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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1997년 헌정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 이후 10년만에 다시 보수우파 정권을 선택했다. 국민은 '중도'와 '실용' 그리고 '뉴라이트'(신보수)라는 리모델링으로 외연을 확장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선택했다.

 

한나라당은 두 번의 대선 패배와 '차떼기'로 부패 정당의 낙인이 찍혔지만 혁신위원회를 만들고 연수원 헌납과 대북정책 변화, 반값 아파트 등으로 자기 혁신을 시도했다. 그에 비해 신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개혁타령과 실용타령으로 허송세월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국민은 이명박 후보에게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보다 곱절의 표를 안겨주었다. 승자의 어법으로 규정하면 이번 대선은 경제가 '무능한 진보'를 이긴 것이고, 이를 객관화하면 신보수가 '낡은 진보'를 이긴 것이다.

 

17대 대선은 '불안한 집권당'과 '불안한 후보'의 싸움

 

지난 선거전을 되짚어보면 제17대 대선은 '불안한 집권당'과 '불안한 후보'의 싸움이었다.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으로 출범한 집권여당은 150석이 넘는 과반의석을 안겨줬지만 3년 동안 '선장'을 6개월에 한번씩 갈아치우면서 개혁과 실용 노선 사이에서 표류하다가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40 대 0으로 패함으로써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진단은 이미 그때 명쾌히 내려졌다. 그러나 5년 동안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며든 '반노무현 정서'는 이미 '백약이 무효'일 만큼 두텁고 완강했다. 보수세력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은 대중의 '반노 정서'를 십분 활용해 '잃어버린 10년'이니 '무능한 좌파정권'이니 하는 '낙인찍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뼈를 깎는 반성을 외면한 대통합민주신당은 140여석을 가진 집권당이면서도 당명의 약칭조차 특정하지 못할 만큼 정체성을 상실한 채 '불안한 잡탕신당'으로 선거에 임했다. 신당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범여권 대통합과 후보 단일화에 매달렸지만 막판까지 변죽만 울리고 끝나 오히려 지지자들에게 허탈감만 안겨줬다.


정당 지지도 기반도 취약한데 정동영 후보의 흡인력도 이명박 후보에게 뒤졌다. 이 후보는 청계천과 버스 중앙차로제라는 추진력과 실적주의로 경제 이슈를 선점했으나, 정 후보의 '개성동영'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고 그의 정체성도 개혁인지 중도인지 모호했다.

 

결국 국민은 정체성이 모호한 '불안한 정당'의 비교적 깨끗한 후보보다는 '때'는 묻었지만 안정된 정당의 '불안한 후보'를 선택했다. 그 불안함은 사법적 잣대와 도덕적 기준, 그 둘 다에서 오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은 삼성 특검, 당선자는 이명박 특검에 발목 잡힌 '쌍끌이 특검정국'

 

당장 이명박 대통령당선자에게는 '이명박 특검법'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야당으로 전락한 신당은 이명박 당선자가 '형사 피의자'라며 재선거의 엄포를 놓고 있다. 취임 전 기소 가능성, 재산신고 누락 등 공직선거법 위반에 따른 당선 무효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대선이라는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대변수가 걷혔지만 오히려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혼미한 상황이다. 퇴임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 대상에 포함시킨 삼성 특검과 취임을 앞둔 대통령당선자를 수사 대상으로 특정한 이명박 특검이 동시에 '쌍끌이'로 진행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선거 전날 "선거가 끝나고 저 이명박이 당선되면 바로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며 "'이명박 특검'은 미풍에 그치고 '이명박 효과'는 태풍이 될 것"라고 자신감을 보였지만 신당으로서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달려들 것이다.

 

여야의 위치는 뒤바뀌지만 신당은 여전히 원내 제1당이고 거기에 특검에 가세한 민노당과 민주당을 합치면 국회 의석 과반이 된다. 적어도 4개월간은 '여소야대' 정국이 지속되는 셈이다. 신당은 이 4개월 동안 최대한 공세를 펼칠 것이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세 가지이다. 특검이 문제의 도곡동 땅 매각대금이나 다스의 BBK 투자금이 이명박 당선자의 소유임을 밝혀낼 경우 당선 무효 가능성이 있다. 특검이 BBK 주가조작 사건에 이명박 당선자가 연루되었을 밝혀낼 경우에도 특검이 임기 시작 전에 기소하면 이론적으로는 당선 무효 가능성이 있다.

