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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거리에서 본 홍콩섬의 야경.
 스타의 거리에서 본 홍콩섬의 야경.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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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소곤대는' 밤 풍경을 기대하고 홍콩에 온 이들은 빅토리아산에서 바라본 홍콩의 밤 모습에 실망할 것 같다. 바로 눈앞에 펼쳐진 센트럴과 맞은 편 침사초이의 화려한 야경에 입을 다물 수 없기 때문이다. 별들은 야경에 가려 존재조차 찾기 힘들다. 그 스카이라인은 이제 왼쪽으로 계속 확산되어 신제(新界)까지 뻗어있다.

'반환' 10주년을 넘어가는 홍콩은 흥분과 아쉬움이 교차하고 있는 풍경이다. 1997년 당시 홍콩 '반환'을 보는 이들의 전체적인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실제로 저우룬파(주윤발), 리롄제(이연걸) 등의 스타는 물론이고 우위션(오우삼), 쉬커(서극) 같은 감독들이 홍콩을 떠났다. 별이 없는 홍콩은 초라하게 시들어 가는 듯 했다.

하지만 홍콩의 불빛은 그렇게 쉽게 식지 않았다. 그렇다고 홍콩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홍콩이 현재 안고 있는 딜레마와 더불어 동북아 허브를 꿈꾸던 한국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것들을 점검해 본다.

중국 본토에서, 한국에서 끊이지 않는 홍콩행 발길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기지 않은 지난해 12월 21일,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넘어가는 곳 가운데 하나인 선전 루오후(羅湖)역의 홍콩 입국 신고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은 단계적으로 오픈할 때마다 위험한 광경을 연출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옆에 있는 외국인 입국장도, 이보다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1시간은 경과해야만 홍콩으로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사람이 많다. 물론 그 옆에 있는 홍콩 거주자들을 위한 창구는 거의 줄을 서지 않을 만큼 빠르게 통과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루오후 세관을 통과하는 출국자는 하루 10만명 정도다. 하지만 이는 휴일이 되면 20만명으로 늘어나고, 최고점에 달하는 춘지에(春節) 기간은 80만명까지 치솟기도 한다.

홍콩을 향한 발길은 이곳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중경삼림>에 나오던 도심에서 란타우섬의 북쪽으로 옮겨간 첵랍콕 공항도 쉴 새 없이 붐빈다. 지난해 12월말에 인천과 홍콩라인은 대부분 만석이었고, 단체 여행객의 항공권을 확보하려는 여행사들은 곤욕을 치렀다.

올 10월까지 한국인의 홍콩 출국 수(관광공사 제공 자료)는 2003년 19.5%의 감소세를 보이다가 다음해부터 증가세로 돌아섰고, 올 10월까지 누적 출국자는 69만4777명으로 20.8%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증가세는 일본(24.3% 성장), 중국(25.4% 성장), 마카오(35.2% 성장) 경우보다는 못하지만 대만(14% 성장), 태국(1% 감소), 말레이시아(16.7% 성장), 싱가포르(1.4% 성장) 경우보다는 훨씬 높은 수치다.

2층 버스를 타고 홍콩섬을 관광하는 여행객들.
 2층 버스를 타고 홍콩섬을 관광하는 여행객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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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홍콩으로 향할까. 홍콩의 여행지들에 가면 그 흐름을 직감할 수 있다. 30년째 홍콩에서 가이드생활을 한 코니리씨는 "야경을 보는 픽트램이든 바가 있는 주말의 침사초이나 난콰이펑이든 간에 한국의 젊은 여행자들로 넘쳐난다, 원래 난콰이펑은 홍콩에 정주하는 사람들에게만 고객카드를 만들어줬는데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가면 그냥 카드를 만들어 준다, 그들은 하나같이 3번 이상만 홍콩을 왔다 가면 마약에 빠지듯 홍콩 마니아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을 홍콩 정부는 다른 어느 곳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때문에 연말 같은 성수기에 크리스마스 축제를 만들어서 여행객들을 끌어들인다. 사실 기자가 이번에 본 홍콩은 공항에 약간의 장식이 있고 시내 호텔 등의 로비에 관련 선전물 등이 조악하게 있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물론이고 여행을 좋아하는 중국인이 홍콩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려는 욕망을 자극했다. 이 때문에 12월말부터 침사초이나 홍콩섬의 주요 호텔은 모두 동이 났다.

홍콩의 경우 한국에 버금가는 일반 물가와 좁은 도로망 등으로 인해 여행요소는 상하이나 베이징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패키지여행의 경우도 좁은 호텔, 빤한 식사 코스로 기분을 상하기 쉽지만 홍콩 여행객들이 끊이지 않은 것은 이미 브랜드가 되어버린 여행도시 이미지와 마케팅의 성공 덕분이다.

