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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통령에 당선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간 모진 대선 레이스를 달려온 당신이었기에 주변으로부터 수많은 축하 인사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결례를 무릅쓰고 쓴소리부터 해야겠습니다. 당신께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4만불 시대의 성장동력' 경부운하에 대해서입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숨가쁘게 몰아치는 것이 야박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17일,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다가 당신과 마주 앉았습니다. TV에서는 단호한 어조로 막바지 선거연설을 하고 있는 당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 밀린 원고를 정리하다가 잠시 손을 떼고 당신의 목소리를 경청했습니다.

 

"어떤 분은 한반도대운하에 대해서 서해안같이 기름이 유출되지 않겠냐고 이야기합니다. 운하에는 유조선이나 독극물을 실은 배는 다닐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50년간 전세계에서 운하에 배가 빠져 기름이 유출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 공격 자체가 또하나의 음해입니다."

 

또하나의 음해라니요?

 

갑갑했습니다. 전 당신의 말을 듣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참담한 심경에 휩싸였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합니까? 그토록 객관적인 데이터와 구체적인 사례까지 취합해 제시했는데도 '음해'라고 일축하면서 귀를 닫아버린 유력 대통령 후보. 기름유출 사고가 없었다면서 국민들 앞에 서서 떳떳하게 주장하는 당신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여기 3장의 프리젠테이션 자료가 있습니다. 단 1분만 할애하시면 충분히 해독이 가능한 자료입니다. 대통령 당선자인 당신께 꼭 보여드리고 싶은 이 자료는 안병옥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만들어 발표한 바 있습니다.
 


기름유출 사고가 없었다는 근거를 제시해 주세요

 

우선 당신은 유조선이 운하에 다닐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프리젠테이션 자료에 따르면 미국 운하에서의 물동량 중 원유와 석유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44.0%에 달합니다. 두 번째 프리젠테이션은 독일의 사례입니다. 미국보다는 적지만 다뉴브강과 미텔랜드 운하에서도 총 물동량의 6%~15%를 유류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신속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물류인 원유를 '느린 운하'로 실어나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또 '지난 50년간 전세계에서 운하에 배가 빠져 기름이 유출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프리젠테이션 자료는 당신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U.S Coast Guard가 2005년 발표한 자료는 97년부터 2004년까지 바지선에서 유출된 원유 및 석유제품의 수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아끼는 경부운하 찬성론자 중의 한명인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는 '운하에서의 선박사고는 63빌딩에 비행기 부딪칠 확률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한 장의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추가했습니다.
  

 

이렇듯 직접 눈으로 보시고도 부인하시겠습니까? 제가 며칠 전 '기름 범벅된 뿔논병아리의 절규, 그리고 경부운하' 제하의 졸고를 쓴 것도 경부운하가 건설된다면 '제2의 태안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단 한번의 실수로 엄청난 혈세와 국력이 소모되는 참담한 현장을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경부운하 반대'로 돌아선 국민 여론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객관적인 사실에 눈감고 있는 당신과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의 거짓말입니다. 당신은 이같은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 경부운하 토론회에 참석했던 찬성론자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여러차례에 걸쳐 그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반대론자들이 충분하게 설명을 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진실처럼 주장하는 찬성론자들과 당신의 '불도저 리더십'이 결합할 경우 국가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사태를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착잡한 심경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소위 '이명박 강연 동영상'을 둘러싼 거짓말 논쟁. 진위여부는 특검이 가리겠지만, 저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운하의 나라'에서 작성된 객관적인 통계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개인적인 거짓말보다 공사비 규모로 볼 때 건국 이래 최대 사업을 놓고 벌어지는 거짓말이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큰 해악을 미칠게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17일 연설에서 "우리나라는 다섯가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면서 그 첫 번째로 '무능한 리더십의 병'이라고 꼽았습니다. 이어 당신은 "세계화시대, 경제화의 시대, 문명사적 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리더십은 낡은 리더십"이라고 규정한 뒤 그 한 예로 "비행기를 타고 가야할 데를 배를 타고 가는 것을 고집하는 리더십"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가져주십시오

 

말꼬리를 잡는 것처럼 비쳐질 지 모르겠지만 이 대목에서 한말씀 올리겠습니다. 비행기나 트럭, 그리고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해양운송 수단을 놔두고 굳이 백두대간을 끊어가면서 운하에 배를 띄우려는 당신의 리더십은 대체 무엇인가요? 기존에 건설한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사실상 이를 배척하면서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이율배반 아닐까요? 

 

이명박 당선자님. 당신께선 이날 연설에서 대통령이 가져야할 덕목을 두루 언급하셨습니다. 그 중 첫 번째로 꼽은 것은 '겸손한 대통령'이었습니다. 당신은 "만약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다"면서 "반대가 있다면 민주적으로 설득하겠다, 겸손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19일 당선이 확정된 직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서도 "국민들에게 매우 겸손한 자세,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저 역시 이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당신이 그토록 강조한 겸손을 실천하려면 '타자에 대한 상상력'과 '상식에 대한 믿음'이 전제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조용히 응시하면서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 여론은 '경부운하 반대'로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각종 여론조사 지표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내 경선에서도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다른 주자들이 모두 경부운하를 반대했습니다. 대선에 출마한 대부분의 인사들도 경부운하를 반대했습니다.

 

이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객관적인 데이터조차 인정하지 않는 당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음해' 등을 운운하면서 당신이 과연 겸손을 실천할 수 있는 지도자인지 솔직히 의심스럽습니다. 당신이 만약 경부운하를 반대하는 국민의 입장에 서서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가졌는지, 저는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식'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십시오  

 

저는 지난 1년 내내 경부운하만을 팠습니다. 90여건 이상의 기사를 썼습니다. 당신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공격했지만, 합리적 근거에 기초한 상식. 저는 그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습니다. 무수히 많은 쟁점이 있지만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무슨 운하를 파냐? 고인 물은 썩는데 국민 2/3의 식수원을 가둬둔다는 게 말이 되는가? 국민 혈세 한푼 들이지 않고 수십조원의 대규모 토목공사를 한 전례가 있는가?

 

저는 이런 상식에 그간 국민들이 화답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경부운하를 고집한다면 이런 상식에 기초한 낙관과 처절한 싸움을 벌여야 할 것입니다. 국론을 모으겠다는 당신의 말과 현실이 철저하게 괴리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 챙겨야할 일들이 산적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탄에 젖은 태안 어민들의 검은 눈물부터 훔쳐주시기 바랍니다.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목격할 수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주검을 아픈 눈으로 바라봐 주십시오.

 

그리고 막대한 혈세를 쏟아부어 경부운하를 건설한다고 해도 단 한번의 실수로 국민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를 귀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막 대통령에 당선돼 새출발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다그치듯 싫은 소리부터 하는 저의 착잡한 마음도 부디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선이 끝났습니다. 당신은 압도적으로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대표공약이었다가 종국에는 뒤로 물러난 경부운하, 국민 생명의 젖줄인 한강과 낙동강으로 돌진하는 당신의 '불도저'들을 이제는 멈추어 주십시오.


태그:#경부운하,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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