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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나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2절 후반부다. '낭만'을 떠올릴 때마다 왠지 이 노랫말이 떠오른다. 애수와 피폐한 심연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노랫말은 '낭만적' 정서는 울려줄 수 있지만 '낭만적'과 '낭만주의'는 별 관계가 없다고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에서 김진수는 말한다.

 

낭만주의를 애절함과 서글픔을 담은 사상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서 진보성과 근대성을 핵심으로 파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김진수는 낭만주의를 '마술 지팡이'라 말한다. 이는  낭만주의 스펙트럼은 넓어 한 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그림 <절규>라는 작품이 있다. 근대의 보편적 이성과 과학을 향한 맹신의 인간이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는지 고발한 작품이다. 18세기 인간은 기독교 절대성에 반기를 들면서 인간 이성과 과학증명을 통하여 인간 이성과 사유가 유토피아를 형성해주리라 확신했지만 과학은 전쟁과 환경오염은 지구 종말을 예견할 정도다.

 

절대 하나님을 배격했지만 오히려 우리 시대 인간은 자본을 신격화했으며, 이성이 낳은 보편성을 주장하지만 자본에 함몰된 인간은 자본을 신으로 숭배하면서 오히려 경제중심의 획일화를 낳게 되었다. 이성이 보편성을 통하여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광기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인도했다. 과연 인간에게 구원의 길은 있는가?

 

김진수는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에서  희망을 찾고자 한다. 마술 지팡이처럼 다양성을 지닌, 세밀함과 함축성을 지닌 사랑과 상상력을 가진 낭만성 또는 낭만주의는 18세기 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오만한 이성에 의해 무너져가는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는, 우리에게 남은 하나의 가능성이다.

 

'낭만적'이라는 말의 어원적인 의미인 '소설(romance)같은', 중세 기사문학류의 공상적, 모험, 영웅담, 신비함이지만 이는 낭만주의가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낭만주의는 계몽주의 시대 이성의 절대적 권위에 반기를 들고 나와 세계 변혁을 꿈꾸던, '계몽을 계몽하는' 낭만주의로 환상에 대한 탐닉과 몰입이다.

 

'환상'이란 '이성의 가능성과 한계'를 묻고자 했던 칸트 철학이 '이성의 한계' 바깥의 영역으로 남겨 두었던 그 지점을 탐사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구축하는 개념적 도구이다.

 

"낭만주의에서 환상은 이성적 사고로는 켤고 이를 수 없는 인간과 자연의 통일성 또는 의식의 통일성을 형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추상적인 원리들에서 근거하는 사고 과정과는 달리 환상은 미적 창조력의 통일성을 보증해준다." (33쪽)

 

낭만주의는 진보적인 보편시다. 진보적이라는 것은 무한히 성장해가는 역동성을 말한다. "영원히 생성 발전하여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로 낭만시의 본질"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주관성을 부여하며, 예술의 자율성과 미적 근대성을 천명하고 있다. 이것은 계몽주의가 이성을 통하여 통합을 주장햇던 것과는 다르다.

 

낭만주의의 예술적 미학적 근대성은 이성보다는 자아의 직관과 정신에 토대를 둔다. 낭만주의 예술관은 삶과 현실의 합리화와 관계없다. 예술 자체의 고유한 형식과 개성을 중시하여 예술의 혁명성을 가졌다.

 

"낭만주의에서 예술의 형식은 더 이성 미의 표현이 아니라 이념으로서의 예술 그 자체가 된다. 말하자면 예술은 순간적으로 자신을 의식하고 스스로 표명하며, 이러한 표명 속에서 스스로 해명하는 것 외에, 어떤 다른 과제, 어떤 다른 특징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예술 작품은 통고할 뿐이다. 낭만주의 예술 작품은 오로지 스스로를 천명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64쪽)

 

낭만주의를 이성주의자들은 '반동적' '신비적' '공허하다' '주관적'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낭만주의는 근대적 합리성과 다른 의미에서 근대성을 가졌다. 이것이 미적 근대성이다. 근대성을 이성에만 제한 시킬 것이 아니라 낭민주의 미적 근대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인류 진보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사실 근대성은 이성에 의한 합리성과 예술과 미의 자율성을 통하여 발전했다. 낭만주의란 그저 눈물 흐르는 로맨스가 아니다. 이성의 합리성과 함께 예술과 미적 자율성을 통하여 근대성을 형성한 축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 김진수 지음 ㅣ 책세상 ㅣ 2001년 1월 15일 ㅣ3900원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

김진수 지음, 책세상(2001)


태그:#낭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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