좁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금융인들에게 금, 토요일 밤은 해방구다. 여기에 한국 등에서 온 여행객들이 합류하고 있다.
 좁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금융인들에게 금, 토요일 밤은 해방구다. 여기에 한국 등에서 온 여행객들이 합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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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과 물류는 홍콩의 힘... "홍콩은 매력적인 아시아 전략기지"

빅토리아 거리를 비롯해 센트럴을 중심으로 배치된 홍콩섬 금융사들의 구조는 금융과 황금의 도시 홍콩을 실감하게 한다. 지난달 21일 이곳에 있는 ABN-AMRO와 맥쿼리를 방문했다.

네덜란드계 종합 금융회사인 ABN-AMRO의 사무실은 홍콩 금융가의 중심부인 빅토리아 거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그 주변은 시티은행을 비롯해 홍콩상하이은행, 중국은행 등 세계적인 금융기업들이 밀집된 곳이다. 이 회사는 이미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다양한 파트에서 활동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이날도 한국인 근무자들이 나와서 따뜻하게 맞고 방문 일정을 진행해주었다.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로 인해 미국 쪽 금융사들이 휘청대는 반면, 네덜란드계인 이 회사는 영국계 은행인 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와 약 700억 달러 규모의 인수합병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경우 세계 최대 규모의 금융회사로 발돋움할 ABN-AMRO의 홍콩 사무실은 비싼 임대료로 인해 공간이 좁긴 했지만, 수백 명의 세일즈 트레이더(Sales Trader)들이 빅토리아만이 내다보이는 사무실에서 자기의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담당자는 서쪽으로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과 접근이 용이하고 동쪽으로는 상하이, 서울, 도쿄와 접근도가 좋아 홍콩을 아시아 전략기지로 삼는 금융사들의 정책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홍콩섬 중심에 있는 홍콩상하이은행 본점 1층의 광고판. 퇴직 후 설계에 관한 은행 광고를 한 직장인이 보고 있다.
 홍콩섬 중심에 있는 홍콩상하이은행 본점 1층의 광고판. 퇴직 후 설계에 관한 은행 광고를 한 직장인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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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쿼리는 빅토리아만과 붙을 듯 있는 중신대하에 위치한 종합 보험 증권 회사다. 1985년 호주에서 은행업을 시작한 맥쿼리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라는 틈새영역을 공략하는 전략으로 입지를 구축했다. 인천공항고속도로 등 한국에서도 이미 다양한 투자를 진행했다.

홍콩을 지키는 인민해방군 청사. 폭파가 쉬운 구조로 되어 있고, 이곳 근무자는 가족을 동행할 수 없다.
 홍콩을 지키는 인민해방군 청사. 폭파가 쉬운 구조로 되어 있고, 이곳 근무자는 가족을 동행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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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당시 금융업계에서 홍콩의 중국 '반환'은 우려스러운 사태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일국양제의 홍콩 정부를 그대로 유지했다. 인민해방군이 주둔하는 곳에서 200~30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센트럴의 선착장에서는 아직도 파룬궁 지지자들이 시위를 할 정도다.

그에 발맞춰 홍콩은 정부규제 최소화, 낮은 조세부담률, 사유재산권 보장 등을 유지해 세계 금융 및 비즈니스 센터로서 기반을 구축했다. 세계 40개국의 400여 은행과 321개의 증권사가 진출해 있다.

물론 홍콩의 금융 허브 기능은 홍콩섬의 비싼 임대료 등으로 인해 곤란을 겪기도 한다. 이미 적지 않은 회사가 홍콩섬을 떠나 지우롱(九龍)의 신지에(新界)나 중국 선전, 상하이, 베트남 하노이 등으로 역할을 분산하고 있다.

하지만 초강대기업으로 성장한 중국은행들의 홍콩 사업 확대와 중국 투자의 우회노선인 항셍주식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홍콩의 금융 허브 기능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과 더불어 홍콩을 버티는 주요한 힘은 물류다. 공산품에서 농산품까지 대부분의 생활 물품을 수입에 의존하지만 홍콩은 세계에서 물자가 가장 풍부한 곳이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항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첵랍콕 공항에서 빠져나와 거대한 다리를 지나면 도로 왼쪽에 거대한 컨테이너 적체항이 눈에 띈다. 처리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콰이청 컨테이너 터미널은 여전히 막강한 위용을 자랑한다. 이 부두는 중국 선전과 황강(黃崗) 세관으로 연결되어 홍콩에서 3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중국 정부의 간섭이 적다는 것도 홍콩을 선호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국제중개무역항답게 홍콩 총수출 중 재수출 비중은 88%가 넘는다. 그 배경은 풍부한 자금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금융 분야의 협조와, 사후 신고만으로 통관절차가 완료되는 구조를 홍콩이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있는 콰이청 컨테이너 부두.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있는 콰이청 컨테이너 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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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본토 항구의 부상, 위협받는 홍콩 물류... 여전히 우울한 콘텐츠산업

하지만 홍콩이 계속해서 그런 지위를 누릴 수 있다고 믿는 이는 이제 거의 없다. 막강한 경쟁 상대들의 부상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홍콩과 인접한 선전(深圳)도 이젠 홍콩에 밀릴 이유가 없다. 선전 바오안공항에 가까운 푸잉(福永)부두를 시작으로 셔코우(蛇口), 푸뎬(福田), 타펑(大鵬)항으로 이어지는 선전의 물류망만으로도 홍콩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광저우, 둥관 등도 물류망을 확대해 가고 있다. 또 상하이나 톈진 등도 갈수록 커감에 따라 홍콩의 가치는 갈수록 사라진다.

