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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 네이버 부사장!

초면이오만 공식적인 글이니만큼 경어체는 쓰지 않으려고 하오. 그 외에도 경어를 쓰기 힘든 또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그건 굳이 말씀드릴 필요 없이 읽다보면 알게 될 것이오. 그리고 한때 느슨하게나마 이곳 오마이뉴스에서 함께 시민기자로 기사를 썼으니 일종의 동료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오. 기자들끼리는 보통 직책보다는 선배,후배 동료로 부르고 일반 회사보다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걸로 알고 있으니 이해할 걸로 바라오.

당신의 글을 처음 본 것은 당신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신분으로 썼던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기사였소. 보는 순간 같은 시민기자로서, 도저히 난 저런 글을 쓸 수는 없을 거라는 자괴감이 들었던 기억이 나오.

그리고 도대체 어떤 '시민기자'가 이런 내공으로 글을 썼는가 소개를 보니,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더구려. 순간 세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첫 번째는 '그렇군, 역시 프로라 달랐던 것이군'이라는 일종의 안도감이었고, 두 번째는 '동아에도 이런 글을 쓰는 기자가 아직 남아 있었구나'라는 놀라움이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아에서 그만두고 나온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었소. 글의 품위나 깊이가 막가파 칼럼으로 일관하는 동아일보에 걸맞지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 당신이 그 글에서 보여주는 관점은 지금 조중동 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극단으로 가버린 동아와는 전혀 화합할 수 없었기 때문이오.

그 이후 당신의 글, 그리고 더불어 당신의 행적을 주의 깊게 봐 왔소. 당신이 오마이뉴스에서 국제기사 쪽 담당으로 정식으로 기자가 되었을 때 오마이뉴스가 참 좋은 인물을 스카웃 했다고 생각했고, 한겨레에 미국과 한국에서의 자전기 기행을 차례로 실을 때에는 나도 자전거를 사서 출근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소. 한겨레신문의 오랜 독자로서 그동안 한겨레의 가장 좋은 기획물 중 하나였다고 생각했고, 당신 글이 실리던 북 섹션은 모두 모아두었었소. 물론 책도 구입했고 말이오.

올해 국감당시 네이버의 한나라당 편파여부에 대해 질의를 받고 있는 사진
▲ 홍은택 네이버 미디어담당 부사장 올해 국감당시 네이버의 한나라당 편파여부에 대해 질의를 받고 있는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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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신이 네이버로 스카웃 되어 갈 때에도, 좀 아쉽기는 했지만 네이버에서 당신이 미디어 담당 이사를 한다는 기사를 보고 당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네이버에서 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했었소. 네이버와 홍은택이라는 이름이 흡사 한겨레와 김훈처럼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혹시나 당신이 일찍 그만두고 나오진 않을까 걱정도 했었다오.

그런데 내가 생각을 잘못했던 것 같소. 이사로 갔던 당신은 부사장으로 승진하였고. 국회에 미디어 총괄 부사장으로 출석하는 사진이 보였소. 물론 내 생각대로 당신이 잘 적응하고 승승장구하면서 네이버는 많이 달라졌소. 그런데 반대로 달라졌더란 말이오. 네티즌들의 원성을 수없이 사면서도 정치 기사에 댓글을 달지 못하게 하였고, 자꾸만 네티즌들, 그리고 언론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중동'이 아니라 '조중동네'라는 말이 들리더구려.

그리고 오늘 '당신의 네이버'는 그 정체성을 너무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소. 화면을 몇 개 캡처해 왔소. 역사에 남을 것 같아서이오.

이명박 후보의 BBK 자인 동영상이 유포된 지 네 시간이 넘게 지난 13시 05분 현재 네이버의 메인화면이오. 뉴스홈에 이명박 동영상 관련 기사가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고 있소.
주요 뉴스에는 이명박 BBK관련 기사가 없는 상태임
▲ 12월 16일 오후 13시 5분 현재의 네이버 메인화면 주요 뉴스에는 이명박 BBK관련 기사가 없는 상태임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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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같은 시간 뉴스 홈으로 들어가서 본, 당신의 직원들이 뽑은 '오늘의 주요뉴스'에도 역시 이 사건에 대한 내용은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소.

주요기사에는 BBK관련 언급이 없으나, 많이본 기사의 정치면은 전부 BBK관련 기사로 메워지고 있음
▲ 13시 현재 네이버의 많이본기사와 주요기사 주요기사에는 BBK관련 언급이 없으나, 많이본 기사의 정치면은 전부 BBK관련 기사로 메워지고 있음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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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네티즌은 바보가 아니라오. 바로 그 아래 '많이 본 기사'의 정치면을 보시오 여덟 개 중 일곱 개 기사가 BBK 동영상 내용이라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해도 소용없는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 네이버 담당자들이 이렇게까지 애쓰는 이유를 곰곰 고민해 봤소.

당신이 그 일에 어디까지 간여하고 있는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나는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당신이 미디어 관련 총 책임자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당신에게 실망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소.

아마도 오마이뉴스 내부에서는 이런 기사를 쓰지 못할 것이오. 한 때의 동료기자에게 이런 글을 쓰기란 아무리 성역 없는 오마이뉴스라도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오. 그래서 당신과 별 관련이 없는 시민기자인 나라도 당신을 실명으로 비판하는 기사를 실어야 한다고 생각했소.

글을 끝맺기에 앞서 다시 처음 당신을 글로 접했던 시간으로 돌아가 보고자 하오. 그 글에서 당신은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다녔소. 미국의 블루 아메리카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지역을 의미한다는 것도 당신의 글로 처음 알았소.

그래서 궁금하오. 그 때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다니면서 당신이 느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혹시 사라진 '블루 아메리카'에서 당신은 현실에 대한 이상의 굴복을 보고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린 것이오? 그러나 미국과 한국에서 남들이 모두 무모하다고 말리는 자전거 여행을 고집하던 당신은 그렇게 보이진 않았소. 맞바람과 달려드는 차량에게 맞서며 현실을 넘어선 무언가를 찾아나서 라이딩을 떠나던 당신이 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오.

홍 부사장 고맙소. 참으로 오랜만에 내 '기자정신'을 일깨워 줘서 말이오. 언제 만날 기회가 있거든 좀 더 깊은 당신의 내면을 한 번 취재해보고 싶소만 기회가 생길지는 모르겠소. 건승, 아니 당신의 네이버가 감싸주고 싶어 하는 그 후보의 표어대로 '성공'하시오. 굳이 내가 기원하지 않아도 그럴 것 같소만.


태그:#홍은택, #네이버,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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