 

특검 정국의 세 가지 시나리오... 기소, 타협, 무혐의

 

그러나 두 경우 모두 형사 소추와 재판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전두환·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들이 법정에 선 적은 있지만 대통령당선자나 현직 대통령이 재판에 회부된 선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중 형사소추를 금지하고 있지만 형사소추의 진행을 막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대통령 임기 시작(2008년 2월 25일 0시) 전에 선거법 위반이나 주가조작·횡령 등 혐의로 기소되면 형사소추가 진행되고 특검법에 따라 6개월 이내에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면 대통령직을 상실하게 된다. 이 경우 60일 이내에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또 새 대통령과의 취임후 밀월 기간을 당연시하는 국민 정서도 무시할 수 없다. 이명박 당선자로서도 영향력이 가장 큰 시기에 특검에 발목이 잡혀 정국 주도권을 상실할 가능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형사소추의 진행을 퇴임후로 미루는 여야 타협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신당 최악의 시나리오는 특검조사에서도 무혐의로 결론이 나오는 경우다. 그때는 한나라당이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두어 강력한 정국 주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당선자가 취임 전에 특검 장애물을 넘더라도 그 이후에는 총리 임명동의안 국회 통과라는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미 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취임후 김종필 총리 임명동의안을 6개월간이나 지연시킨 전력이 있다. 역시 총선을 앞두고 뒤바뀐 여야의 격렬한 공방이 예상된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실추된 도덕성을 어떻게 회복하느냐

 

어쩌면 이 당선자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는 '거짓말의 늪'에 빠진 자신의 실추된 도덕성을 어떻게 회복하느냐이다. 그는 자신의 육성 고백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되자 이렇게 해명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동영상도 당시 김경준과 함께 하려던 신금융산업을 소개하고 홍보하면서 약간 부풀려진 것일 뿐이다."(18일, 기자회견)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명박 당선자는 이미 거짓의 늪에 빠져 있다. 동영상 공개된 자신의 육성 그대로 BBK투자자문회사를 자신이 설립한 것이라면 그동안 "BBK와 직간접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해온 해명은 거짓말이 된다.

 

아니면 동영상 공개 이후 해명대로 자기가 설립한 회사가 아닌데도 자기가 설립한 것처럼 '부풀려서 말한 것'이라면 이것은 자신을 믿고 투자한 선량한 투자자들을 기망한 사기에 해당된다. 결국 어느 쪽이건 그는 거짓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런데도 그는 위장전입도, 자녀 위장취업도, 탈세도, 마사지걸 발언 등도 문제가 될 때마다 늘 별 것 아닌데 부풀려졌다는 말로 넘어갔다. 또 그는 문제의 도곡동 땅에서부터 다스 실소유주 의혹에 이르기까지 경선과정에서부터 제기된 온갖 의혹을 '네거티브'라는 말로 일축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절반 이상의 국민은 검찰의 수사결과에 불신을 드러냈다.

 

육성 고백, 대통령 '말씀'과 화법의 권위와 신뢰를 두고두고 훼손할 것

 

따라서 경선과정에서부터 제기된 수많은 의혹들이 말끔히 정리되지 않는 한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도덕적 권위는 5년내 도전과 시련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BBK를 설립했다는 그의 육성 고백은 대통령의 말씀과 화법이 가져야 할 권위와 신뢰를 두고두고 훼손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빨리 찾아올 수 있는 지지의 철회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그의 약속이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지켜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BBK에 투자한 대다수 투자자들이 '이명박 신화'를 믿고 돈을 맡겼듯이, 그에게 표를 던진 대다수 지지자들은 비록 '때'는 많이 묻었지만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 하나를 믿고 그에게 5년 기한의 장기펀드 운용을 맡긴 것이다.
 
따라서 이른바 '747공약'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펀드'의 약속한 이익률을 제때에 실현하지 못할 경우,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바로 그 '경제'가 그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그때가 되면 그동안 비난을 유보했던 '때'와 '흠'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태그:#이명박 시대, #불안한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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