세계 4위의 부두이자 향후 홍콩의 물류기능을 흡수할 선전항.
 세계 4위의 부두이자 향후 홍콩의 물류기능을 흡수할 선전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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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동안 홍콩이 나름대로의 힘을 발휘한 것은 매년 약 10%씩 성장하는 중국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광저우나 선전이 홍콩에서 오는 사람들의 소비로 도시를 키웠지만, 지금은 역으로 홍콩이 광둥이나 중국 본토에서 오는 사람들의 소비로 영위하는 모습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인건비 차이 등으로 인해 중국인의 홍콩출입은 자유롭지 않지만, 그럼에도 홍콩 마니아가 된 광둥 젊은이들의 홍콩 나들이는 홍콩 관광부흥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

물론 이런 여행 마니아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 본토에 있는 부자들은 홍콩에 집을 사두는 한편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홍콩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홍콩은 영어를 배우기에 적합한 환경인데다 홍콩에서 아이를 출산할 경우 중국 정부에서 규제하는 독생자녀 제도를 우회적으로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중국 방문자들이 소비하는 양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홍콩에서는 보석 수집가로 알려진 중국 정부 고관의 부인이 방문할 때가 안 팔리는 보석을 팔아치울 호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이런 의존도는 홍콩 경제에 치명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지금은 홍콩과 마카오의 기능을 인정하고 있지만, 만약 그 기능을 상하이나 베이징, 톈진 라인으로 이전하는 정책을 쓸 경우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홍콩으로서는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중국 정부도 홍콩의 이런 특성을 알기 때문에 힘의 분산을 '전략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또한 과거 홍콩의 활력소였던 엔터테인먼트나 콘텐츠 생산 기능은 여전히 부활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홍콩 정부는 이런 기능을 살리기 위해 월트디즈니와 합작으로 홍콩 디즈니랜드를 2005년 9월에 개장했다. 하지만 이 기획은 개장 후 1년 동안 500만명을 유치했지만, 그 후 방문자 수가 급감하면서 이젠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규모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훨씬 작았고, 가족 여행객보다는 청년층이 중심이 된 홍콩 여행객의 특성이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1980년대 중반 <영웅본색>(英雄本色, 1986), <첩혈쌍웅>(牒血雙雄, 1989) 등 홍콩 느와르로 불리는 영화와 <천녀유혼>(1987) 등 고전 판타지물로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홍콩 영화는 중국 반환과 함께 소멸하기 시작해 갈수록 그 추락세가 더 심해지고 있다. 거기에 장궈롱(장국영)의 자살과 메이옌팡(매염방)의 사망 등 악재가 겹치면서 홍콩 영화는 사실상의 조타수를 잃었다.

물론 2000년대 초반에는 저우싱치(周星馳)의 <소림축구>나 <쿵푸허슬>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지만, 이런 흐름도 단절된 지 꽤 오래다. 저우싱치는 <장강 7호>(長江7號)를 2008년 1월 31일에 내놓을 예정이지만, 이번 영화엔 홍콩 영화라기보다는 중국 본토영화로 봐야할 요소가 많다.

거기에 지난해 11월 1일 홍콩 영화산업의 상징적인 회사인 골든하베스트(嘉禾)가 청톈(橙天) 엔터테인먼트에 팔리면서 사실상 홍콩 영화는 장례식을 치렀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침사초이 스타의 거리에 있는 리샤오롱(이소룡) 동상.
 침사초이 스타의 거리에 있는 리샤오롱(이소룡)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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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중국 의존, 홍콩에 독이 될 수도... 한국은?

반환 후 10년 동안 홍콩은 그다지 암울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의 후광으로 관광이나 금융, 컨벤션, 물류 등의 장점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콩의 앞날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이미 군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지난 10년 동안 성장을 거듭했지만, 홍콩처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졌다. 중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리는 일은 상식이 되어버렸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치르면 중국은 연간 국민소득 4000불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빈부격차 확대로 서민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또 그 정도 소득 수준은 각 나라에서 분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리하면,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홍콩은 이제 그러한 중국과 운명을 같이하게 됐다. 중국의 홍역을 피해갈 수 없는 한국 역시 중국의 미래에 운명을 맡기는 것은 가장 치명적인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때다.


태그:#홍콩, #금융 허브, #중국 의존, #홍콩 느와르, #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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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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