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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날 처마에 달린 풍경, 늘푸른 편백, 나목이 된 밤나무 그리고 오두막이 서로 방해함이 없이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 오두막 풍경과 편백 눈오는 날 처마에 달린 풍경, 늘푸른 편백, 나목이 된 밤나무 그리고 오두막이 서로 방해함이 없이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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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08년 1월 1일이다. 어제는 종일 눈이 내렸다. 묵은 것을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할 요량으로 온 세상이 하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2007년 1월 1일 오전 11시에 대전 을지대학병원 응급실에 뇌경색으로 입원했었으니 정확하게 뇌경색 발병 1주년이다. 궂은일을 기념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의식을 잃고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그때를 기억하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느슨해진 마음가짐을 추스르는 것도 의미가 있을 성싶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새옷으로 갈아입은 듯한 마을 풍경
▲ 눈덮인 마을 설경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새옷으로 갈아입은 듯한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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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에는 응급실 병상에 누워 있었지만 지금은 지난 추석 연휴 때부터 집사람과 둘이서 짓기 시작한 오두막에 누워 고즈넉한 설국의 풍경을 즐기고 있다. 오두막을 짓는 초기에는 객지생활 때문에 혈당관리에 적신호가 켜지기도 했다.

그러나 고생과 행복이 반복되고 만족이 뒤따른 오두막 짓기에 집중하는가 하면 집사람이 조리한 안정된 식생활을 하다 보니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일 년 전 일이 새삼스럽다.

지난 해, 나에게 커다란 소득이 있었다면 <오마이뉴스>를 알고 기자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운 것이다. 독자를 의식한 글을 써보지 않은 나에겐 힘든 과정이었지만 지금은 글을 다듬을 수 있는 약간의 안목도 생긴 것 같다.

평생 수행자로 살겠다는 삶의 방향은 설정한 상태였지만 구체적으로 현세를 살고 있는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며 그분들과 대화한 내용을 기사로 쓰겠다는 구체적인 삶의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올해부터는 선지식과 선문답이 가능한 경지에 이르도록 간단없이 공부를 해야겠다.

지리산 농장에 터를 만들려고 내려올 당시만 해도 '정박사 목수된 사연'을 쓸 생각은 없었다. 하도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 때문에 메모 형식으로 동창회 카페에 글을 썼고 이것이 기사가 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모스크바 근교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다차'와 같은 별장을 갖게 되었다. 이제 다음 주에는 오두막의 포치와 데크를 시공하고 에필로그를 써야겠다. 글을 꼭 써야 한다는 것도 자신을 속박하는 하나의 굴레일 수 있다. 쓰고 싶을 때 쓰는 자유를 찾고 싶다.

아파트 생활하는 많은 사람이 뜨끈뜨끈한 온돌방 아랫목에 허리를 뉘고 게으름을 피우는 맛을 못 잊어 한다. 전기온돌 패널을 구들장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설설 끓는 방바닥을 지고 함박눈이 차곡차곡 쌓이는 산야를 바라보면서 새해를 설계하는 재미가 그만이다.

광주에서 송년회를 위해 형제들이 모두 모이기로 했다. 서울의 여동생까지 참석하니 맏형이고 큰오빠인 내가 꼭 참석해야 한다. 그러나 아침 6시에 발표한 대설 주의보를 듣고 불가피한 모임도 아닌 친목모임에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까지 갔다가 저녁 늦게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처럼 생각되었다.

매우 어려웠지만 참석하지 못한다는 연락을 하고 서울에서 세배 차 내려온다는 딸과 사위에게도 좋은 날이 하늘의 별같이 많은데 궂은 날씨에 명분때문에 무리한 행동을 하는 것을 삼가라는 전화를 하고나니 31일과 1일 이틀이 순수한 우리의 시간이 되었다.

날씨가 춥고 눈이 오더라도 일을 해야할 공간을 확보하기위해 설치한 간이천막
▲ 창고와 임시작업장 날씨가 춥고 눈이 오더라도 일을 해야할 공간을 확보하기위해 설치한 간이천막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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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창고의 외부에 방부목 송판을 붙이는 작업을 끝내고 창고바닥과 1층 선반까지 만들었다. 오늘은 2층 선반과 내부를 마감하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공구들을 정리해 제자리에 보관할 계획이다. 집사람은 일 년 전 악몽이 되살아나 겁이 났는지 아니면 누워서 즐기는 설경에 취했는지 일을 하러 나가자는 나의 말에 들은 체도 않는다.

