 들었던 이야기 관련 글이 많았다.

 

김 부장은 종종 자신이 쓸 칼럼 차례가 되면 밥 먹는 자리나 술자리에서 후배들에게 미리 칼럼의 주제를 풀어놓는다. 주로 자신의 논리를 후배들에게 소개하는데, 후배들이 좋은 의견을 내면 적절히 반영도 해준다. 반대로 후배들이 뭘 잘 모르고 있거나 관점이 '삐리' 하면 엄청 '갈군'다.

 

자연히 밤에 퇴근할 후배들 불러 모아야 하니 밥값과 술값이 많이 들어간다. 월급에서 대부분을 차지하지 싶다. 일터에서 '엥겔지수'가 가장 높기로 유명하다. 아마도 내가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적잖이 작용했기 때문일 게다. 5년 동안 지켜본 김주완 부장 모습을 압축해서 보는 것 같았다.

 

또 김 부장은 천하의 '마감 체질'인데, 마감 시간이 닥치면 설레발(몹시 서두르며 부산하게 구는 행동)이 요란스럽다. 책을 읽으면서 몇몇 장면이 떠올라 여러 번 웃었다.

 

벽두에 잡는 책은 평소에 읽은 책하고는 좀 다르다. '지난해를 반성하고 올 한해는 이렇게 살겠다'는 따위의 의미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나는 이 책의 1장(내가 받은 촌지)과 3장(연고와 인맥이라는 '괴물'), 마지막 8장을 눈에 힘을 주고 읽었다. 1장 '촌지 받는 사람의 방어기제'에서 '나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라며 촌지를 합리화했던 당시 기억이 떠오르면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3장 '언론동문회'와 '삼성장학생'에서는 2005년부터 일절 나가지 않는 '언론동문회'에서 아예 탈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길지만 같이 읽어 보자.

 

"각 대학의 '언론동문회'가 그것이다. 경남대·경상대·창원대에 각각 비슷한 성격의 동문조직이 있는 것으로 안다. 희한한 것은 유독 언론동문회에는 동문회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비싼 호텔에서 대학 총장과 함께 밥과 술을 먹고 선물까지 받아 간다. 각 대학이 자기학교 출신 기자들을 끔찍이 챙기는 사례들은 이 밖에도 많다. '삼성장학생'만큼은 아니겠지만, '○○대 장학생'이란 말도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는가."(90쪽)

 

마지막 8장은 내가 맡은 인터넷 관련 이야기도 있고 해서 더 눈여겨봤다. 나는 김주완 부장과는 지난 2005년 3월부터 2007년 3월까지 같이 일했는데, 그가 거의 경남도민일보 인터넷의 주춧돌을 놓았다 해도 틀리지 않다. 이런 바탕이 있으니 '인터넷 공짜뉴스를 과감히 없애라'는 제안을 할 수 있는 거다

 

아무튼, 내가 경남도민일보에 들어온 지도 어언 6년이다. 참 무섭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나도 어느덧 일터에서 입사기수로 치면 '허리'다. 또 며칠 후면 새로운 수습기자들이 들어온다. '선배는 무섭게 크는 후배가 두렵고, 후배는 고참이 될수록 부지런해지는 선배가 겁난다'는 말을 요즘처럼 실감할 때가 없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앞으로 어떤 기자가 되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했다. 나는 과연 김주완 부장의 '주문'처럼 근성 있는 기자·정의로운 기자가 될 수 있을까.

 

그건 그렇고, 어째 좀 책이 급하게 만들어진 냄새가 난다. '설렁설렁' 읽었는데도, 오자나 다른 용어로 대체해야 마땅한 곳이 군데군데 보였다. 김 부장이 '마감 빨'만 너무 믿은 거 아닌가 싶다. 출판사와 커뮤니케이션(소통)이 잘 안 됐나? 아, 출판사 이름이 커뮤니케이션북스군. ^.^;

 

다른 건 몰라도 팩트(fact)가 완전하게 틀린 건 바로잡아야겠다. 한겨레신문 창간 표기를 1989년으로 했는데, 1988년이 맞다. 김해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를 2003년으로 했으나, 2002년으로 고쳐야 한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민간인학살'(오늘 주찬우 기자가 쓴 기사 내용 중에 '양민학살'이라는 표현과 '민간인학살'이라는 표현이 혼용되고 있더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민간인학살'이 맞습니다. '양민학살'이라는 말 속에는 '빨갱이가 아닌 양민이 억울하게 학살됐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빨갱이라면 죽여도 좋은데, 빨갱이도 아닌 양민이 죽었기 때문에 억울한 죽음이다"는 것입니다. -2004년 내부 전자게시판에 올린 글 중에서)이 더 객관적인 용어라고 강조했건만 '양민'이라는 낱말이 보인다.

 

또 274쪽에 '우리 기자들의 바이라인이 적인 기사…'이라고 되어 있다. '적인'은 '적힌'으로 다듬어야 한다.

 

두께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나친 강조에 따른 '피로감'이랄까.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서 지겹다는 느낌이 들었다. 1장과 2장이 그랬다.

 

들리는 말로는 '2쇄'가 임박했다고 한다. 내가 잡아낸 오탈자를 해당 출판사가 적절히 반영해 주리라 믿는다.


일전에 안경환씨가 쓴 <조영래 평전>을 읽었다. 조영래 변호사는 "장장 20여 년 동안 하루 평균 오륙십 개비의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또 그는 변론서 초안을 거의 "담배 한 개비에 한 문장의 속도"로 썼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김주완 부장이 떠오른다. 정말 '무시로' 담배를 피워댄다. 모른 긴 해도 칼럼 1편에 담배 1갑은 될 게다. 허나, 제발 금요일과 일요일 낮에는 편집국에서 담배를  피우지 마시길…. 사람 좀 살자!

 

10m도 안 떨어진 거리에서 얼굴을 보면서 서평을 쓰려니 '쪼매'(조금) 벌쭘하다.


아무튼, 이 책은 20년 가까이 기자를 천직으로 살아온 한 인간의 냄새가 구석구석 배여 있다. 더불어 경남도민일보에 대한 애정도 듬뿍 담겨져 있다는 점도 짚어두고자 한다.

 

부디 책이 많이 팔려 김주완 부장의 저녁 뒤풀이가 이어지기 바란다. 김훈이 그랬나.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남도민일보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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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2007)


태그:#민병욱,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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