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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피드>를 보았는가. 브레이크 없는 버스는 승객들을 불 섶에도 뛰어들게 만들고, 강물로도 돌진하게 한다.


브레이크가 망가졌다고 빼버려서야


망가진 브레이크는 더 정교하고 강한 것으로 바꿔야 한다. 브레이크가 제 노릇을 못한다고 빼버린다면 그것은 화약을 지고 불섶에 뛰어드는 것과 뭐가 다를까.


학벌사회 속 '몰빵 투자'에 지친 국민 앞에 '이명박식 교육공약'이 브레이크 없는 '교육'이라는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고교평준화란 브레이크도 떼버리고 대입에서 본고사·고교등급제 금지와 같은 제동장치도 없앤 '우익 포퓰리즘'형 자동차다.


대개의 교육선진국들이 그렇듯 고교 평준화(근거리 배정)는 약육강식형 사교육체제를 막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1등 국인 핀란드도 그렇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들의 고교입학 기본 방식도 근거리 배정이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주장하듯 우리나라는 평준화 체제인데도 사교육비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맞는 말이다. 브레이크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교의 절반은 비평준화 상태다. 평준화란 브레이크 자체가 절반 가량은 이미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어디 이뿐인가.


외고와 자사고 자체가 '사교육 천국'인 걸 왜 모르나


외국어고(29개)와 국제중고(4개)를 비롯해 자립형사립고(6개), 과학고(19개) 등 이른바 특수, 특혜형 학교는 모두 58개다. 참여정부의 교육부는 평준화 체제 속 특수지역인 이들 학교가 바로 사교육의 진원지라고 분석한 바 있다. 입학과 학교교육에서 브레이크가 작동하고 있지 않은 탓이다.


대통령직 인수위 교육 관련 위원들은 외국어고(외고), 자립형사립고(자사고)와 같은 특혜형 학교들이 수준 높은 공교육을 하면 사교육이 사라진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로 경제학자 출신인 이들의 생각은 '위험한 착각'일 뿐이다.


외고와 자사고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일반고 학생보다 훨씬 높다. 2006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외고 1년생의 사교육 참여 비율은 86.4%이었다. 이 수치는 서울 고교생의 사교육 비율 72%(2003년 한국교육개발원)보다 높았다.


자사고도 사정은 같다. 교육부가 2005년에 내놓은 '자사고 시범운영 평가보고서'를 보면 이들 학교 학생들은 10명에 7명 꼴(68%)로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전국 평균치(58.7%, 2004년 한국교육개발원)를 크게 웃돌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수많은 실증 연구 결과를 일부 보수신문들이 그랬듯, 이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제 300개의 특혜형 고교가 탄생하는 날 평준화란 브레이크는 제거될 것이다. 전문계형인 마이스터교 50개를 빼더라도 기존 입시명문고와 합치면 300여 개나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전국 인문계 고교 1437개(2006년 4월 기준)의 20%를 웃도는 수치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희한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더구나 사실상 자사고인 자율형사립고 100개 신설은 교육계를 빈부격차로 가르는 경부운하 구실을 할 것이다. 교육 양극화를 그나마 막아온 평준화란 브레이크가 깨진 결과다.


한 해 1600만원 내고 다녀야하는 자사고


 

대표 자사고인 민족사관고 2004년 자체평가보고서를 보자. 이 학교는 등록금(290만5200원)을 비롯해 기숙사비, 특기적성활동 교육비 등 수익자 부담 경비(1331만3375원)를 합하면 한 해에 학교에 내야 할 돈만 1621만여 원이나 됐다.


이 같은 학교를 보낼 수 있는 부모의 연봉 평균은 2004년 기준으로 8250만원이었다. 이를 놓고 '가난의 대물림을 교육으로 끊는 정책'이라고 홍보한 '이명박 식 선전전술'에 대개의 교육시민단체들은 혀를 내두르고 있다.


'현대판 연좌제'인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특혜성 귀족학교 학생들을 더 뽑기 위한 일부 대학의 계산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은 이제 다 아는 사실이다. 이 같은 이른바 '3불제'란 브레이크도 해체될 위기에 빠졌다.


지난해 교육부 분석 자료를 보면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가운데 본고사를 실시하는 곳은 일본뿐이었다. 고교등급제는 미국의 일부 대학만 실시했다. 이 또한 농촌, 빈민 지역 학생들을 우대하기 위한 성격이 짙었다.


학교선택권 보장과 대학 자율이란 글귀가 새겨진 '이명박표 교육정책'이라는 자동차는 현재 미완성품이다. 하지만 지난 2일 교육부 업무보고를 기점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사고 터진다면...


사교육과 교육양극화를 그나마 막아온 최소한의 브레이크를 해체한 채 달리고 보는 것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교육시민단체 전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상태다.


지금과 같은 오만한 자세에 빠져 있다면 사고가 터질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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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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