오두막 짓기가 끝나가니 공구들도 제자리로 돌아갈 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 창고에 정리해야할 공구들 오두막 짓기가 끝나가니 공구들도 제자리로 돌아갈 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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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다녀간 아들이 오늘 대전집으로 온다는 연락을 받자 집사람은 12시까지 어제 하다 중단한 일들만 마감하고 대전으로 돌아가잔다. 아무리 옷과 모자로 무장한다고 하지만 영하 5도인 날 아침 일찍부터 창고 내부를 마감하고 선반을 만드는 일에 매달린다는 것이 너무 억척스럽고 순리를 거스르는 것 같아 집사람 의견대로 하기로 했다.

집에서 재활용을 위해 가져간 송판을 재활용하려고 작은 조각으로 자르고 붙이다보니 시간도 많이걸리고 보기도 싫으나 마음은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 창고바닥공사 집에서 재활용을 위해 가져간 송판을 재활용하려고 작은 조각으로 자르고 붙이다보니 시간도 많이걸리고 보기도 싫으나 마음은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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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때부터 지금까지 정리된 우리 지리산 터는 4단으로 윤곽을 잡았다. 첫 단은 도로 아래 약 400평 평지이다.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콩과 메밀밭으로 가꿀 계획이다. 나와 친척 그리고 친구들을 위한 친환경 농사를 지을 터이다.

둘째 단은 도로와 5m 이상 고도차이가 있고 경사가 있어 축대를 많이 쌓아야 하는 약 700평의 터이다. 이곳에 나의 목공 DIY(Do it yourself) 작업실을 포함하여 산골 생활에 필요한 창고를 나와 집사람 둘이서 지을 계획이다. 창고는 될 수 있으면 크게 지을 생각이다. 그 주변은 각종 과일나무와 편백나무 숲에서 작은 나무들을 옮겨와 편백나무 정원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조림후 가꾸지 않아 간벌과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 가꿔야할 편백 숲 조림후 가꾸지 않아 간벌과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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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단은 둘째 단 위에 다듬어진 400평 평지로 퇴직 후 살림집을 지을 때까지 매실과 버섯 그리고 야생화와 텃밭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겨울에도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게 적은 비닐하우스도 만들어야겠다.

마지막 넷째 단은 60평 오두막 터로 가장 높은 곳이다. 주말 별장 오두막과 공구보관용 한 평짜리 창고와 주방, 욕실, 그리고 침실이 딸린 부속건물을 포함하여 3동의 작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세트가 될 것이다. 주방과 욕실이 딸린 건물 짓는 일은 봄으로 연기하더라도 연말연시 주말과 휴가를 이용하여 창고와 오두막의 포치와 임시 데크까지 완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고로쇠나무는 수액채취를 목적으로 조림하는 숲이며 고도가 높고 큰나무일수록 물맛이 좋다.
▲ 고로쇠 나무 숲으로 가는 길 고로쇠나무는 수액채취를 목적으로 조림하는 숲이며 고도가 높고 큰나무일수록 물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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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굴착기가 도로 작업을 해서 고로쇠나무와 편백나무 숲으로 통하는 임도와 오두막 입구 그리고 집터 진입로가 상호 연결되었다. 도로는 연결되었으나 경사가 심해 도로가 젖은 상태에서는 오두막까지 자동차가 올라오기 힘들다.

고로쇠물을 보관하기 위한 김치냉장고 배달차량이 진입로 입구에서 조금 올라오더니 미끄러져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한다. 김치냉장고 상자를 굴착기 삽 위에 올려놓고 오두막에 이른다. 설치기사가 “와! 경치 끝내준다. 그런데 아저씨! 왜 이런 곳에 살아요?”라고 물어온다. 길고 어려운 대답을 할 수 없어 미소를 보여줬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대답해 본다.

펄럭이는 깃발 없이 바람소리를 보고 싶고 마음으로 눈 날리는 소리를 듣고 싶어 이곳에 왔다. 또, 밤나무, 편백나무 그리고 고로쇠나무들과 더불어 살려고 왔다.


태그:#목수 , #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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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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