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주화의 열망을 품고 있는 버마(미얀마) 국민들은 지난 2007년 9월 약 10여년 만에 또다시 대규모 민주화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시위는 소강상태입니다. 이에 '함께하는시민행동'은 버마 국내의 열악한 상황을 피해 국경지대로 나와 있는 많은 시민들이 민주화의 메시지가 담긴 라디오 채널들을 들을 수 있도록 '내 이름을 새긴 피스(PEACE) 라디오 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시민행동과 공동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글은 버마 난민 캠프 활동가 양초희씨가 보내온 글입니다. <편집자주>

 

치앙마이에 도착한 첫날 간단하게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 나는 당장 머물 곳을 찾으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역시 방을 구하는 건 만만치가 않았다. 가격이 좀 맞다 싶으면 거리가 너무 사무실과 멀었고 좀 걸어 다닐 만 하다 싶으면 가격이 너무 쎘다. 이래저래 마음을 못 잡고 있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초희~! 그러면 방 구할 때까지 당분간 사무실에서 지내는 건 어때?"

"사무실에서요?"
"그래~! 사무실 이층에 빈 방이 하나 있거든, 당분간 방세도 아낄 수 있고 말이야."

"그래도 어떻게 사무실에서 지내요. 밤에 혼자 지내기 무섭기도 하고요."

"그럼 룸메이트를 만들면 되잖아."

"룸메이트요?"

"캐서린이라고, 연말까지 여기서 인턴십 교육을 받을 건데, 어때? 같이 한번 살아볼래?"

 

밤마다 라디오를 켜두고 자는 내 친구

 

1986년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그녀. 그녀의 이름은 캐서린이고 사는 곳은 난민캠프다. 버마 군정부의 만행을 피해 1985년도에 타이-버마 국경 근처의 난민캠프에 자리를 잡은 캐서린 부모님은 그 다음해 캐서린을 낳았다. 그렇게 난민캠프 밖으로 처음 나온 내 친구 캐서린과 나의 이 미묘한 동거는 시작되었다.

 

서로 통성명이 끝나고 나서 캐서린은 나에게 여러 가지 것들을 물어봤다.

 

"왜 한국 드라마에서는 배우들이 끝에 다 죽는 거야? 왜 다 오빠고 동생이야?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다 이뻐? 너 눈 너무 사랑스러워~!"

 

그렇게 한참 질문공세를 받다가 내 눈이 너무 사랑스럽다는 말에 쑥스러워진 나는 질문을 끊고 웃으면서 "캐서린~ 한국드라마는 어떻게 그렇게 많이 본 거야?" 하고 물어봤다.

 

"초희~! 전기가 부족해서 난민캠프에서는 6시부터 10시까지 TV 볼 수 있어. 친구들이랑 만날 모여서 같이 봐! 태국인들이 한국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하면 버마사람들은 '미쳤다'고 할 수 있어. 심지어 자막이 없을 때에도 친구들이랑 넋을 잃고 드라마를 본다니까. 말은 이해할 수 없지만 배우들의 눈빛이나 표정만 봐도 그 느낌이 전해져서 마음이 아프거든."

 

그리고 나더니 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I think I love you(드라마 '풀하우스' 주제가)'라는 한국어 노래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캐서린이 그렇게 한국 노래를 곧잘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 첫날밤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캐서린은 조그만 라디오를 켜기 시작했다. 잠 자는데 라디오 소리가 약간 거슬렸던 나는 그냥 우회적으로 돌려서 만날 그렇게 라디오를 켜놓고 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캐서린은 잠자는 데 방해가 됐냐고 물어보고 나서 이내 씩 웃더니 말을 잇기 시작했다.


"초희~! 난민캠프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그래서 친구들이랑 나는 함께 모여서 라디오를 많이 들어. 라디오는 세상사는 이야기를 들려 주거든 또 음악도 들을 수 있고 말이야. 내 친구들 중 몇 명은 라디오로 BBC 들으면서 영어공부 하는데 그 친구들 영어 정말 잘해."

 

"근데 그거, 피자 맛있어?"

 

그날 이후부터 간간히 한국 노래가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매일 밤 자매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멋있는 한국 남자 연예인 이야기를 할 때는 엎치락덮치락 이불을 끌어당기며 서로 먼저랄 것도 없이 흥분을 하고, 예쁜 옷을 보면 사지도 않을 거면서 꼭 한번 입어보고, 맛있는 태국음식을 보면 한참을 쳐다보다가 결국 들어가서 사먹고, 이쁜 풍경을 보면 요리조리 포즈를 취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난 늘 캐서린이 난민캠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잊어 버리고 그러다 종종 철 없는 질문들을 해버리곤 한다.

 

어느 날 너무 피자가 먹고 싶길래 캐서린 한테 저녁으로 피자를 먹자고 했다. 대답이 없길래 별로 먹고 싶지 않은가 하고 다시 물어봤다.

 

"캐서린 피자 싫어해?"

 

캐서린은 이내 머슥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초희~ 나는 한번도 피자 안 먹어 봤어. 난민캠프에서는 옐로우 빈(Yellow Bean)하고 밥만 주거든. 옐로우 빈 알어? 나 어렸을 때는 그것도 부족해서 얼마나 많이 배고팠는지 몰라. 엄마한테 맨날 배고프다고 징징대고 그랬었지. 근데 그거 피자 맛있어?"

 

그 날 캐서린과 함께 피자집에 가서 제일 큰 피자를 시켜 먹었다. 다음날 아침, 아침대용으로 어제 먹었던 피자를 데우면서 서로 공통의 합의에 도달하고 나서는, 마주보고 서로 웃고야 말았다.

 

"그래도 밥이 최고야. 안 그래?"

 

자기나라에 대해 읽고 들어야 하는 내 친구

 

가끔 SPDC, 버마의 군정부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리는 온갖 되지도 않은 영어 욕을 해대가면 분통을 터트리고는 했다. 그렇게 한바탕 하고 나서 종종 캐서린은 나한테 한국이 그립지 않냐고 물어 보면서 SPDC가 무너지면 꼭 버마를 갈 거라고 했다.

 

"초희~! 난민캠프에서 살면서 꿈을 꾸는 건 정말 힘들어. 근데 나도 꿈이 있어 언젠간 사회복지사가 돼서, 난민캠프에서 고통 받고 있는 내 민족들을 도와 줄 거야. 그리고 그들과 꼭 내 나라 내 땅을 꼭 밟아 볼 거야."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제법을 배우고 있는 캐서린이 매일 밤 나에게 하는 말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초희, 그거 알어? 인권은 '시민'을 위한 것이지, 난민캠프를 위한 게 아니야."

 


태그:#피스라디오, #버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